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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로 Jul 06. 2023

더위 앞에 가벼운

바람 한 줌 불어다오

사진: Unsplash의Chris Ried

나는 더위 앞에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된다. 더위에 가볍다니 뭔가 청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와 다르다. 이 가볍다는 의미는 감정의 오르락 내리락을 말한다. 쨍쨍 내리쬐는 햇살에 절로 눈이 찌푸려지고, 언제 솟았는지 모를 땀방울들이 등을 타고 흐를 때면 나는 주변을 돌볼 틈이 없는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 되곤 한다. 거기다 높은 습도로 숨까지 턱턱 막힌다면, 거기다 누군가 실수로 내 발을 밟기라도 한다면, 거기다 발가락들이 그대로 드러나는 샌들은 신고 있는 상태라면 아마 나는 내가 지을 수 있는 최고의 불쾌한 표정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 잠깐이다. 나의 좁혀진 미간을 금방 펴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바람 한 줌이다. 휘 불어와 나의 땀을 잠시 잠깐, 한눈팔면 왔었나 모를 정도의 시간 동안일지라도 잠시 스쳐간다면, 정신은 금세 지금 발을 딛고 서있는 나에게도 돌아온다. 


그러고 보면 더위는 나를 반쯤 어딘가로 데려가는 것 같다. 그러니 보통이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에 예민하게 굴고, 싫은 티를 내게 되는 것이다. 뭐 이건 핑계 같지만 더위 탓이다. 그래, 더위가 내 정신의 반을 증발시켜 버렸기 때문이리라. 그런 나에게 바람 한 줌은 그 증발했던 정신을 다시 데려와준다.


이제 겨우 7월 초,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여름 앞에서 벌써부터 엄살이라니 좀 우습지만, 이렇게라도 스스로 인지를 시키고 나면 정말 무더위가 나를 덮쳐 - 그때는 아마 내 정신의 3분의 2를 데려가는 날도 있을 -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무엇이 되어주지 않을까 슬쩍 소망해 본다. 


오는 더위는 막을 수 없으니, 나에게 이르는 말이다. 


너무 더워 혼미해지거든, 내 정신이 얼마나 남았나 가끔은 체크해 보라고 말이다.


잘 있지? 잘 붙어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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