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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라나 Dec 03. 2023

빌어먹을 영어울렁증

당신은 내게 모욕감을 주셨죠.

 조용한 카페에서 외국인인 듯 한 두 남자가 대화를 하고 있다. 그들의 대화를 안 듣고 싶지만 두 사람은 제법 큰 목소리로 즐거운 대화를 이어간다. 듣자 하니 그들은 영어로 대화하는 것 같다. 아니 영어가 확실하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긴 대화 가운데 하나의 단어도 제대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영어울렁증




 오늘도 어김없이 영어학원의 수업은 단어 시험으로 시작한다. 초등학생에게 영어 시험은 정말 가혹한 굴레이다. 선생님이 나눠주신 시험지에는 내가 외웠던, 아니 내 눈을 잠깐 스치듯 지나갔던 단어가 나란히 누워있다.

뭔가 얄밉게도 그 단어들은 반쯤만 모습을 드러낸 채 괄호를 들이밀며 내게 맞춰보라 도발한다. 정신이 아찔하다. 뭐였는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그대로 몸이 굳어버린다. 다른 과목은 자신 있게 잘할 수 있는데 하필 영어만 들이대면 낯섦이 다가오면서 무서워지는지 모르겠다. 나는 내 머릿속처럼 하얀 종이를 드문드문 끄적인 채 다 채우지 못하고 제출했다.

"이것도 안 외워오면 남아서 단어 외우고 가야겠네."

'저기 선생님. 저는 안 외운 게 아니라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라고 소심하게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결국 오늘도 남아서 단어를 겨우 외우고 꾸역꾸역 채운 시험지를 제출한다.


 어렸을 적부터 영어는 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뭔지 모를 불편함과 더불어 위축감, 거리감등이 더는 가까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물론 아주 어렸을 적엔 t-e-a-c-h-e-r- 에 음을 넣어가며 즐겁게 단어를 배우던 시절도 있었다. 그저 신나는 놀이였고 신기한 음악이었다. 하지만 놀이가 공부가 되는 순간 흥미를 하나도 못 느낄 만큼 멀어졌다.




그런 나에게 잊지 못할 사건이 생겼다.

중학생이 되고 영어 성적이 잘 오르지 않자 엄마는 동네에 공부 좀 한다는 아이가 다니는 학원으로 날 밀어 넣었다. 그때 당시에 최신식 영어학습 시스템이 있는 학원이었다. 학원의 루틴은 청각실에 가서 헤드폰을 쓰고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오디오를 들으며 단어를 외우는 게 첫 번째였다. 마치 당시에 유행하던 엠씨스퀘어 같은 장비처럼 생겼는데 단어 중간중간에 이상한 음이 송출되어 집중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하지만 딱히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니었던 나는 그 시간이 멍 때리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뭔가 명상하는듯한 고소한 삐- 음이 나오면 그 속에 빨려 들어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어단어는 그저 내 귀를 스칠 뿐 머릿속에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결과 단어테스트는 매일 당연히 통과하지 못하는 실력이 나왔다.

더불어 단어가 안되니 영어 성적이 좋게 나올 리가 없었다. 학교 성적표를 보고 학원 선생님은 날 마구 다그쳤다.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난 거라 생각했지만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나 자신을 원망하고 반성하는 게 아니라 영어라는 과목에 대한 반발심만 깊어졌다.

 학원 측에서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 내가 눈엣가시였나 보다. 그때는 시험결과가 나오면 학원 밖에 현수막을 걸어서 그 학원의 위상을 높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선생님은 극단의 조치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의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그 전화통화에서 선생님은 선을 넘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건네고 말았다.

 " ㅇㅇ이가 영어에 대한 머리가 없나 봐요. 아무리 시켜도 되질 않네요...."

하필 엄마가 들고 있는 수화기에 귀를 대고 들은 내 잘못이었다. 안 들어도 될 말이었다.

 결국 침대에서 눈물을 펑펑 쏟으며 한동안 울다가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 그 학원 다시는 안 가"

그게 사춘기 소녀가 할 수 있는 억울하게 느껴진 그 말에 대한 최고의 반항이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 하락은 수학을 풀어서 상쇄시켰다. 수학 또한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뭔가를 열심히 노력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기쁨이 끝이 보이지 않았던 영어와는 차원이 달랐다. 문제 하나를 풀 때마다 답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쾌감은 계속 수학문제만 붙들고 중독되게 만들었다. 수학은 한 계단 한 계단 또박또박 올라가는 느낌이라면 영어는 망망대해에 날 버려놓고 방법도 알려주지 않은 채 스스로 집을 찾아오라고 방치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후에도 혹여나 영어책을 펼쳐 공부하려고 하면 선생님의 그 말이 떠올라 책을 덮었다. 억울했고 답답했다.

 지금이라면 그 말을 극복하려고 더 노력을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때는 그 목소리만 떠올려도 눈물이 나서 회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대학은 가야 했다. 영어는 해야겠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렵게 고등학교 때 영어학원을 등록했다. 선생님은 날 무척 이뻐하셨다. 내가 영어만 노력해서 잘하면 국립대 정도는 갈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시며 나에게 정성을 더 쏟으셨다. 매일 쏟아지는 단어 속에서 버겁지만 겨우겨우 따라갔다. 하루종일 영어 단어가 눈앞에 아른거렸고 선생님과의 약속이 떠올라 영어단어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러나 결국 나가떨어졌다. 나는 영어 단어의 문맥을 이해하기엔 이해력이 부족했고 혹시나 틀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영어와 거리를 두었다. 결론적으로 영어라는 산을 극복하지 못했고 더불어 국립대의 문턱에도 미치지 못했다.





 큰 아이가 어느 날 영어공부를 하기 싫다며 영어는 왜 배워야 하는지 물어왔다. 그 질문을 듣고 나도

적잖이 당황했다. 세계의 많은 사람이 영어를 공통어로 사용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려면 영어로 소통하는 것이 좋다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그럴싸했다.


 하지만 아들은 웃으며 대꾸했다. 요즘은 번역어플 하나만 있으면 세계 어디를 여행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자 순간 할 말을 잃고 방어를 하지 못했다. 뭔가 밀린듯해서 분했다.




대학 졸업 후 영어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직업을 가지고 해맑게 살아왔고 결혼을 했고 육아를 이어갔다. 딱히 살면서 불편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이제는 부딪혀야 할 시간이 왔다. 나조차 그 목적이 없었으니 발전이 없었으리라. 다시금 방향을 잡고 정신을 똑띠 차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영어를 공부해 봐야겠다.



사진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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