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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 May 10. 2024

엄마 김밥이 창피해?

너덜너덜해진 마음


손, 발이 떨리고 마음 한 켠에 뚫린 구멍으로 꽁꽁 얼어붙은 차고 시린 바람이 지나갔다. 이렇게 물거품이 될 줄 알았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을. 새벽부터 하던 일을 다 밀어내고 발을 동동거리며 느리고 더딘 손을 바삐 움직였다. 내 마음과 정성이 다 전해지지 못해도 허기를 달래줄 기쁨을 될 거라 생각하며 모든 재료를 아낌없이 담아 꼭꼭 둘러싼 김밥. 그렇게 불쌍함이 상징이 되어 너덜너덜 돌아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중학교를 입학해 처음 가는 현장학습. 여러 가지 이유로 졸업여행조차 하지 못한 아이가 안쓰러웠다.  모든 6학년 아이들이 마음을 모아 꾹꾹 눌러쓴 편지들의 간절한 외침에도 결국 좌절되고만 졸업여행. 아쉽게 끝난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서 가는 첫 현장학습에 엄마가 더 기대하고 설레었는지 모르겠다. 초등과는 다르게 현장학습에 대해 아무런 연락이나 공지가 없다. 아이의 입을 통해서만 준비를 해야 했다. 사춘기라는 혼돈의 미궁 초입에 들어선 아이는 건성으로 짧게 대답을 마쳤다. “도시락, 물, 간식이요”


5월 초 연휴가 길었지만 날씨는 좋지 않았다. 흐리고 춥고 비가 그치질 않고 내렸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함께 치르느라 없는 돈이 술술 새어도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좋아하셔서 보기만 해도 덩달아 좋았다. 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들이 아이들은 언제나 좋아한다. 여전히 조부모님께 애정 표현도 많이 하고 사촌들과 즐겁게 보내느라 흘러가는 시간들을 아쉬워했다. 집 밖은 어두워도 집 안은 환하게 훈훈함이 가득 찼다.


저녁까지 집에 가기 싫다는 아이들, 조금 더 있다 가라는 부모님 성화에 짧은 연휴 끝에 오는 아이의 현장학습에 가져갈 음식을 사러 마트로 서둘러 갔다. 아이에게 몇 번을 물어봤다. 점심 도시락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간식은 어떤 걸 가져가고 싶은지. “엄마 김밥이랑 팝콘이요! “ 중학생들의 트렌드를 못 따라가기에 아이의 의견을 들어야 했다. 몇 번을 다시 물어도 김밥 3줄을 외쳐 은근히 미소가 흘렀다. 엄마 김밥을 싸서 가고 싶은 중학생이라니 아직 어리구나 싶고 엄마 밥을 먹고 싶어 하는 게 고마웠다.


<unsplash.com>



새벽에 일어나 아이가 원하는 재료를 빠르게 준비해내야 했다. 손도 느리고 음식도 못하는 엄마지만 아이에게 싸주는 도시락은 더 잘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원하는 스팸도 굽고 참치와 넣을 깻잎도 씻어두고 야채도 부족할까 싶어 당근과 오이도 준비했다. 김밥에 정성과 사랑을 가득 담아 만들면서도 춥고 비 오는 날씨에 아이가 먹다가 체하거나 이동 중에 상할까 염려가 되었다. 도시락을 한사코 거부하며. 시중에서 파는 김밥처럼 호일에 말아달라고 요청해 왔다. 조금씩 까먹는 게 편하다고 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커다란 지퍼락에 잘 싸서 미리 사 둔 간식과 음료수와 같이 넣어줬다. 혹시나 다른 친구들이 간식을 사 먹을 때 못 낄까 봐 간식을 사 먹을 카드와 현금까지 살뜰히 챙겼다. 아이가 가방에 넣을 때 다시 물었다. “진짜 김밥을 호일에 이렇게 싸가도 되겠어?” 아이는 좋다면서 밥도 과자도 다 먹고 오겠다며 우산을 가져가기 싫다고 다른 데서 투정을 부렸다. 접는 우산을 건네주며 잃어버리지 말고 잘 가져오고 조심히 즐겁게 놀다 오라고 배웅해서 보냈다.




아이를 보내고 곧 입원해서 수술하실 엄마를 만나러 갔다. 식사도 하고 근처 절에도 다녀오면서 마음도 정리하고 돌아와서 아이를 반갑게 맞이했다. 밥을 잘 먹고 간식도 잘 먹었다며 학원에 갔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 아이가 아침에 싸준 김밥 3줄을 그대로 지퍼락 채 들고 나온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다. 분명히 다녀와서는 다 먹었다더니 학원을 다녀와서 안 먹었다고 다시 꺼낸 이유를 물어보면서도 계속 화가 차올랐다. 아이 입에서 나온 말이 가관이었다.


애들이 나 빼고 아무도 김밥을 안 싸왔어요. 다들 우동이나 돈가스를 사 먹더라고요.
내가 옆에서 김밥을 먹으려고 꺼내니까 친구가 불쌍하다면서 우동을 사줬어요.
 그거 먹느라 김밥을 못 먹었어요. 죄송해요.


대체 왜 엄마가 정성 들여 싸준 김밥을 먹는 게 불쌍하단 말인가? 중학생들의 사고방식이나 트렌드가 그런 건가? 친구들끼리 사 먹는 즐거움은 이해한다. 하지만 친구가 김밥을 싸 오면 ‘펼쳐놓고 다 같이 나눠먹자’라는 대답이 일반적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너무 많은 생각이 오가며 혼란스러웠다. 너무 ‘라테는’을 외쳐대는 구식 엄마가 돼 버린 기분이었다. 중학생은 현장학습에 돈을 가져가서 사 먹어야지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걸 왜 나만 몰랐을까. 엄마가 알아서 김밥을 만들지 않고 돈을 주었어야 했는데 무지했던 걸까? 김밥을 정성껏 만들어 싸 준 엄마도 그런 김밥을 들고 간 아이도 불쌍해져 버렸다.


여기저기 엄마들에게 물어라도 볼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굳이 왜 김밥을 만들고 불쌍해 보이게 호일에 둘둘 말아 지퍼백에 넣어 준건지. 엄마의 정성을 안 먹고 하루종일 들고 다니다 왔다며 아이에게 화를 내야만 했는지. 모든 것이 미안한 밤이었다. 친구관계로 마음을 많이 쓰는 사춘기에 들어서는 아이에게 또 한 번 큰 상처를 준건 아닐까 미안하고 마음이 오래도록 아프고 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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