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필조 May 09. 2021

그런데 그 할머니는 왜 도망가셨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 아니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다 커서 알았는데 뭔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더 해주지 않는 어머니께 꼬치꼬치 캐물었던 기억이 난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할머니도 역시 재혼이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는 성이 다른 누이가 계시다. 어린 시절 그분을 본 기억도 있다. 그냥 고모인 줄로만 알았다. 딸을 데리고 시집을 와서 오 남매를 더 낳아 키우셨으니 우리 할머니 정말 대단하시다.


그런데 첫 번째 부인과는 왜 헤어지신 걸까? 어머니나 아버지께서는 별다른 말씀을 안 해주신다. 다만 할머니의 시어머니가 엄청나게 무서우셨다고, 밥도 안 주고 일만 시켜서 시집온 몇 달 만에 도망을 가셨다고 했다. 정확한 이유는 이제 아무도 모르지만, 어찌 되었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밥도 안 주고’라는 대목에서 마음이 먹먹하다. 집에서 키우는 개도 밥을 주는데 왜 며느리에게 밥을 안 주신 걸까? 얼마나 힘들고 어색하고 배고팠을까? 할아버지는 왜 지켜주지 못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분 덕분에 내 할머니가 시집을 오셨고 아버지가 태어났고 나까지 태어났으니, 무의미한 생각이다. 그냥 안쓰러울 뿐.


버스에서 어느 유튜버가 거대한 음식을 모조리 먹어치우는 것을 보고 도망간 할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많이 먹는 것이 흉이었던 시절도 있었을 텐데, 다행히 이렇게 좋은 세상이 되어 잘 먹고 돈도 버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먹을 것을 안 줘서 며느리가 도망가던 시절이 불과 몇십 년 전이라니 세상은 참 빠르게 변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보여주는 시대, 그런 사람들이 성공하는 시대, 소화력도 경쟁력이 되는 시대, 흥미롭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보이스피싱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