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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Jan 29. 2023

MZ세대 공무원의 무기력증 극복기

3년차 공무원이 인생 노잼시기를 맞닥뜨렸을 때

이번 주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주말 내내 누워 있었습니다. 새로운 글을 쓸 에너지가 도저히 나지 않아서-하지만 브런치에 글은 올리고 싶어서- 예전에 썼던 일기를 찾아 봤습니다.


2년 전 봄, 인사이동 직후에 제가 쓴 글이 있더라구요. 한창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을 때였습니다. 어떻게 벗어났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요새도 가끔 이렇게 '인생 노잼시기'가 찾아오는데, 간간이 찾아오는 무기력은 참 견디기 힘듭니다.


최인철 교수님의 <아주 보통의 행복>에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열광하는 것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한 사람은 관심 있는 대상이 많다는 뜻이었죠. 저도 제 흥미를 끄는 관심거리가 많을 때는 사는 것이 재미있고, 반대로 세상에 재미있는 게 없단 생각이 들 때 우울하더라구요. 요즘은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게 재미있어서 무기력이 오는 걸 막아 주는 것 같습니다.


무기력증이 오면 아무 것도 하기 싫지만, 뭐라도 새로운 걸 시도해 봐야 금방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았고, 무작정 서점에 가서 관심 가는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았구요. 오랫동안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나면 새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많이 갖다 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심사가 생기면서 무기력증이 나아졌던 것 같습니다.




2021년 4월, 3년차 공무원의 일기


봄이 왔다. 해가 길어지고 날씨도 좋은데, 이상하게 무기력하고 우울한 게 슬럼프가 온 것 같다.


새 팀에 와서 적응하느라 진이 빠져서 그런 건 줄 알았다. 전에 하던 집행업무와 완전히 다른 성격의 기획업무를 맡게 되니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선 많이 안정된 것 같다. 팀장님은 원래부터 좋은 분으로 회사에 소문난 분이었는데, 실제로 보니 평판이 틀린 게 아니었다. 똑똑하시고 업무능력 좋으신 건 물론이고, 지침도 잘 주시고 인격적으로도 따뜻하신 분이다. 상사 복이 그다지 없던 나로서는 어떻게 이런 상사가 있을 수 있는지 황송할 정도였다. 새 동료들도 크게 모난 분들 없이 열심히 하시는 분들이고, 초반에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요새는 잡담도 어느 정도 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너무나 공허하다. 일이란 게 삶의 실체 없는 불안을 실체 있는 불안으로 바꿔주는 거라고 알랭 드 보통이 그랬던가. 일에서 느끼던 불안이 잠잠해지니까 알 수 없는 불안이 올라오는 걸까?


3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일은 내 인생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단 거였다. 회사가 싫은 건 아니고, 일도 나름대로 재밌게 했다. 하지만 나는 몇몇 선배들처럼 일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 성취욕이 강한 사람도 아니다. 그래서 삶의 다른 영역을 계발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처럼 운동을 하고 취미를 갖고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인생이 즐거워질까? 글도 꾸준히 쓰고 싶었는데, 지금처럼 무기력한 상황에선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예전에 좋아했던 취미들도 지금은 흥미가 없다. 예전의 나는 관심사가 참 많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사랑했던 그 어느 것 하나도 끌리지가 않는다.


권태는 여름날 음식 냄새를 맡고 찾아온 날파리처럼, 계속 움직여서 쫓지 않으면 내려앉고 만다. 그리고 권태가 데려온 무기력은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삶은 끝까지 권태와 외로움과의 싸움이 될 거라고, 작년의 언젠가 내 일기에 쓴 적이 있다. 아직 내 인생의 반도 살지 않았을 텐데, 왜 자꾸 인생에 새로울 게 없단 느낌이 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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