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대하는 태도
나는 자칭 식물킬러다. 사실 그럴 마음은 없었지만, 나에게 온 많은 식물들이 우리 집에 자리잡지 못 하고 떠나버렸다. 그냥 둬도 잘 큰다는 식물들도 어김없이 그랬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식물을 사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아이를 만났다.
작은 유리병에 뿌리가 잠길 정도의 물에 의지해 초록잎을 뽐내는 작은 식물. 그것도 화분이 즐비한 어느 꽃집에서 산 것이 아닌, 다 있는 곳에서 파는 손바닥만 한 팬시용품 같은 식물이었다.
집으로 와서는 무심하게 주방의 조리대 위에 올려두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그 아이는 멀쩡했다. 심지어 물도 주지 않았는데도 초록의 잎은 어디 하나 상한 곳이 없이 싱싱했다. 바닥에 남은 물이 겨우 뿌리를 적셔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급히 물을 부어주었다.
그렇게 또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을까?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그 자리를 그대로 유지하며 크게 크지도 시들지도 않은, 어쩌면 식물계의 뱀파이어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오늘, 눈길이 닿은 곳에 연한 초록잎이 보였다. 새잎이 나서 어느새 조금씩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문득 나의 관심이 없어도 스스로 자라는 식물을 보며 - 이름을 잘 모르겠다 - 어쩌면 우리들도 누구의 관심이 없어도 스스로 잘 살 수 있지 않나란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눈을 의식하며, 관심받기를 원하며 살면 언제나 갈증이 나게 마련이다. 가시지 않는 갈증 상태에서의 밖으로 향해 있는 시선은 더한 갈증을 일으킨다. 대부분 외부로 향해있는 욕구는 채워져도 잠시, 더 큰 욕구를 불러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갈증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는 이 작은 유리병의 식물처럼 시선을 내 안으로 돌려야 한다. 남아있는 물에서 힘을 얻어 작은 잎을 틔우는 식물은, 어느 누구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을 위해 힘을 내어 물을 끌어올리고, 초록의 잎에 윤을 내고, 새 잎을 틔운다.
작은 유리병의 식물을 보며, 오늘은 나도 외부로 향한 시선을 거둬들여 안으로 향해본다. 나를 바라본다. 내 안을 바라본다. 그 안에 가능성과 충만함을 느껴본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