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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Dec 02. 2023

우리 이 정도면 성공한 거 맞지?

비 안 맞고 살고 싶었어요.

 우리의 신혼집은 오래된 복도형 아파트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긴 복도를 따라 걸어가면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그 집이 우리의 러브하우스였다. 비록 방 한 칸에 거실 한 칸인 작은 아파트였지만 둘이서 알콩달콩 지내기에는 딱 알맞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집으로 걸어가는 복도마저도 참 따스하고 좋았다. 우리 생애 첫 독립이었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독립된 성인으로 사는 것 같아 마냥 행복했다.

 

 하지만 마냥 행복할 것 같던 그 집도 비만 오면 불편한 것 점이 드러났다.

 따스한 바람이 불던 복도는 비가 오면 물바다가 되었다.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다시 우산을 펼쳐 들고 집으로 뛰어들어 가야 했다. 복도에는 샷시가 있는 창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바닥에는 곳곳에 물이 고였고 집 현관문 또한 비로 인해 젖어 집 현관까지 비가 들이쳤다. 나중에 이사 나올 때쯤엔 새로 했던 도어록이 2년간 비를 많이 맞아서 녹슬어 사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비가 오면 주차장은 지옥의 공간이 되었다. 오래된 아파트라 지상에만 주차장이 있었고 주차자리의 폭도 무척 좁았다. 문제는 옆 차와의 간격이 너무 좁아 비가 오면 우산조차 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장을 보거나 해서 짐이 생기면 내리는 비를 쫄딱 맞으며 아파트 전체 현관입구까지 들어 날라야 했다. 그나마 남편이 있거나 하면 2인 1조가 되어 일이 진행되었지만 나 혼자 짐을 들고 올라치면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행복했지만 불편했던 그 집은 좋은 소식과 함께 이사 나오게 되었다.

집을 계약할 당시 부동산사장님이 신혼이었던 전주인과 전전주인의 좋은 기운까지 물려받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덕담을 하셨다. 그 말이 찰떡 같이 맞았는지 나는 임신을 했고 아기와 같이 지낼 수 있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의 두 번째 집은 다행히 계단식 아파트였다. 다행히 여긴 지상과 지하 주차장이 있었지만 이 또한 연식이 있는 아파트라 지하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비라도 오는 날엔 아파트와 가까운 지상주차장은 항상 만차였다. 아이가 잠들어 버리면 차에서 내려 집으로 안고 가야 하는데 비라도 오는 날엔 아이를 안고 옮기는 과정에서 비를 맞아 아이가 잠결에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아이를 달래다 보면 저 멀리 지하주차장에서부터 비를 쫄딱 맞은 남편이 가방과 짐들을 들고 오는데 그 모습이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엘리베이터.

우리는 20층인 아파트의 젤 꼭대기층에 살았는데 평소에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려고 하면 한 세월이었다. 뭐 그런 일쯤은 우리가 선택한 거니까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불시에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는 일이 잦았다.

 임신한 어느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집에 빨리 가야지 하며 아파트로 들어선 순간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란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계단을 한 층 한 층 올라 20층을 겨우 올라갔다. 날씨는 한여름이었고 뱃속의 아기는 방광을 누르는데 정신이 아득했다. 10층쯤 되니까 화장실의 신호가 더 급히 왔는데 다리가 무거워 계단을 거의 기어가다시피 올라갔다.

 또 한 번은 아기가 열이 나서 병원에 가야 했다. 아기띠를 하니까 울고 보채는 통에 급한 마음에 택시를 앱으로 불렀다. 링거를 맞을지도 모르니까 유모차도 필요하겠다 싶어 휴대용 유모차도 한 손에 들었다. 집을 나서는데 아뿔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단다. 택시는 집 앞에서 기다리고 내려가긴 해야겠고 해서 아기를 띠로 안은 상태에서 한 손엔 유모차를 들고 20층을 내려갔다. 1층에 도착하니 땀을 뻘뻘 흘리는 나에게 기사님이 걱정하시며 어디 아프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야 말로 진짜 이사를 가고 싶어졌다.



세 번째 집은 우연히 아이의 키즈카페를 찾아 다른 동네에 놀러 갔다가 마음에 든 신도시에 있었다.

남편과 나는 그 동네가 마음에 들어 이사를 결심했다. 바로 앞에 공원과 하천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행복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그렇게 그 동네의 집을 찾아다니던 우리는 최신식 아파트에 첫 입주자가 될 수 있었다. 여긴 비가 와도 비를 맞을 일도 없고 주차장도 아주 넉넉한 아파트였다. 더구나 힘들었던 층간소음과 엘리베이터 생활을 접으려고 1층으로 이사했다.

모든 것이 이제 완벽했다.


 우린 이 아파트에 이사한 첫날밤 맥주를 나눠마시며 들떠서 이야기 나눴다.

 비가 와도 비를 맞지 않는 주차장이 있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도 걱정되지 않는 1층이다. 층간소음 때문에 밤늦게 아이에게 혼낼 일이 줄어들었으며 밤늦게 와도 주차 걱정이 덜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이제 집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엄청나게 줄어들겠다며 우리 둘은 무척 좋아했다.


 그리고 급기야 우리는 예전에 비해 성공한 삶이라고 정의를 내리며 이 집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자고 약속했다.



남들이 뭐래도 이 정도면 우리 성공한 거 맞지?






사진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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