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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l 04. 2023

아이의 단어

사랑스럽고 귀여운

사진: Unsplash의Markus Spiske



"엄마, 엄마 입스틱 색깔 너무 예뻐! 엄마한테 너무 잘 어울려."


바뀐 나이로 다섯 살인 둘째는 듣기 좋은 말을 잘한다. 물론 떼쟁이, 욕심쟁이기도 하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저런 말을 하나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런 사랑스러움을 배가 시키는 것이 또 있으니, 바로 아이만의 단어다. 고 작은 입이 종알거리며 쏟아내는 말들 중에 톡톡 튀며 걸리는 단어들이 있다. 바로 잡아주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이내 그만두고 그 귀여운 단어들을 따라 말한다. 물론 단어 자체가 귀여운 것은 아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그 소리가 귀여운 것이지.


그러고 보면 나도 예전에 초등학교 고학년 때야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안 단어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다녔던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그 단어는 바로 '아구찜'이다. 나는 이 단어를 늘 '야구찜'이라 불렀다. 지금 예상해 보건대 그건 아마도 우리 집에서 야구를 좋아하는 부모님과 오빠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야구'란 단어가 '아구'란 단어보다 내 머릿속에 더 깊이 각인되어 착시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아구라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어린아이에게 아구가 야구로 보이는 건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의 아이도 엄마를 웃게 만들었던 그 단어들을 기억하게 될까? 아마 내가 이렇게 글을 적고 기록해 두면 언젠가 꺼내어 볼 수도 있겠다. 그럼 더 적어둬야지.


아이의 귀여운 단어는 여럿 있지만 반복하여 사용하여 기억에 남는 것은 몇 되진 않는다는 것이 아쉽다. 들었을 땐 빵 터지던 단어들도 기록하지 않고, 반복해서 듣지 못하면 나도 잊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중에 요즘도 자주 사용하며 들을 때마다 귀여운 단어는, 처음 등장했던 입스틱이다. 립스틱에서 립을 입으로 생각한 귀여운 발상이다. 입스틱과 비슷한 입바람도 있다. 휘파람을 입바람으로 말하며 자신도 입바람을 불 수 있다며 작은 입을 동그랗게 모을 때는 너무 귀여워 꼭 안아줄 수밖에 없다. 


바느질을 대신한 꿰맴질도 있다. 물론, 입바람과 꿰맴질은 국어사전에 올라와 있는 단어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이와의 대화에서 일상 단어가 아닌 조금은 낯선 단어를 만났을 때의 새로움이 잠시 나를 멈추게 하고 웃게 만들었다.


한참 언니와 포켓몬고에 빠져있을 때는, 포켓몬 중의 하나인 꼬리가 6개 달린 식스테일에서 식을 십으로 발음하여 나와 신랑을 빵빵 터지게 만들었었다. 아이의 단어가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귀여운 이유는 아이가 그것을 한 치의 의심 없이 말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심쩍어 눈치를 살피거나 맞는지 물어보는 일이 없이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말한다. 그러고 보면 어른들은 자라면서 점점 틀에 갇혀 이것은 맞고 저것은 틀리다는 기준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조금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틀릴 수도 있다는 걱정으로 머뭇거리기도 한다.


아이의 단어들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도 어쩌면 어른이 된 나의 머리가 틀린 것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은 아닌까 싶다. 아이의 그 단어들은 틀린 것이 아닌데 말이다. 아이의 이런 톡톡 걸리는 단어들 덕분에 나는 잠시 멈춰 선다. 그리고 그 말랑한 아이의 세상을 들여다보며 나도 조금은 말랑해져 본다. 


오늘은 예쁜 입스틱을 바르고 아이와 입바람을 불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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