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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Jul 10. 2023

한국 최초의 ECM 재즈아티스트 신예원



1969년 11월.

독일 뮌헨의 한 젊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Manfred Eicher.


그는 단출하게나마 음반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재즈음악가들의 음반을 자기 손으로 제작하고 싶어 했다.


Edition of Contemporary Music,

줄여 ECM이라는 이름의 이 음반사는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가 직접 연주자들을 찾아다니며 깊은 대화를 나누고


작품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관여하는 방식으로

음반을 제작했다.



그러한 과정으로 만들어진 음악은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재즈에서 쉽게 들어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프로듀서의 취향이 깊게 반영된 음악,

또 하나의 예술작품이었던 앨범 재킷, 그리고

당시 재즈 음반에는 고려하지 않았던 높은 수준의 음질


위의 세 가지 요소들을 통해 ECM은 금세 음악가들과 전 세계 재즈팬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ECM을 통해 재즈의 중심은

미국과 유럽, 둘로 양분되었다.


출처 ECM

1995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색소폰 연주자 볼프강 푸쉬닉과 함께 남사당패 음악을 계승한 사물놀이의 창시자 김덕수 씨가 ECM을 통해 작품을 발표한 것은 한국 재즈계에 있어서는 대 사건이라 불릴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13년, 김덕수에 이어

재즈음악가로서는 최초로 ECM에서 음반을 낸 것이 바로 가수 신예원 씨다.


그러나 크게 이렇다 할 화제도 되지 않았고

내한공연 몇 회와 인터뷰 몇 회 정도로 활동을 마무리했으며

이후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아무런 소식 없이

그때도 지금도, 기사에서나 한 두 줄로 등장할 뿐인

한국 최초의 ECM 재즈음악가 신예원.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출처 네이버)

1981년에 태어난 신예원은 2002년,

신설 후 3년째에 이르는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다.


재학 중 신예원은 타이틀곡 '별'로 유명한 데뷔앨범을 발표하고 이미 가수로 활동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음악세계를 바꾼 사건이 일어나는데,


신예원은 동덕여대 실용음악과 설립 멤버인

김광민 교수의 음악감상론 수업과

미국의 재즈명문 뉴 스쿨에 재학 중이었던 친구의 권유로

재즈와 보사노바에서 자신의 길을 찾았다고 한다.


졸업 후 친구의 또 한 번의 권유로 뉴스쿨에 최고 수준의 장학금을 받고 입학,

뉴스쿨을 졸업하고 2007~2010년까지 4년 동안 세계 최정상 연주자들을 섭외해 인천 재즈페스티벌을 개최했던 이력도 있었다.



Yeahwon (2010)

2010년

드디어 대중가요가 아닌 재즈보컬리스트로서 데뷔앨범을 낸 신예원.


소니 롤린스의 피아니스트 Kevin Hays

커트 로젠윙클의 베이시스트 Ben Street

퍼커션 Cyro Baptista

브래드 멜다우의 드러머 Jeff Ballad

스페셜피처링 Egberto Gismonti, Mark Turner


명연주자 멤버들로 구성된 신예원의 데뷔앨범은 2011년 라틴 그래미어워드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Lua Ya (2013)


그리고 2013년 발매한 신예원의 2집 Lua Ya.


출산할 딸 루아를 위해 동요와 민요 등을 모았고,

피아노 Aaron Parks, 아코디언 Rob Curto가 참여한 잔잔한 앨범이다.









그녀의 마지막 앨범을 얘기하기 위해서

그의 남편 정선에 대해 얘기해 보자.



1982년 태어난 재즈기타리스트 정선은


2001년에 기타리스트 한상원, 함춘호와 함께한 G3공연에 출연하면서 출연진이었던 신예원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신예원이 동덕여대 실음과에 입학한 2002년,

정선은 뉴스쿨에 진학했으며,

이후 신예원이 뉴스쿨로 오도록 권유했다.


