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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래울 Jul 02. 2024

불안이 걱정이

<인사이드 아웃2>와 <소울>과 알랭드보통의 <불안> 연결해 보기

 <인사이드 아웃 2>편의 주인공은 불안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엄마의 불안과 걱정에 연결된 내 불안을 뒤적여 보리라는 생각이 차올랐다. 감독 인터뷰에 의하면 초기 버전에는 불안이의 컨셉이 빌런이었으나 초빙한 심리학 전문가들로부터 "우리가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우리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불안이는 반드시 득점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제어판을 조종하다가 라일리가 그레이스를 세게 넘어뜨려 반칙으로 퇴장을 당하게 되니까 제어판에 과부하가 일어날 정도로 폭주하게 된다. 사람이 심각한 불안에 빠지게 되면 다른 감정 따윈 느끼지 못하거나 패닉을 일으키고 이성을 잃게도 만들지만, 성장하면서 불안은 조절 가능하게 되어 적정량의 불안감은 오히려 미래를 준비하는 동기 부여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됨을 여러 군데에서 암시한다.         



  열 살도 되기 전에 엄마를 여의고 동생들을 돌보며 할머니와 아버지와 살던 나의 엄마는 열여섯에 한국전쟁을 만나고, 전쟁이 잦아들 무렵 업어 키우던 막내동생이 놀러 나갔다가 지뢰를 밟아 죽는 사고를 겪는다. 몸도 건강하지 않던 엄마에게는 생애 초기에 반복된 애착 손상과 강렬한 상실감을 겪은 외상으로 감정의 응어리가 남게 된다.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은 엄마 인생의 핵심감정이 되어 마음이 조금만 흔들리거나 유사한 자극과 상황이 주어지면 강렬한 감정적 소용돌이가 일어나 제어가 되지 않고 최악의 상상을 단박에 불러오곤 한다. 불안이를 보면서 정리해 본 엄마의 패턴이다. 아동기의 상처로 인해 불안의 감정이 강력하게 생을 지배하는 틀로 남아 그에 맞는 데이터를 축적해 놓고 유사 상황의 판단 근거로 자동 인출해 사용한다.     

 

 엄마의 과도한 불안과 걱정에 지배당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내 삶에서도 아들들의 입을 통해 가끔 유사한 불만을 듣게 되는 걸 보면 나에게도 대를 물려 스며든 불안의 그림자를 부정할 수 없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에는 불안이 생기는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고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 등불안을 떨칠 수 있는 다섯 가지 해법을 함께 제시한다.     


 우선 사랑결핍의 원인을 보면 사랑해 본 경험, 받아 본 경험,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준 사람이 있었다는 믿음,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봤다는 경험이 결핍되면 불안하다고 한다. 근원적 의미에서 사랑의 경험이 헝클어져 있거나 심각한 손상이 있으면 깨지기 전의 상태로 돌리고 싶어하는 욕망이 불안의 원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 엄마의 불안이 심각하게 뿌리 내리고 있음은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속물근성은 기대와 능력주의와 연결되어 불안의 원인이 된다. 속물근성은 귀족이 아닌데 귀족인 체하는 것으로 상류층을 선망하니 불안이 커지고, 끊임없는 비교가 근본적인 불안을 조장하면서 속물근성과 기대치가 커지는 순환에 빠진다는 것이다. 

 

 무능하고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약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능력주의이다. 열심히 안 해서, 무책임하고 게을러서 모든 책임이 개인에게 있다고 비난하는 능력주의가 은연중에 삶의 많은 부분을 잠식하고 있다고 느낀다. 가족이나 학교나 사회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자신과 타인을 고통스럽게 굴복시키는 시선이다. 행복주의도 불행의 책임이 웃을 줄 모르거나 부정적이라는 등으로 개인에게 원인을 돌린다는 점에서 능력주의와 같은 맥락이라고 한다.      

 사회적 문제는 도외시하고 개인에게 책임을 귀속시키는 능력주의는 죄책감을 먼저 끌어올려 체제에 순화시키는 무서운 만능키였다고 절감한다. 내가 무의식적으로 눌려온 능력주의를 내가 불안할 때마다 휘둘렀을 것이기에 나이 들수록 학교가 불편해졌을 것도 같다. 불안의 노예로 자라서 별생각 없이 '문제는 너에게 있다'는 불안카드로 아이들을 통제하는 역할을 한 건 아니었을까      


