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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Jul 16. 2023

쌀을 주는 좋은 회사에 다닙니다.

곰 세 마리 이야기

 창사 기념일을 맞이하여
 새로운 각오로 더욱더 힘차게
전진해 나갈 것을 약속드리며,
임직원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 올해도 쌀이 4포대나 왔어. 몇 달은 끄떡없겠다. 정말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 같아"

작년해도 창사기념일을 맞이해서 남편의 회사에서 좋은 선물을 받았다. 정말 반가운 선물이다. 나도 모르게 헤헤 웃음이 나온다.




 우리 집에는 나 이외에 남자 1,2,3이 산다. 편의상 곰 세 마리라고 칭하고 첫째, 둘째, 셋째 곰으로 번호 먹여보자.

 대체로 그들의 성격은 온순하며 뭐든 긍정적이고 느긋하지만 먹을 것 앞에서는 무척 예민해지는 특징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특히 그들의 분명한 특징은 일명 삼식이라고 불리는 하루 3끼의 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빵이나 떡 같은 건 절대 식사가 될 수 없다고 여기며 그것은 식사 사이에 가볍게 먹는 간식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말 그대로의 '쌀밥'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며 매우 신중하고 소중한 문제이다.

 그들은 밥이 들어있는 식사가 아니면 세끼를 다는 못 먹었다고 생각하는 옳지 않은 믿음에 빠져있다.



 

 첫째 곰은 특히나 밥 자체에 예민하다. 그 예민함을 둘째와 셋째에게 고스란히 DNA로 물려주었다. 그는 차가운 밥을 극혐 한다. 조금이라도 밥의 수분이 날아가서 딱딱해지면 그는 숟가락을 즉시 놓고 햇반을 찾는다. 그래서 갓 지어 냉동실에 넣어 놓은 밥이 혈당을 낮춰줘서 다이어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맛이 없다는 이유로 절대 입을 대지 않는다. 내가 느끼기에 갓 한 밥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다행히 특별히 반찬은 가리는 게 없어서 그 점은 기특하다고 여기며 그와 식사할 때는 따뜻한 밥을 항시 대접한다. (그런데 김밥은 왜 맛있게 잘 먹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둘째 곰은 코로나로 인한 급성장을 맞았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갈 수 없게 되고 야외활동이 줄어 놀이터 및 친구집의 방문도 자제된 시점부터였다. 매일 집에서 뒹굴다 보니 어느새 3년이 지난 지금에는 가녀린 성인여자의 몸무게를 자랑하고 있었다. 문제는 키가 그만큼 성장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더구나 현재 4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잘 먹으면 다 키로 가니까 뭐든 골고루 잘 먹으라고 하셨단다. 둘째 곰은 그 말만 전적으로 믿고 매일매일 성실히 아주 잘 따르고 있다. 선생님이 널 보고 하신 말씀은 아니지 싶은데 말이다.

 

 물론 이맘때 아이들이 성장을 하는 시기라서 남자아이들은 특히 더 많이 먹는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더더욱 많이 먹어서 먹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될 거라는 말을 들으면 벌써부터 걱정과 한숨이 밀려온다.

 언젠가 시어머니께 둘째 곰이 많이 먹어서 걱정이라는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어머님도 남편의 일화를 풀어놓으셨다.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키우는 어머님도 남편의 성장기 식성에는 정말 놀람을 금치 못하셨다 했다. 더구나 입 짧은 딸은 정말 새 모이만큼 먹으니 더더욱 편차에 놀라셨을 수밖에. 오죽하면 남편이 하도 많이 먹어서 외출하실 때는 간식으로 사다 놓은 초코파이를 숨겨 놓고 나가셨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눈에 보이면 한 통을 다 먹으니까 그러셨단다. 그때 옆에서 지켜보던 이모님들은 애들한테 너무 한다 하셨지만 본인들도 아들 낳아보니 그때를 떠올리며 공감하셨다 했다. 나도 그 당시 어머님의 심정이 이제는 10000% 정도 이해가 간다.




 아침이다. 셋째 곰이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분명히 몰래 간식을 찾고 있는 모양새다. 간식을 찾으면 잘 안 보이는 구석에 가서 조용히 야금야금 먹는다. 그 와중에도 깔끔한 녀석이라 쟁반을 가지고 가서 흘리지 않게 받치고 먹는다. 셋째 곰의 특기는 먹었는데 안 먹은 척 하기이다. 물어보면 자기는 안 먹었다고 하지만 입가엔 과자 부스러기나 요거트가 묻어있고 집 구석진 곳엔 그가 먹는 쟁반과 껍질이 고스란히 놓여있다. 그래. 아직 다섯 살이니까 귀여워서 봐준다. 문제는 이렇게 간식을 먹으면 밥을 잘 안 먹어서 걱정이다.

 

 첫째와 둘째 곰은 체격이 아주 아주 정말 끝내주게 좋은 반면에 (속엔 열불이 나지만 기왕지사 좋게 표현해 주자) 셋째는 아직 또래에 비해 체격이 좋지 못해서 늘 걱정이다. 아직은 입이 짧아서 이것저것 다양한 음식을 해줘 보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밥은 없어?이다.




  '밥이 없기는. 우리 집 밥솥엔 밥이 항시 대기 중이란다.'

 전기세 폭탄을 감안하고 전기압력밥솥을 쓰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세 마리의 곰들은 무슨 음식을 먹든 밥이 없으면 큰 일 나는 줄 아니까.


 오늘도 나는 매끼 설거지를 마치면 항상 빼놓지 않는 루틴이 있다. 쌀 씻기.

촉촉하고 따쓰한 밥을 원하는 곰 세 마리를 위해 절대 절대 빼먹으면 안 되는 루틴이다.



이런 우리집에 쌀 주는 회사 = 좋은 회사.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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