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군인 시절 촘촘하게 적었던 일기장을 찾아보니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모르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나를 관통하는 모든 것들, 사소한 감정의 편린이나 훗날 떠올릴 수도 없는 일상의 미미한 사건들조차 강박적으로 기록해놓았다. 아마도 그것은 자유의지대로 피할 수 없는 외부 환경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내 안으로 도피하려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재발견으로, 당시의 나는 언젠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조금 웃겼다. 글 쓰는 행위로써 위안을 받으며 그것에 큰 의미를 두던 시기라서 가능한 이야기겠지만, 소망이라 일컫던 간절함조차 다른 환경의 흐르는 시간 속에서는 이렇게나 하릴없이 망각의 파도에 휩쓸려버린다니.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분명 다르니 그때의 소망도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게 됐다.
그러나 기록에 전념하던 순간들의 그 단단한 몰입감은 여전히 기억한다. 기록을 남기기에 앞서 외부의 환경들과 내면의 감정들을 세세히 살피려, 감각적으로 매우 각성되었던 그 상태를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살아지는 대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매 순간 내가 나로서 사는 느낌이었다. 속이 꽉 찬 열매나 소담하게 핀 꽃을 내 손에 꽉 쥐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것을 되살려보고자 한다. 훗날의 내가 다시 오늘의 나를 회상하는 데에 적당한 이정표가 되도록, 또한 지금 여기의 내가 매 순간을 더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말이다.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해변을 거닐다가 조가비와 조약돌을 주워 모으는 마음으로.
<산호와 진주는 나의 소원이었다. 그러나 산호와 진주는 바닷속 깊이깊이 거기에 있다. 파도는 언제나 거세고 바다 밑은 무섭다. 나는 수평선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잠수복을 입는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고작 양복바지를 말아 올리고 거닐면서 젖은 모래 위에 있는 조가비와 조약돌들을 줍는다. 주웠다가도 헤뜨려 버릴 것들, 그것들을 모아 두었다. (...) 나는 나의 이 조약돌과 조가비들을 '산호와 진주'라 부르련다.> 피천득, '인연'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