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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r 02. 2024

한국형 오컬트 [사바하] 감상문

'진짜'들의 이야기

요즘 영화 [파묘]가 대흥행가도를 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오컬트 영화도 상당히 좋아하는데, 한국에는 제대로 된 오컬트 영화가 흔치 않아서 늘 아쉬워하던 중,

장재현 감독님이 '검은 사제들'을 시작으로 '사바하', 그리고 이번의 '파묘'까지 이어서 흥행시키며 "K-오컬트"의 계보를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파묘]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2019년에 정말 재밌게 보았던 [사바하]의 감상문을 다시 정리하며 새 영화 감상을 준비해보고자 합니다.


상당한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사바하]를 보신 적 없는 분은 영화를 직접 감상한 후에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바하 - 진짜들의 이야기



사바하는 크게 세 개의 축으로 주연진이 나뉘어져 있고, 그 세 가지 축의 이야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들 모두 ‘진짜’라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세 개의 축(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 번째(신을 찾고자 하는 자들): 주인공인 박웅재 목사(이정재 분)는 ‘사이비’들을 추적하고 밝혀내는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계속 장사꾼 냄새 난다는 비난을 듣지만 틀림없는 ‘진짜배기 목사'입니다. 

그는 (영화 속에서는 친구의 일이라고 얘기하지만) 외국으로 선교를 떠났다가 무슬림 소년 테러리스트에게 부인과 어린 자식 둘을 모두 잃고만, 아주 비극적인 사연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소년 테러리스트에게 ‘이것은 신의 뜻에 따른 일이다.’라는 대답을 듣고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죠. 

진짜 목사였지만 신에 대해 회의를 품게 되었고, 자신에게 내려진 비극에 대한 온당한 이유를 말해줄 ‘진짜’ 신을 만나고 싶어서 이단과 사이비를 추적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온건한 형태의 십자군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죠. 신에게 회의를 품었지만 이단들을 솎아내다 보면 진짜 신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세상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수많은 가짜들에 대해 파헤치던 중에, 박목사는 ‘진짜’를 만나게 됩니다


2. 두 번째(괴물과 함께 태어난 소녀): 여고생 금화는 태어날 때부터 불길함 속에 매몰된 아이입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함께 잉태되었던 쌍둥이 자매는 탯줄이 없어 그녀의 다리를 갉아먹으며 자라났으며(덕분에 금화는 날 때부터 절름발이) 털투성이 괴물의 형상까지 갖추고 있었죠. 

어머니는 산후 1주일만에 사망하였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아버지는 무언가에 홀린듯이 자살, 이후 쌍둥이 자매는 조부모의 손에 키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짐승 형상의 반쪽 덕분에 가는 곳마다 흉흉한 징조(극의 초반에 검은 염소가 우는 장면과 죽어 나가는 마을 소들의 모습)가 따라다니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수근거림을 피해 쫓기듯이 계속 전학을 다니게 됩니다. 짐승 형상의 쌍둥이는 창고에 갇힌 채로 계속 기괴하게 울어대고 그 창고에 가까이 다가가면 뱀이 튀어나오는 등의 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지곤 하죠. 할머니는 계속 몸을 채찍으로 쳐대며 기도하고 할아버지도 극도로 지쳐 있습니다. 이러한 기괴한 환경 속에서 자라나야했던 금화는 ‘진짜’ 괴물인 쌍둥이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합니다.


3. 세 번째(신성한 존재와 그를 추종하는 자들): ‘광목’이라고 불리우며, 또 다른 수상한 남자를 ‘지국님’이라는 이상한 닉네임(--;)으로 부르면서 등장하는 정나한. 그는 ‘진짜’ 미륵이라고 불리운 동방교 교주 ‘김제석’이 걷어키운, 아들같이 소중한 제자입니다. 그리고 김제석(미륵님)의 뜻을 받들어 사천왕 중 하나를 칭하고 모종의 과업을 수행 중이죠(불교에서 사천왕의 명칭은 지국천(持國天), 남방 증장천(增長天), 서방 광목천(廣目天), 북방 다문천(多聞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광목은 비록 창녀 출신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아버지를 죽이고 소년원에 들어갔지만, 제석을 만난 이후 진정한 사천왕이 되어 아주 중요한 일을 맡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자신을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라고 여기게 된 것 같습니다. 소년범이란 과거에서 벗어나 ‘진짜’ 미륵의 ‘진짜’ 제자(사천왕)로서 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점점 제석에게서 명 받아서 수행하는 일이 이상함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이 세 무리의 ‘진짜’들은 나름 미묘하게 얽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우연히 발견된 터널 벽 속 여중생의 변사체로부터 시작된 살인범을 추적하던 중, 알고 보니 이 사건이 단순 살해 및 시체 유기가 아닌 ‘연쇄 살인’이었다는 게 밝혀지게 됩니다. 

사건의 진실에 대해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 살인들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왜 살인이 일어나야 하는가?’에서 ‘이것이 사실은 꼭 필요한 살인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도 잠시 떠오르게 만들어주는 미묘한 전개가 진행되기 때문에 말이죠.


