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로 Apr 04. 2023

또 보고 싶은 것이 생긴다는 건

보고 싶다는 건

또 보고 싶다는 것은, '또 먹고 싶다'거나, '또 가고 싶다'와는 미묘하게 다르다. 보고 싶다는 것은 먹고 싶는 것과 다르게 소유를 비껴가고, 가고 싶은 것과 다르게 대상이 존재한다. 소유하지 못 한 그 대상이, 다시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움이 되어 그곳에 남겨져 있다.


며칠 전 꽃구경을 갔다가 우연히 한그루의 나무를 만났다. 그 나무는 멀리서부터 자신의 존재를 나에게 알리고 있었다. 새하얀 꽃과 연둣빛 잎이 어우러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흐드러짐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나는 그 나무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그래, 정말 첫눈에 반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나무 아래 서서 살며시 눈을 감았다. 적당한 햇살과 바람이 느껴졌다. 감은 눈꺼풀 위로 아른 거리는 햇살, 나무가 흔들리며 내는 파도소리는 나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내가 그 순간, 거기 있을 수 있음이 너무 감사하게 느껴졌다. 숨을 깊게 들이쉬며 가슴을 한껏 올렸다가, 나의 날숨소리를 '쏴' 하는 나무의 파도소리에 더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도, 그 나무 아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하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나무 아래 있고 싶었다.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에서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쏴 머리 위의 파도를 만들어내는 바람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나, 이 나무 너무 좋아. 너무 멋지지 않아? 정말, 너무 좋아."

앞서 걸어가던 신랑을 불러 세웠다. 커다란 나무 앞에서 너무 좋음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나를 보며, 신랑은 그 흥을 깨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호응을 하고는 그저 나를 바라보았다. 그에게는 얼마나 천만다행인 일인가? 지나가는 남자를 보고 너무 좋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거기 서 있는 나무를 보고 너무 좋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나에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나를 누구라고 칭하거나 판단하지 않는 나무라는 것이, 그래서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조마조마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말이다.


빨간 머리 앤이 눈의 여왕을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마치 내가 매튜의 마차를 타고 눈을 감고 있는 앤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가슴 가득 담아지는 공기는 마법을 부리는 듯 나를 설레게 했고, 그 마법이 풀리지 않았는지 지금도 눈을 감고 숨을 가득 들이쉬면 그때의 기분이 느껴진다. 입가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뾰족한 감정들이 동그랗고 말랑해진다.


나무 곁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이내 나를 찾는 이들에 이끌려 발걸음을 옮겼다. 뒤를 돌아보며 '다시 와야지.' 생각하며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에게 달려갔다. 


또 보고 싶은 것이 생긴다는 건 어쩌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래, 아마 난 정말, 그곳에 서 있던 귀롱나무를 사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첫눈에 반하고 또 보고 싶어지는 게 사랑이라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DAY02 오늘의 예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