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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Jan 29. 2024

작심삼일의 자해석

석파정 미술관 & 요시다 유니 Alchemy+ (24.01.28)

 공급망관리자(SCM)로 일할 때의 기억이다. 공급망 관리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분야가 있다. 물류, 운송, 창고, 무역, 재무 등 아주 여러 가지를 해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수요예측'에 대한 기억에서 발췌가 필요하다.

 수요예측은 어떤 상품이 몇 개나 팔릴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평균 몇 개나 가지고 장사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분야다. 예를 들어 바나나 우유가 하루 평균 10개 팔리는데 생산이 8일, 운송이 2일 걸린다고 생각하면 10x10 = 약 100개는 최소한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계산이 된다. 물론 유통기한, 생산 주기, 최소 주문 수량, 운송 수단까지 고려하면 많이 복잡해지고 주기가 달라진다. 오늘의 주제가 '수요예측'에 대한 설명이 아니기 때문에 이쯤에서 접어두고 수요예측의 오묘함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일했기 때문에 상품을 전국단위로 판매했다. 그중 섬유 유연제 제품이 나에겐 너무나 미스터리였다. 조금 더 확장하면 평균에 대한 미스터리였다. 도대체 왜 하루에 250개가 팔리는데 매일 그 오차가 5%를 벗어나질 않는 걸까? 숫자로 보면 더 황당하다. 250개, 253개, 242개, 249개... 전국에서 구매를 하는데 이 숫자의 일률적인 흐름은 무엇일까. 더군다나 사업 확장 시기였기 때문에 플랫폼에 대한 기초 수요도 변경될 텐데.. 온갖 생각이 많았지만 결국 수요예측이라는 것은 수요가 일정한 흐름이 있다는 가정하에 계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고맙긴 했다.

 이런 수요예측에도 어느 날 30% 이상 변동이 있을 때가 있었다. 처음엔 '역시, 이렇게 흐름이 정확할리 없어'라는 조금은 들뜬 혼잣말을 던졌다가, 이내 이유를 찾아보면 '섬유 유연제 플라스틱 파동' 같은 기사가 포털 사이트 메인에 잡힌다. 결국 평균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다음 커리어로 넘어왔다. (조금 더 공학적으로 접근했으면 쉬운 문제인지 모른다. 평균에 대한 깊은 이해에 대한 조언을 구해봐야겠다)
 


 사설이 길었다. 작심삼일에 대한 평균적 경험을 위해 꽤 긴 지면을 할애했다. 그만큼 변명하고 싶은 말이 '작심삼일'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평균적으로 공감했으면 정확한 숫자, 즉 3과 연결하여 작심삼일이 나왔을까? 그 미스터리의 실마리가 조금은 풀리는 이번 여정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 3시간. 타인의 위대한 업적을 보면서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약 3주가 행한 프로젝트의 목표다. 이 목표를 계획할 때의 가정은 '나는 타인의 위대한 업적을 보면서 동기 부여를 하는 사람이다.'였다. 아직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작심삼일, 즉 3번째 도전에는 뭔가가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직도 일요일 아침이 주는 상쾌함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리고 전시장까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운전하는 즐거움도 있다. 그런데 뭔가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목표에 대한 설렘이었다. 오늘은 어떤 영감을 받을지, 내가 이번주에 잃어버린 것은 무엇 일지에 알아내는 것에 대한 설렘의 결여다.

 덧붙여서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부암동 일대를 자주 방문하다 다녀오다 보니 나의 동기는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부여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가는 환경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시작된 부분도 한몫 거든다. 거기다 최근 일이 힘들었고 그 동기를 찾기 정말 어려워서 애초에 일자체가 문제인가 등에 대한 생각도 껴든다. 결국 최초 목표했던 것에 여러 가지 상념이 껴들면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거짓말 같게도 딱 3번째 시도만에.

 


 동기는 잃었지만 전시회를 감상하는 자세에서 나에게 낯섦을 느낀다. 전시회 가이드 QR를 스캔해서 핸드폰에 가이드를 띄우고 천천히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한다. 그러다가 어떤 작품은 꽤 오래 지켜보면서 '이거 참 재밌는 생각이네' 하면서 혼자 웃기도 한다. 그러다가 그 많은 작품 중에서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작품도 몇 개 생겨서 사진도 하나 찍어본다. '어? 나 전시회 좋아하나?'

 신기한 것은 이 일련의 과정이 마치 하나의 흐름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7시 즈음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8시 45분쯤 출발한다. 그리고 9시 30분쯤 도착해서 미리 전시회에 주차한다. 동네를 한 바퀴 구경하고 10시부터 전시회를 감상한다. 10시에 시작하지 않는 전시회는 싫다. 조금이라도 늦어져서 12시 정각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면 오전 시간을 육아에서 제외해 준 아내에게 미안하다. 물론 전시회를 다 보고 약 10분 정도는 아내와 아이에게 줄 맛있는 디저트를 꼭 사야 한다. 이 모든 게 하나의 흐름처럼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떤 동기를 찾기보다는 이 행위 자체를 습관하고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보면 전체 흐름에서 내가 순수하게 즐거운 부분이 아니면 그 과정에 남겨두기 어렵다. 이 글쓰기가 그중 하나다. 즐겁긴 한데 즐거움보다는 아직은 시간에 대한 투자와 교정의 귀찮음이 있기에 3번째 시도에서는 결국 밀리고 말았다. 그러다 새벽에나 되어서 마음을 고치고 글을 써 내려간다.

헬로키티 T-Market

 


  내가 찾은 작심삼일의 비밀은 습관과 흐름에 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 꽤 큰 목적을 가지게 된다. 가끔은 너무나도 웅장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나에 대한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이 최초의 감정을 꼭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첫날 무리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제나 세 번째 날이 다가오고 첫째 날의 목적을 잃어버린 상태가 된다. 최초의 목적 근처로 여러 가지 상념이 엉겅퀴가 되어서 달라붙었고, 달라붙은 상념에 가려진 빛을 잃어버린 계획은 어쩐지 하기가 싫다.

 그런데 이 3번째의 고난을 겪고도 살아남는 계획이 있다. 그건 아마도 즐거움 그 자체 아닐까? 작심삼일을 겪었지만 다음 주에도 갈 것이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은 예스다. 동기와 목적을 찾는 것은 좀 희미해졌지만 일요일아침이 주는 고요함이 즐겁고, 전시회가 주는 생각이 재밌다. 그 길목에서 좋은 디저트를 찾아내는 경험이 좋고 그걸 기다려주는 가족이 행복하다. 물론 그 이후에 써야 하는 글에 대한 감정은 아직 반반인데 이 고비만 넘으면 나에게 좋은 습관이 될 것 같다.



  요시다 유니의 전시회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상상에 대한 실현 방법에 대한 것이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바나나 피사체가 왜 이렇게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지? 예술이란 의미 부여 그 자체인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무안했다. 아마 오디오 가이드가 없었으면 몰랐을 것이다. 그 오묘하게 이어 붙인 바나나와 사과가 실제 바나나와 사과를 자르고 붙였다는 사실을.

 착시를 모티브로 사용하는 작가지만 착시를 이루어내는 과정이 핵심이다. 단순히 그래픽 작업의 착시가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작업이 수동이다. 이를테면 사과 껍질을 잘라서 바나나에 붙이는 형태다. 정말 귀찮은 작업을 잘도 해낸다는 생각을 했다.

 전시회 마지막에 마련된 작가의 영상 인터뷰에 나와 비슷한 질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거, 좋긴 한데... 너무 귀찮지 않아요? 아주 차분한 말투로 그녀는 대답한다. '근데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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