왜냐하면, 추적 과정에서 이 사건은 ‘진짜’ 미륵이 관련된 살인이라는 힌트가 나오는데, 인간의 종교적인 선악관에 따르면 ‘진짜’ 미륵(=신)이 하는 살인이면 뭔가 의미가 있을 것도 같은 기분이 들게 됩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진정한 신’이 있다는 생각에 의해, ‘신의 뜻에 의한 살인이면 나름 선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잠시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성한 존재의 뜻에 의한 살인은 무슬림 소년 테러리스트에 의해서도 벌어졌고, 영화 후반부에 언급되는 ‘아기 예수 탄생’에 의해서도 벌어졌으며(이건 신의 뜻은 아니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예언 자체가 인간을 움직였으니 광의로 보면 신의 뜻에 가깝다), 현재까지도 무수한 종교 관련 문제로 계속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고민을 하게 됩니다. ‘진짜 신의 뜻이면, 우리 인간에게 우호적이지도 않고 비정하고 잔인한 일이라도 온당하게 여기며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고민이죠. 기독교적인 관점으로만 보면(특히 구약), 하나님의 뜻이면 다 의미가 있으므로, 그에 의한 무수한 살육은 일종의 이벤트처럼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신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 중 하나로 말이죠. 그러나 ‘사바하’에서는 중심이 되는 사상 자체가 기독교가 아니며 불교/밀교의 컨셉을 가지고 만든 영화이므로, 기독교적인 생각만 가지고 고민하면 놓칠 수 있는 반전이 숨어있습니다. ‘인간의 길을 저버린 신을 계속 신이라 볼 수 있는가?’라는…


영화 내내 특유의 신비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제석은 틀림없이 신에 가까운 존재였습니다. 불로불사에 한없이 가까워진, 완성 직전의 신과 같은 단계, 미륵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는 고작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인간의 길’을 저버리고, 예언 속의 ‘대적자’를 없애기 위해 죄 없는 소녀들을 살육하기 시작합니다. 그것도 자기를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는 네 명의 소년(-> 청년)의 손을 더럽혀가면서... 결국은 신의 길이 아닌, 또 다른 왕의 탄생을 불안하게 여긴 살육자에 불과했던 헤롯왕의 뒤를 따르고, 자신의 제자들을 무슬림 소년 테러리스트와 같은 존재로 만들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기독교의 신(혹은 이슬람)을 믿는 근대 이전 시대의 광신도라면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살육전을 벌이고 있어도 신도들은 ‘다 신의 뜻대로’라고 생각하며 넘어가며 기도하고 끝을 맺습니다(선량한 종교인들을 매도하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신의 뜻을 따르는 과정에서 더 이상의 인간적인 고민 따위는 없어지는 것이죠. 그러나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아무리 미륵에 가까워졌어도 타인을 해치고 욕망에 잠식되면 신의 자격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사바 세계의 욕심에 대해 해탈을 하지 못 하고 다시 윤회의 고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제석이 대적자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지 않았다면, 대적자를 만나 죽음이란 과정을 통해 해탈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대적자라는 개념은 기독교적인 안티-크라이스트(적그리스도)라기보다는 양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음이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죠.


그러나 결국 제석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굴복했고, 그로부터 도피하고자 살육을 벌였기 때문에, 오히려 미륵을 해치기로 예정되어 있던 짐승 형상의 대적자(금화의 쌍둥이 자매)가 그 허물을 벗고 미륵이 되어버립니다. 다시 생각해보면, 짐승은 그 미륵이 되기까지 십 수년을 빛도 들지 않는 곳에서 갇혀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었고 죄 없는 죽음에 울어주는 형태로 고행을 한 셈이 된 것이죠.


결국 ‘사바하’는 우리가 보통 많이 생각하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신만이 있을 것이란 생각(최소한 내가 믿는 신은 그럴 것이라는 류의)’과 ‘신의 뜻은 무조건 믿고 따르는 신앙심’이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슬쩍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꼭 신앙이 아니라도 자기만의 신념이 아집화 되지 않도록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 세 개의 축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누구도 가짜는 아니었습니다. 다 나름대로는 ‘진짜’였지만, 결국 사람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자들만이 인세에 남게 됩니다. 


가족들의 죽음을 겪고 신에 대한 회의를 품었지만 그래도 인간을 끝까지 미워하지 않고 소녀들을 구하려 한 박목사, 마지막까지 쌍둥이에게 동정심을 잃지 않은 금화는 인간 세상에 남았고, 영원을 꿈꾸던 제석은 불타 없어지게 됩니다. 

제석의 꼬임에 넘어가 살인의 죄를 지었던 정나한은 좀 애매한 위치지만, 마지막에 ‘신이라도 그 죄를 갚으려면 그 목이 백 개라도 모자라다!’고 외친 것을 볼 때 결국 사람의 길로 돌아왔다고 생각됩니다. 죄는 깊지만 그 죄를 다시 갚을 기회를 얻을 윤회 속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마지막, 짐승에서 미륵이 된 그 소녀는 말그대로 생의 끄트머리에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해탈의 형식으로 윤회를 벗어났을 것으로 보입니다. 미륵의 자매였던 금화는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비심을 버리지 않은 인간이었기에, 앞으로의 인생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신의 종교관에 회의까지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으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광신만은 피하자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장재현 감독님께서 오컬트 길만 쭉 걸으시기를...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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