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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Braun Feb 25. 2024

취향과 사람

서울시립미술관 & 구본창의 항해 (24.02.18)

 가끔 익숙한 단어의 어원을 찾아본다던가 한자어를 찾는 묘한 습관이 있다. 대개의 경우에는 아주 순수한 호기심이만 아주 가끔은 그 단어가 주는 울림을 깊게 고민해보고 싶을 때 찾기도 한다. 취향은 '趣向'이라는 한자를 쓴다. '향(向)'은 꽤 자주 본 한자이기 때문에 역시 방향을 뜻하는구나 한다. 관심이 가는 부분은 '취(趣)'인데 '뜻 취'라고 한다. 달릴 '주(走)'와 취할 '취(醉)‘의 합으로 이루어진 형성자라고 하는데 '달려서 취한다'니... 생각보다 매우 적극적인 것이구나 싶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수록된 내 안의 국어사전이 지나치게 예의 바른 게 아닌가 싶다. 아무래도 가치관의 문제일까? 취향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적극적이면 왠지 모르게 외골수의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왠지 취향이라는 단어로 적당히 나 자신을 숨긴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취향만큼 직설적인 단어도 없다.



 그런데 이 취향이라는 것이 AI를 이야기하는 현시대의 가장 주요한 단어 중 하나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의 대부분은 우리가 어떤 부분에 시간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지 분석한다. 겉으로는 손가락 몇 번 움직이는 정적인 행위가 되지만 그 이면에는 내 시간을 태워서 '달려서 취하는' 동적인 행위가 된다. '달려서 취해진' 데이터를 수집해서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을 노출시키는 행위를 최근 모두가 즐겨 쓰는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된다. 물론 '알고리즘' 그 단어 자체의 쓰임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나 방법'을 말하지만, 최근에 사용되는 실생활에서 쓰이는 단어로서는 아무래도 나 자신의 취향을 노출하는 AI의 작동 절차나 방법으로 사용된다. 이런 측면에서 내가 업으로 속한 이커머스 시장도 버티컬 커머스(한 카테고리의 전문적인)로 넘어가는 추세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싶다. 물론 취향이 필요하지 않은 생활의 커머스는 편리함이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항상 쓸데없이 서론이 긴 것의 내 글쓰기 취향이지 싶다. 전시회를 꾸준히 보다 보니 '취향'이 슬슬 생기는 것 같다. 설날 연휴를 제외한 모든 일요일 아침 미술관을 다녀왔는데, 리움 전시를 다녀온 날에는 글쓰기를 쉬었다. 몇 개의 주제가 생각났는데 글쓰기 자체를 위한 글감짜내기에 가까운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왠지 쓰기 싫어졌다.(카페의 커피가 기대이상으로 맛있다는 글을 쓸뻔한 것 보니 글감이 궁하긴 했나 보다)

 대신 '왜 다른 전시와는 다르게 감동이 조금 덜하지?'를 조금 더 파보았다. 우연히도 지금까지 5회의 관람 중 1번을 제외한 관람이 모두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다루는 전시였다. 다시 말해 리움에서의 관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인전이었다. 가만히 보니 그림이나 의미도 중요했지만 내가 가장 자주 멈춰서 시간을 많이 쓰는 부분은 작가가 써 내려간 텍스트들이다. 전시를 즐길 때 한 인간이 가졌던 고민들을 훔쳐보는 것이 내 취향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전시 환경이 내가 좋아하는 풍경 안에 있다면 그게 최고다.




 그런 면에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구본창 작가님의 사진전은 모든 취향의 전제를 충족했다. 일요일 아침의 고즈넉한 정동길 한가운데에서 한국 사진의 선구자의 인생을 담는 전시는 감상하기도 전에 기분을 맑게 해 준다. 이 정도도 꽤 좋은 우연의 조합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시의 시작부터 작가의 애정하는 잡동사니를 모아뒀다. 가만히 보니 작가님도 '취향'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것 같다. '아니지, 작가 혹은 예술가라는 직업의 본질이 취향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이 분야에서의 '취향'이라는 것은 본질이자 생존 필수조건 같다.  

 구본창 작가의 개인의 삶의 면면을 사진이 담고 있다. 독일은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유독 작가의 사진이 어떤 환경이나 느낌에서 찍어진 것인지 공감하게 된다. 물론 시대가 달라서 완전히 공감하긴 어렵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는 것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르게 고뇌하며 찍었던 사진의 배경이 되는 구본창이라는 학생의 방안에는 하얀색 유럽식 라디에이터가 덩그러니 있을 것 같은 익숙함도 느껴진다.




 시대별로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어떤 시간 이후부터는 작품도 많고 익숙한 느낌이 든다. 가만히 텍스트를 읽어보니 한국 사진을 대표하는 분 답게 이력이 엄청나다. 한 분야의 선구자가 가질만한 모든 이력이 들어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관심이 가는 것이 생긴다. 바로 그를 둘러싼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와 그들의 관계에 대한 내용이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의 내용은 이렇다. '아무개 씨가 연락을 주어서 그 일을 했고, 그것은 어떤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런 내용이 꽤 많은 것을 보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문구가 있다. Connect the dots.

 취향을 가진 개인이 있고, 그 취향의 주변으로 교집합을 가진 개인들이 존재한다. 이 개인들이 각각의 교집합을 기준으로 하나둘씩 연결되고 그 방향을 발전시켜 나면 하나의 세계가 생기는 것 같다. 구본창 작가 중심으로는 '예술의 취향'이 있었을 것이고, 그 주변으로 사람이 모여 '현대 사진'이라는 세계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내가 맞는 취향이 교집합 될 수 있도록 관계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꾸준히 다니고 깨닫는 것만큼, 그 취향을 표현하고 그 주변으로 관계하는 것에 신경 써봐야지 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 '헤르만헤세-데미안'




(번외)

취향이 상당히 개인적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내 미술취향은 그렇지는 않은가 보다. 매 전시에서 묘한 감동을 느끼고 사진에 담아서 나오면, 여지없이 이미 상업화되어 있거나 전시회 소개자료에 쓰이는 작품이다. (티켓의 메인 이미지 혹은 책갈피 등..) 이것이 대중성인가 보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하기까지는 아니지만 말 못 할 묘한 씁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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