  불안의 해결책 다섯 가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타고난 차이와 외부에서 오는 운의 중요성을 전제로 하는 명리학 책을 읽을수록 불안 해결의 도구로써 공감이 된다. 우르르 한 방향으로 몰려다니며 타인의 욕망이나 비교에 시달리지 않고 타고난 내 삶의 스타일을 찾아가며 차이를 만들어 가는 것, 내 불안의 원인에 대해 그려보며 조금씩 덜어내고 다른 나를 다양하게 만나 보는 것, 그런 식으로 비교를 벗어나 불안을 해소할 작은 방법들을 확장해 갈 수 있을까. 어디서 봤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비교는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는 것이라 했다.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는 《장자, 도를 말하다》에서     

  “삶은 경험이지 이론이 아니다. 삶에는 해석이 필요없다. 삶은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다. (중략) 매 순간 삶이 그대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는 머리로 궁리하고 있다. 그대는 삶에게 말한다. ‘기다려라. 내가 문을 열어 주겠다. 그러나 먼저 결정 내릴 시간을 달라.’ 삶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평생토록 삶이 그냥 왔다가 간다. 그대는 살아 있지도 않고 죽어 있지도 않은 채 다만 고달프게 질질 끌려갈 뿐이다.”라고 했다. 


생각만으로 지쳐 버리는 삶에서 벗어나 그냥 살아야 하고 경험해야 하고 누려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보며 <인사이드 아웃>과 <코코> <업>의 제작진이 만든 픽사의 영화 <소울>이 생각나 디즈니 플러스로 다시 보았다.      

‘태어나기 전 세상’에 있는 꼬마 영혼들은 지구에 가기 위해 자신의 성격, 재능, 가치관 등을 습득하게 된다. 오랜 세월 ‘태어나기 전 세상’에 머물렀던 영혼 ‘22’는 지구 통행증을 얻기 위한 마지막 ‘불꽃(열정,목적)’을 찾지 못해 멘토들에게 상처 받고 위축되다가 잠시 ‘조’와 지구에 살아보면서 ‘불꽃(열정,목적)’이라고 믿게 되는 경험을 한다. “하늘을 보는 게 제 스파크가 아닐까요? 아니면 걷기! 저 엄청 잘 걷잖아요”하니까 “그건 목적(열정)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라고 ‘조’는 응수한다. 


 평생 재즈 뮤지션을 꿈꿔온 ‘조’는 드디어 ‘도로테아 윌리엄스’와 멋진 공연을 성사시켜 그토록 바라던 환호와 갈채를 받지만 자신이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공허함을 느낀다. 여기서 ‘도로테아 윌리엄스’는 '조'에게 어떤 젊은 물고기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젊은 물고기가 있었는데 나이 든 물고기에게 헤엄쳐 가 물었지. ‘전 바다라고 하는 그 엄청난 것을 찾고 있어요’, ‘바다?’ 나이 든 물고기가 말했어. ‘그건 지금 네가 있는 곳이야.' 젊은 물고기는 말했어 ‘여기는 그냥 물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은 바다라고요!’ 라고 말이야”     


 ‘태어나기 전 세상’의 수많은 영혼들을 관리하는 카운슬러 ‘제리’들은 “불꽃은 영혼의 ‘목적’이 아니에요. 인생을 살 준비가 되면 마지막 칸은 채워져”라고 말한다. 불꽃이란 거창한 삶의 목적이나 뛰어난 재능이 아닌, 그저 삶을 사랑하고 살 준비가 된 것이면 그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조’는 그렇게 다시 인생을 살아가면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을 좇고 그것을 이루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 그 자체라는 것을 깨닫는다. 언젠가 어디선가 큰 한 방이 터지는 진짜 인생이 있을 거라는 관념적인 미래에 대한 헛된 기대 속에서 현실의 삶을 임시방편처럼 연습처럼 여기지 않고 삶의 매 순간을 그냥 살겠다는 것이 마지막 대사다.


 오랜 꿈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조’와 남들과 달리 꿈이 없어 고민하던 ‘22’의 대비를 통해, 삶의 목적을 추구하거나 거대한 꿈을 찾느라 매몰되거나 현실을 흘려보내지 말고 자신에게 주어진 생생한 삶의 바다에서 지금의 이 순간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하고 있다. 


  ‘22’가 말했던 '재즈한다'는 말처럼 이 순간을 즐기고 포착하고 기록하는 재즈음악의 특징이 주제와 너무 잘 어울린다. 정말 연주하는 듯한 실감나는 모습과 재즈 음악들이 애니메이션이션이라는 것을 잊을 만큼 몰입감을 끌어 올린다. <인사이드 아웃2>와 <소울>을 연결해 다시 보면서 관통하는 메시지를 정리하다 보니 내가 아이들에게 꿈얘기를 할 때마다 속으로 멀미가 나던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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