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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26. 2024

안녕, 제주사람

군자역 올래상회



줄곧 기다리던 제주 ‘고기 국수’다. 영롱한 빛에 이끌려 들어간 곳은 군자역이라는 작은 섬이었다. 지금도 동네 느낌이 물씬 나는 한적한 분위기의 거리지만 그때도 별반 다를 게 없었고 마침 광진구의 낯선 중곡동을 지날 때였다. 섬이라면 언제든지, 어디서든 무난하게 한 젓가락 할 수 있는 메뉴지만 여기선 조금 망설여지던 이름의 메뉴였다. 서울에서 맛보는 바다를 건너가지 않고 먹는 국수는 어떨까. 호기심이 절반을 차지했다. 혼밥을 하는 동네주민들의 편안한 복장이 제주도 어느 거리의 골목식당을 떠오르게 만들어 조금 마음이 놓였다. 세련된 투박함을 가진 육지에서 제주라는 이름만의 섬 맛을 찾아 떠났다



한반도 남서쪽 끝에 자리한 대한민국 최남단에 가장 큰 섬이자 또 하나의 나라처럼 멀리 떨어진 제주도를 여행지로 생각하기에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걸 먹고 또 마시기에도 부족함 없는 그곳은 외로워 보일지 몰라도 미식에서, 자연에 있어 만큼은 풍요의 섬이다. 그중에서도 음식은 아직도 시도해봐야 할 메뉴들이 넘쳐나 독립적이면서 개성 있는 깊은 맛과 전통을 파고들어 있는 맛들이 분명하게 남아있다. 흔들리지 않는 맛을 수호하고 보유한 맛도리이자 진또배기인 것이다. 가장 마지막으로 섬에 상륙했을 때 도전했던 메뉴는 각재기국과 겡이국이었다. 편협한 미각에 사로잡히기 쉬운 도시, 일상만이 여행인 서울이 있는 육지에서 그것과는 거리가 먼 '진짜 제주 음식'의 성공률은 도시 맛집과 견주었을 때 경쟁력이 높은 편이다.



육지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기에 차고 넘치는 높은 수준의 음식들은 꾸준한 시도와 더 파격적인 메뉴들로 비슷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상륙하고 있다. 제주의 방언을 그대로 차용해 미처 식지 않은 도마(돔베)에서 삶은 고기를 아직 내려놓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래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고기 국수나 돔베 고기 말고도 향토음식으로 알려진 몸국이나 족발로 부르는 아강발, 어딘가 다른 느낌의 토종순대, 구운 고기에 찍어 먹거나 밥도둑이 되어주는 갈치속젓, 청양고추를 잘라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종지 안에 멜젓도 보편적이라면 그렇게 육지 도시에서도 퍼져나가 대중화되어 가는 추세다. 중 도수를 대표하는 21도의 투명하고 명랑한 한라산과 부담 없는 올레 소주도 비교적 어렵지 않게 찾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전통주의 바람이 한동안 붐처럼 불어 너도 나도 한식을 베이스로 한 고급 주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거기서 한 번쯤은 한 병씩 비워본 것으로 바다 건너 섬까지 가지 않아도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된 제주의 고소리술오메기술처럼 젊고 어린 대중들에게도 향토와 전통이 익숙하게 스며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주류를 중점으로 둔 가게가 아니더라도 한식을 다루는 식당에서 종종 마주칠 때 더욱 그렇다.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더하자면 예로부터 먹을 것이 부족하고, 물이 귀할 뿐 아니라 주식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논이 없는 척박한 환경인 탐라국 탐라도에서 빚어진 귀한 술이라고 생각하면 도민이 아닌 먼발치의 육지사람일지라도 어떤 긍지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름에 ‘제주’나 '*올레'(올레의 원 말은 올래다)가 따라오면 프리미엄 딱지를 붙여놓은 것 같다. 돼지고기라면 왠지 모르게 흑돼지에 더 끌리지만 같은 백돼지라면 제주산이 더 맛있을 것 같은 플라세보까지 느껴진다. 아직 육지 위의 제주의 맛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여운을 느낄 수 있는 정도지만 점점 많아지는 풍요로운 맛의 섬 제주도의 타이틀을 보며 내심 기대한다. 이번엔 어떤 여운이 찾아올까. 먹는 동안 섬이라는 착각을 가져다줄까. 철썩이던 파도가 잠잠해지자 나부끼는 바닷바람의 여행지에서나 느낄 법한 시원하게 차분해지는 감정, 고기부터 맛을 본 뒤 입으로 말아 올린 국수를 다 먹고 한 그릇 정리하고 나오는 길이다. 육지에서도 언젠가 비 오는 날 고사리 전을 부쳐먹고 해장으로 접짝뼈국을 한 그릇 하는 육지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광진구 능동로의 작은 골목을 나선다. "안녕, 제주 사람." 


*올레 :집 대문에서 마을 길까지 이어지는 아주 좁은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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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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