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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nch Toast Mafia Jul 18. 2022

최악의 면접 경험

      앞선 OA(Online Assessment) 인터뷰와 함께 일정을 잡은 또 다른 잘 알려진 회사와의 면접. 이번엔 대면 인터뷰다. 내가 마음에 둔 대부분의 회사는 인터뷰를 탈락하더라도 cool down period라 하는 일종의 휴식기를 약 6개월, 1년가량 가진 뒤에 다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맞을 매라면 빨리 맞고 내년을 목표로 움직이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지난한 과정을 오래 견뎌낼 자신이 없고, 더욱 솔직히는 자기 확신이 너무나 부족한 상황에서 한 눈 팔다가 현재 회사에서 입지도 불안해지는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 한번의 기회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은 업계에서 근무 환경이 안 좋기로 소문이 난 회사 두 곳을 추렸다. 오퍼를 받더라도 가고 싶지 않을 회사라면 떨어지더라도 스스로 개의치 않을 터였다. Oh, boy. How wrong I was. 순진했어...




    인터뷰 당일, 인터뷰어는 10분을 늦게 나타나선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바로 질문에 들어갔다. 뭐지, 이 사람. 여기에다가 인터뷰 내용이 사전에 고지받은 진행 방식과 크게 달랐다. 리크루터에게선 첫 20분 코딩 문제를 묻고 남은 30분가량은 내가 일한 프로젝트에 대해 질문하는 형식의 인터뷰가 될 것이라고 전해 들었다. 그러나 인터뷰어는 아랑곳 않고 제 하고 싶은 대로 질문을 해댔다. 한 번도 이렇게 회사 이름을 달고 외부인을 대면하는 자리에서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질문하는 태도가 상당히 condescending한, 난 체하고 우위를 점하고 내려보는 느낌이었다. 무심하게 이력서를 읽어내리더니  대뜸 넌 이런 경력도 없고 이런 것도 안 해봤겠네? 하는 게 아닌가. 프로젝트를 설명해 보라기에 기껏 입꼬리에 경련 일어가며 웃는 얼굴로 답했더니 "What's so challenging about it?" (그게 뭐가 그렇게 대단한, 어려운 일이었다는 거야?) 하는데 혼이 빨려나가는 기분이었다. 왜, 굳이 말을 저런 식으로 할까? 이렇게 좁은 업계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차리지 않는 거지? 하는 의문을 내내 꾹 삼켰다. 갈수록 대답하는 나도 버벅거리고 주눅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100%의 내 실력을 증명해 보여야 하는 거였을까. 바깥세상은 이렇게 냉혹하고 타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평가하는 곳인데 그간 너무 몸 편한 곳에 오래 쉬었던 탓에 적응하질 못하는 걸까. 정말 Epic Failure.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물론 탈락이었는 데, 정말 상처가 커서 그 회사 리크루터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졌다.


    이 날의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대화 끝에 정신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나름 회사에서 인정받으며 착실히 내 길을 걸어왔고 나쁘지 않은 경력을 쌓아 왔다고 애써 믿어 왔는데 이토록 하찮게 평가받을 일인 건지. 이렇게도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구나 했다. 무엇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흐릿하게 대충 보는 사람들 눈에야 내놓으라 할 회사의 이름이 반짝일지 모르겠지만 업계에서 오래 일해보면 결국 사람이 하는 일에 큰 차이가 없음을 깨닫게 되기 마련이다. 한데 어째서 제가 하는 일은 잘났고 대단하고 처음 만난 타인이 하는 일은 별 것이 아니라고 깎아내리는 것인지 당황스러웠다.


    내 멘토는 바닥에 납작 눌려버린 내 자존감을 보고는 안타까워했다. 그 회사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네가 그런 경험을 했다니 더욱 확실해지는 것 같다, 그런 사람과 같이 일하지 않게 된 것이 다행이다 하며 나를 정성껏 위로해 주셨다. 또 다른 친구는 내 경험담을 듣고 놀라운 조언을 해주었다. 네가 그런 대우를 받은 것은 부당한 일이었으니 정식으로 리크루터에게 이의 제기를 해서 새로 인터뷰 기회를 따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단다. 그때 리크루터에게 솔직히 피드백을 전했더니 사과와 함께 새로운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비록 오퍼를 얻어내진 못했지만 정말 잘했던 일이었다고 자평하는데 닫힌 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런 방법이 있었다니! 나는 아직도 이 미국이라는 사회, 테크 업계에서 정당히 제 몫을 챙기는 요령이 한참 모자란, 어설픈 프로였다. 물론 함께 일하게 될 동료가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재고할 가치가 없는 기회였지만, 스스로를 위한 변론도 볼 기회였는데. 아쉬움이 들자 투지가 고개를 들었다. 멘토의 응원 덕에 무력감에서 회복할 수 있었고 친구의 조언으로 비로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상처를 이겨냈다. 아픔이 오래가는 데엔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는데 사고를 바꿔 같은 경우 내가 대응할 방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말이 쉽다. 되돌아보면 추후 몇 번의 성공적인 인터뷰가 있은 후에야 진정으로 이 날의 일을 과거의 황당했던 사건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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