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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랑 Apr 30. 2021

내 가족의 비밀!

내 눈에만 보이는 결핍

나와 딸은 주목받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준비 없는 관심은 힘들어하기도 한다. 

신랑은 배려하기 위해 애를 쓴다. 아들 역시 마찬가지었지만 본인 만의 배려방식이 아빠와는 달랐다.

이런 내 가족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았다.          


온 가족이 큰 도화지 한 장을 펼쳐놓고 그림을 그렸다. 함께 한 장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다는 걸 상상해보지 못했다. 긴장감이 밀려왔다. 잘 그려야 하는데, 못 그리면 어쩌나..


나와 딸은 위로 위로 돌탑을 쌓아 올렸다. 마치 소원을 빌 듯이. 아들과 신랑은 공원에 있는 조형물을 도화지 속에 채워가기 시작했다. 아들은 고양이를 담당하는 집사답게 하단 귀퉁이에 고양이 두 마리를 그려 넣는다!

신랑은 젊은 시절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연애 시절, 지금처럼 톡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시절이 아니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크리스마스 카드를 거부했다. 남들에게는 평범한 그림이었겠지만 나에겐 특별한 그림을 그린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았다. 20년 지난 지금도 그 카드는 내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신랑은 그렇게 연필을 손에 꼭 쥐고 공원에 나무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햇볕에 쉼터를 제공하는 나무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큰 나무, 작은 나무를 연필로 쓱삭쓱삭 그려 넣기 시작했다.  빈공간의 넓은 백지에서 시원하고 아름다운 우리 가족의 정원이 채워져 가고 있었다.  

   

심리학적으로 바라보면 신랑은 채워 주려고 애쓰는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채워지고, 표현할 줄 몰랐던 남자.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있을땐 나의 마음을 1순위로 알아주는 남자인 줄 알고 살았던 14년! 신랑의 헛된 욕심으로 인해 집이 날아가고, 차도 날아가고, 끝도 모를 빚더미에 휘청하면서 신랑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7년의 연애 생활과 14년의 결혼생활이 어떻게 했겠느냐는 궁금증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남자가 되었다.  이 남자는 왜 나와 생각하고 느끼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모든 방식이 다를까 하는 의문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나는 연애하는 동안 이 남자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결혼했다. 내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게 내 삶에서 제일 크게 한 착각이었다. 이 남자를 21년 동안 알고 살면서 내게는 멋있고, 든든하고, 나를 잘 알아준다는 콩깍지가 쏵 떨어져 나갔으니..       


그림을 그리면서 알게 되었다. 남편의 언어는 속도가 느렸다는 것을. 그리고 조용히 공원의 아름드리나무를 그리며 빈 도화지를 채워나가려고만 했다. 빼꼼히 수줍은 듯 얼굴을 내민 강아지와 공 차고 노는 아들을 그리면서.. 


나란 여자는 빠른 속도로 한 방향으로 쭉 나아가서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360도 방향을 한 번씩 다 돌아보며 옆으로 두리뭉실하고 평안하게 가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안온하고, 평화롭고 갈등만 없으면 되는 사람인 줄 알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갈등이 많은 사람이었다.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 표현하는 언어가 너무 많았던 사람. 그걸 눈치채지 못했던 아내가 나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각자의 가슴속에 있는 사랑을 성공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운데 건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고, 그를 통해 각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가장 바람직한 사랑과 보살핌을 줄 수 있는지 터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마법과도 같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서로의 차이를 기억하기만 한다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온 가족이 그림을 그린다는 게 설레었던 시간이었다. 다 그린 그림이 우리  가족처럼 하나의 완성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족 또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차이를 그림을 통해 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차이를 기억할 것이다.      


자,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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