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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MITAGE Mar 25. 2024

매운불량마라식품

건대입구 매운향솥 마라탕 마라샹궈



麻辣香锅: 매운향솥


직독직해한 이름이 귀엽다. 북한이 외래어를 쓰지 않고 만든 말 같기도 하다가 문득 민병철 선생님께 영어를 배우던 그때처럼 그대로 한자의 뜻을 가져다 쓴 이름이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다. 여기 향솥 맛은 꽤 자극적이다. 요즘 세대들이 좋아하는 선택지는 충분했고 정도의 세기도 조절이 가능했으며 '가성비' 좀 따져 묻는 사람들 마저도 설득하도록 오밀조밀하게 나오는 일품요리 메뉴를 하나씩 맛보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물론 언제나 시작은 마라였다. 자원하기로 한 만큼 선택적으로 매우 붉고 많이 뜨겁게 느껴지는 음식이다. 그래서인지 기본 중식에 관심을 넘어 짜장면 짬뽕만큼 보편화되고 자리 잡은 유행으로 불리는 마라 좀 먹어본 사람들이라면 자양동 중국음식 골목 거리에 '매운향솥'이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가능성이 높다. 최근엔 SNS에서도 술 한잔 곁들이고 싶은 '마친자'(마라에 미쳐있는)들의 성지라는 포스팅을 목격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이제는 아득히 먼 옛날 일이 되었지만 중국 국적에 한국어가 유창한 직원과 일을 한 적이 있다. 수줍었던 그의 성격 탓에 친해지는데 적잖은 시간이 걸렸지만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던 중(한국어를 그렇게 잘하는 줄 몰랐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고향이라기엔 너무 어리고 젊었던 그에게 기억의 재료인 음식 중에 어떤 향수가 있는지, 그래서 어디를 주로 가는지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저는 거기에서 밖에 안 먹어요

그런데 마라, 왜 먹으려고 그래요? 중국에선 불량식품 같은 건데'



옅은 미소에 결코 악의는 없어 보였지만 굳이 찾아가서 먹어야 하냐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의 문화와 비교하자면 학교 앞 분식집에 있을 법한 메뉴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유혹을 뿌리치기란 어렵지만 한 끼의 식사로 챙겨 먹지는 않는 떡볶이 정도라고 해야 좋을까. 마니아층이 두텁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하던 '자극'적인 이름의 음식. 국민 간식이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 거기엔 국민이 너무 많아 조심스럽다. 어쨌든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다만 한 번씩 당길 때가 있는데 그땐 꼭 건대입구역, 자양동을 찾아간다고 했다. 



그렇게 귀여운 이름의 가게를 방문하게 된 것이 헤아리기에도 아득한 10년이 다 되어간다. 수줍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사람은 향솥과 더불어 곁들이기 좋은 설원이라는 고량주를 귀띔했다. 술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마시기 괜찮은 술이라고 했다. 마라도 좋아하지 않고 고량주도 잘 마시지 못하는 설득력 있는 외국인 직원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무엇 때문인지 꼭 가보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설원을 그리고 결정적으로 중요한 '향솥'의 매력을 그때 알게 되지 못했다면 지금도 익숙한 이름의 고량주만을 그리고 자양동까지 가지 않고 같은 이름의 메뉴를 골랐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고량주보다 착한 가격에 자기주장이 덜한 적당한 취기를 빌려주는 설원을 함께 주문한다. 중독된 마라의 향과 붉은빛을 내며 자극의 탑을 쌓아 올리는 와중에 향을 포기하고 적당히 기분 내고 싶을 때 희석은 조금 되었지만 충분한 에너지로 부담 없이 스며든다. 공부가주와 연태 고량주가 일품진로나 화요라면 설원은 진로이즈백, 처음처럼 이자 참이슬이다. 그만큼 어떤 음식에도 마실 수 있고 반주에도 잘 어울린다. 계속해서 변해가겠지만 현지에서는 제갈량이 많이 보인다고 하는데 한국에서 자주 보이는 설원이 지금처럼 잔잔하게 인지도를 쌓아 간다면 설원이 제갈량의 위치에 오르는 날이 올까.



향솥이 주는 자극이란 첫째로 붉고 뜨거운 곳에 예리하게 비추는 은색 쟁반 위로 향채샹차이이자 고수를 뒤범벅시키는 것이고 서서히 쌓여가는 매움이 입에 남아 자극적인 맛을 넘어서 이제는 통각에 고통이라 여길 때쯤 다음 순서로 잘  튀겨진 메뉴를 추가로 주문해 복합적인 맛으로 고통을 상쇄시키는 것이다. 간지러운 곳으로 남을 뻔했던 잘 튀겨진 메뉴까지 벌겋게 나오는 걸 보니 여긴 정말 매운 향솥이라는 이름이 퍽 잘 어울린다.



EDITOR

:HERM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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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_@BIG_BE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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