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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l 22. 2023

단 하나의 존재

<어린 왕자>의 관계

사진: Unsplash의Joshua Earle

큰 아이가 4살이 되던 해, 차를 바꾸었다. 늘어난 짐과 늘어날 주행거리를 생각해 갈색의 SUV로 차를 바꾸었는데,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차를 만난 날, 나는 우리 차에 ‘브라우니’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브라우니란 이름을 갖게 된 차는, 그날부터 우리에게 그냥 차가 아닌 브라우니가 되었다. 지금, 큰 아이가 10살이 되었으니 벌써 6년째 함께 하고 있다. 브라우니와 함께한 6년 동안 작은 아이가 태어났고, 그 시간만큼 많은 곳을 함께 다녔다.


“브라우니 목욕 좀 시켜줘야겠어.”, “브라우니 밥 좀 줘야겠어.”


브라우니는 아무렇지 않게 의인화되어 우리의 대화에 등장한다. 아이들도 오랜만에 차를 타는 날이면 “브라우니 잘 있었어? 혼자 심심했지?”라며 말을 걸기도 한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다. 어린 왕자의 장미처럼, 여우처럼 말이다. 그것이 자신에게만 의미 있는 것일수록 더 애틋하고 소중해지곤 한다.


예전부터 이름 짓기를 좋아했던 지라 아이들과도 많은 것에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었다.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 이름을 짓는데, 작은 어항의 베타 물고기부터, 20개가 넘는 인형들, 막 심은 작은 적상추 씨앗에게도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을 갖게 된 녀석들은 그날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에게 단 하나의 존재가 된다.

얼마 전 큰 아이가 정성 들여 키우던 강낭콩 ‘콩이’가, 장난을 치던 작은 아이의 발길에 꺾어지고 말았다. 넘어진 콩이를 세우며 큰 아이가 어찌나 울던지, 소나기처럼 눈물을 쏟아냈다. 그 심각한 상황에 그 모습이 귀여워 내 입꼬리가 눈치도 없이 쓱 올라갔다. 아이에게 들킬 새라 얼른 아이를 꼭 안아 얼굴을 감추었다. “내가 얼마나 정성 들여 키웠는데. 엉엉. 엄마 콩이 어떡해. 엉엉”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하하, 그렇게 슬퍼? 넘어진 콩이는 엄마가 다시 세워줄게.” 크게 웃음을 터트린 후 식물의사로 변신해 콩이의 꺾인 줄기에 나무젓가락을 덧대어 깁스를 해주었다. 다시 몸을 세운 콩이를 보고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멈추었다.

아이는 그것이 ‘콩이’였기에 슬펐다. 동생의 ‘쑥쑥이’였다면, 야속하지만 그렇게까지 눈물을 쏟지 않았을 것이다. 콩이를 심은 날부터 언제 싹이 트나 물을 주며 기다리고 기다리다, 땅 위로 머리를 내민 콩이를 보고 무척이나 기뻐했었다.


“그 꽃 한 송이가 내게는 너희들 모두보다 더 소중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바람막이로 보호해 준 것은 그 꽃이기 때문이지. 내가 애벌레를 잡아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을 하거나, 자랑을 늘어놓거나, 때로는 말없는 침묵까지 들어주었을까. 결국 내 꽃이니까 말이야.”

<어린 왕자> p.93


오천송이의 장미보다 소중했던 어린 왕자의 한 송이 장미처럼, 아이에게도 콩이는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거리의 수많은 차들 중에서 우리 가족에게 브라우니가 특별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관계를 맺는다는 건, 시간을 내어, 공유하고, 간직하는 일이다. 시간만 낸다고 되는 일도, 시간만 보낸다고 되는 일도, 시간만 기억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이 3가지가 적절하게 버물어져 만들어진 관계만이 오래도록 남아 우리를 지지해 줄 것이다. 지금 나를 지지해 주는 관계는 무엇일까? <어린 왕자>를 읽으며 가만가만 머릿속의 관계를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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