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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Feb 06. 2024

탕국, 처음 먹어봐서요.

 집으로 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둘째가 앞에 꽂혀있던 전단지를 집어든다. 

" 엄마 이거 가져가서 오리고 놀아야겠어. "

" 그래그래."

" 근데 엄마 탕국거리가 뭐야? "

이제 막 글을 읽는 재미를 느끼는 둘째는 '탕'이라는 글자에 꽂혀서 재미있는 거냐는 듯 묻는다.


( 전단지의 마트는 부산, 경남지역 전문유통업체인데 '국거리'를 명절기간을 맞아 '탕국거리'로 적어 놓은 것이 귀여워서 찰칵 찍어보았다.) 






" 아가, 탕국이 잘 끓여졌다. 함 무봐라."

" 탕국.. 이요? "


 결혼을 하고 첫 명절이었다. 나는 알 수 없는 외래어를 들은 것처럼 어머님의 말에 당황했다.

탕국이 도대체 뭘까? '국'인 거 같긴 한데 일단 먹어보면 알겠지. 별다른 편식은 없으니까 난 당연히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탕국이라고 떠 주신 국은 하얗고 맑지만 여러 가지 재료가 넘칠 듯이 듬뿍 담겨 있는 처음 보는 비주얼이었다. 하얀 소고깃국도 아니고 해물을 넣은 국도 아니고 어묵탕도 아니고 도대체 정체가 뭘까? 한 숟갈 떠서 먹었는데 맛이 아주 미묘하다. 여러 가지가 합쳐져서 경상도 말로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맛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상도에서는 유독 재료를 더 많이 넣는다고 한다. 소고기, 홍합, 오징어, 꽃모양이 있는 어묵, 무, 두부 등 많은 재료가 들어간다. 경기도 사람인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이 많은 재료의 합을 본적도 들은 적도 없어 더 당황했다. 

 몇 숟갈 겨우 뜨는 나를 보고는 남편이 얼른 눈치를 채고 내 앞의 국그릇을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 내심 고마움과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겨우 '처음 먹어 봐서요. '라는 변명을 내뱉었다. 어머님은 탕국을 처음 먹어본다는 말에 나에 말에 역으로 적잖이 당황하셨다. 




 어렸을 적 나의 제사나 차례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큰아버지댁에 부모님과 함께 간 기억은 있는데 엄마는 하루종일 음식만 했고 아빠는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푸념을 듣고만 앉아있었다.  할머니는 문간방에 앉아서 담배만 피워대셨고 사촌언니, 오빠는 나와 같이 놀기 싫었던지 둘이서 재미있는 놀이를 가지고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혼자서 심심하기도 했고 할머니의 담배 연기도 싫어서 골목에 나와 혼자 담벼락에 기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게 나의 명절 혹은 제사의 기억이다. 더구나 큰집의 위생상태는 내가 봐도 정말 별로여서 엄마와 나는 음식을 거의 먹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세월이 흘러 여러 사건으로 인해 아빠는 형제와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더 이상 큰집에 가지 않았고 나의 기억 속에서도 절을 올릴 때 딸이라는 이유로 절도 못하게 했지만 큰집 언니만 절을 시키던 남자어른들을 보며 어린 마음에 속상했던 기억을 남기고 더 이상 발길이 닿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경상도의 명절 혹은 제사 음식에 대해는 잘 모르는 문외한 경상도인이었다.




매년 명절에 어머니는 내게 물어보신다. 

" ㅇㅇ이 엄마야. 올해도 탕국 싸줄까? "

" 네, 어머니. 아이들이 할머니 탕국이 그렇게 맛있데요. 물론 저도 이제 잘 먹어요. 시집온 지 10년이 넘었는걸요 "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자라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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