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rench Toast Mafia May 22. 2021

말 수집

외국인 노동자의 소소한 업무 대화 놀이.

    말을 수집한다.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이거나 더 쾌활해 보이려는 마음에(여기에는 콤플렉스가 있는 게 확실하다. 더 활달해 보이고 싶나 보다) 다양한 표현을 욕심낸다. '있어' 보이는 데에 대단한 효과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처음 외국어를 배울 때처럼의 호기심으로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포착하는 순간이 있으면 기록해둬서 써먹는 재미가 있다.


    얼마나 하찮냐면 이런 식. Me, too(나도 그래)는 교과서에도 나오잖아. 재미없잖아. Likewise를 언젠가 들었는데 그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귀에 쏙 박히면서 너무 고급지게 들리는 거야. 나는 오늘 Likewise를 쓰고 혼자 뿌듯해했다.


    Damn it이라는 말 써야 할 때가 있으면 Damn이 내 스타일엔 어감이 세서 Darn it을 쓴다. 가끔 귀엽게 친한 친구 앞에서는, Dang it. 일하면서도 짜증 날 때 많잖아? 비슷한 느낌으로 WTF! 같은 험한 말을 하고 싶지 않지만 강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을 땐, WTH (What the Heck) 같은 말로 수위를 낮춘다. Oops는 떠올리는 즉시, Oops!... I did it again~ 브리트니 스피어스 노래가 머릿속으로 재생돼서 괜히 귀여운 체하는 기분이라 (너만 그래. 너만!) Yikes! 해보거나 (조금 으... 더러워 이런 뉘앙스를 풍길 때) Geez. 할 때도 있다. 이런 세상 쓸모없지만 나는 재미있는 말놀이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 중 한 분이 첫 수업 때 Hello, folks.라고 인사하며 자기는 guys는 너무 남자들만 지칭하는 말 같아 좀 더 중립적인 folks라는 표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게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하지만 folks는 뭔가 영국적인 느낌이라 내가 소화해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고 인상입니다) Guys and gals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도 봤고 everyone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Hi, my good friends! 하는 직장 동료가 있었는데 듣기 참 좋은 표현이지만 나는 소위 '인싸력'이 부족해서 쓸 수가 없다. 나는 수줍게 기회가 될 땐 Hi, y'all 뱉고 됐어! 해냈어! 하고 혼자 칭찬해준다. 나 텍사스에서 산 적이 있어요, 하고 티 내는 거다.


    조금 더 업무에서 쓰는 말 중 내가 애용하는 것들로는 I got carried away. I zoned out. 앗 미안. 잠시 다른 일(딴생각) 하느라, 너 방금 뭐라고 했니? 할 때 쓴다. 잠시 내가 회의에서 집중을 너무 안 하는구나 싶으니 자기반성의 시간을 갖자. 요 며칠 사이 수집하고 언젠가 써먹어야지 하는 말로는 Presumably ('짐작컨데'라는 뜻. 뭔가 발음이 멋져) 또는 front-loading이 있다. Prioritzing (둘 다, '어떤 일을 더 우선시하다'라는 뜻)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라 써보고 싶다. Automagically는 없는 말이다. 얼마 전 알 수 없이 시스템이 다운되었다가 복구되었는데 동료도 나도 원인을 몰라서 너털웃음 짓다가 상대가 Automagically working이라 했다. (자동으로 마법같이.라고 번역되지만 나는 저 혼자 이유 없이, 하지만 어쨌든 구동된다니 땡큐!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다음에 꼭 써먹어야지. I'm slammed with work는 I'm busy보다 더 적극적으로 바쁘단 어필이 되는 것 같아 요긴하게 사용한다.


    말이 나온 김에 기분상 개발자들이 유독 많이 쓰는 것 같은 채팅 상의 줄임말들 몇 가지.

qq. Quick question(빠르게 질문)을 줄인 말. 간단한 거 하나만 후다닥 물을게 하는 느낌으로 쓴다.

lgtm. Looks Good To Me(좋아 보이네)를 줄인 말. 코드 리뷰할 때 무난히 문제없는 코드를 통과시키면서 쓴다.

afaik. As far as I know(내가 알기로는). 처음 봤을 때는 나도 검색하고 비로소 알게 되었는데 이제는 정말 자주 쓴다.

WDYT? What do you think? (네 생각은 어때?) 이것도 손이 자주 가는 줄임말이다.

wfh. Work From Home (재택근무). 지난 1년 동안은 코로나로 출근이 없었으니, 쓸 일이 없었던 말이다. 슬프네.


   대체 왜 줄이는지 모르겠는 말도 한 가지. TC 이게 뭘까요? Take care를 줄인 말. 유독 줄이기 좋아하는 동료 한 사람이 쓰더라. 누군가 아파서 오늘 좀 쉴게. 하고 올릴 때 답글이 다다다 달리지 않는가? 그래도 아프다는 사람에게 Take care 쓸 시간도 없어서 TC. 하는 건가? 하고 의아하긴 했다. (누가 배워가진 않았으면)



Banner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 스몰 토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