2007~2010년의 시기에 정선은

신예원과 함께 인천재즈페스티벌을 개최했고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뉴잉글랜드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2009년에는 뉴욕 브루클린 레드훅으로 이주해 Aaron Parks, Ben Street 등 많은 재즈뮤지션들과 교류했는데,


어느 날 Ben Street의 초대로

ECM 녹음 세션에 따라가게 되면서 ECM의 창립자 만프레드 아이허와 만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2012년 ECM 프로듀서로 일하게 된다.


정선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ECM 프로듀서로 일했으며


ECM전시회와 ECM뮤직페스티벌 등 2013년의 모든 ECM 한국 행사의 시작점이 정선이었다.


ECM 재직기간 동안 정선이

만프레드 아이허에게 직접 소개하며

아티스트 섭외에 관여한 것이


아내 신예원, 아버지 정명훈, 그리고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Near East Quartet(NEQ)이다.


ECM 프로듀서를 사임한 정선은

2020년 자신의 음반사 Red Hook Records를 설립해 몇 장의 앨범을 발매했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두 사람의 이력을 표로 정리해 보자면..




2010년 상당히 고평가 받은 데뷔앨범을 낸 신예원.


그녀의 두 번째 앨범 Lua Ya는 2011년 남편 정선이 맡은 피아니스트 Aaron Parks의 녹음현장에 동행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Mechanics Hall

미국 매사추세츠 우스터에 위치한 메카닉스홀은 1855년에 지어져 매우 고풍스러운 디자인과 좋은 울림을 가진 공간이었다.


정선은 사운드체크를 위해 Aaron과 아내를 무대에 올려 뭐든 아무거나 불러보도록 시켰고, 그곳에서 신예원이 흥얼거린 멜로디는 섬집아기였다.


처음 듣는 노래에 Aaron Parks는 조금씩 반주를 얹기 시작했고, 잠깐의 연주였지만 그곳에 있었던 모두 그 느낌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정선이 ECM 프로듀서로 재직 중이던 어느 날,

당시 녹음된 아내의 섬집아기 데모를 만프레드에게 들려주자,

만프레드는 아내 신예원의 앨범을 정식으로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답했다.


부부는 녹음장소를 그때와 같은 메카닉스홀로 골랐는데,

그렇게 피아노 Aaron Parks, 아코디언 Rob Curto 3인조로 이뤄진 잔잔한 앨범을 탄생시켰다.


완성된 음악을 들은 만프레드는 잔잔한 음악이 필요한 지금 같은 시대에 잘 어울리는 아름답고 좋은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2141846602936184&mediaCodeNo=257


2013년은 정씨 가족에게 의미 있는 한 해였다.

아버지와 아내의 앨범 두 장이 세상에 나왔고, 딸 루아가 출생했으며,

정선의 요청으로 한국에서 ECM전시회와

작은 페스티벌 형식의 ECM뮤직페스티벌을 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이후 다시는 우리가 공식석상에서 신예원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신예원은 딸 루아를 얻은 뒤

음악보다는 가족을 우선하기로 한 것 같다.


첫째가 가족, 그다음이 음악이라는 정명훈의 가풍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한국 최초의 ECM재즈음악가이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콘서트 몇 번 없이 활동을 마무리 한

신예원.


남편 정선의 도움이 ECM 활동에 있어 결정적이었던 점이 그녀의 커리어에 편견으로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


악기연주 중심의 음악인 재즈계에서, 더욱이 한국동요와 민요를 기반으로

정통재즈와 거리가 먼 차분한 노래음악을 선보였다는 점이 편견을 심화시킨 것일지도 모른다.


2008년 제2회 인천재즈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선&예원 오케스트라는 국악을 기반으로 한 '북한산'과 바닷속 풍경을 그려낸 '스노클링 트립' 등을 선보였고,

당시 인터뷰에서 국악을 포함, 스스로에게 솔직한 음악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3년 이후

몇 차례의 국내, 외 공연 이력을 찾아볼 수 있긴 하지만 그녀의 새 음악작업은 아직 요원한 듯 보인다.


그녀가 음악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왔었다면.. 하는 아쉬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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