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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Nov 22. 2023

학교와 학원 그 사이

직업 전문 학교? 학원?

시멘트는 특유의 차가움이 있다. 거기에 시멘트 가루에서 주는 냄새는 텁텁하면서도 시원한데, 직업 학교(나는 학원이라고 부른다)에 가면 맨 처음 맡게 되었던 냄새가 바로 시멘트 냄새였다. 몇 평인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12개/ 14개 정도의 벽이 쳐진 네모난 1평짜리 공간이 있는 데, 그 안에서 수업은 시작되었다. 


그럼.


학원 주변에 있는 철물점에 가서 00학원에서 미장 수업을 들을 거라고 하니, 안경쓴 파마 머리의 인상 좋아 보이시는 아주머니가 웃으며 물건들을 능숙하게 착착- 하고 꺼내서 올려주셨다.


"근데 아가씨가 하기 힘들텐데" 라는 말도 빼놓지 않으시고.


보기보다 아가씨는 아니에요.. 라고 말하고 싶은 걸 누르고, 그냥 웃어 보이자 아주머니께서 따라 웃으시며 덧붙인 말이 나는 좋았다.


"힘들어도 다 해요. 아가씨 말고도 많이 하더라고요." 


이 학원에 수업 들으러 온 여자가 나만 있는 건 아니었나 보다. 


" 현장 가면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 현장에. 이제는 익숙해져야 할 단어들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매일을 요리를 하고,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살았던 내가, 건설 용어를 알아야 했고, 미장 도구들의 이름을 외워야 했고, 곧 이어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던 고기 육절기는 쓸줄 알았지만, 그라인더는 무서워 하던 내가 해야 하는 일들.. 일상속의 단어가 <안녕하세요, 몇 분이세요?> 부터 시작해서 < 주문 결정 하셨어요?> 와 < 짜장면 하나, 짬뽕 둘> 같은 말들 이었던 나에게. 이제는 현장, 고데, 미장, 그라인더 등등 이런 단어가 익숙해져야 하는 순간 이었다.


물건을 사서 학원에 가면 출석 체크를 한다. 그리고 나서 이론은 없다. 

오로지.. 실전, 실전, 실전...!!


선생님의 말대로 가장 편한 옷을 입고 왔는 데, 진짜 편한 옷을 입은 남자 선생님들 ( 그곳에선 모두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나 조차도)의 옷을 보니, 나는 편한 옷이 아니라 그냥 옷 이었다. 그래서 학원 아래 있는 시장에 가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냉장고 바지와 냉장고 셔츠를 샀다. 7천원에서 8천원 하는 걸로다가. 더럽혀져도 상관 없이 입을 수 있는 가장 편하고 값싸지만 학원에서 대우 받는 용도의 옷들을 말이다.


타일은 이론 수업을 잠깐씩 하던데, 우리의 미장 선생님 ( 79세)은 아직도 자신은 현장에서 일을 하신다면서 그 깡마른 손으로 시멘트 반죽을 믹싱기를 들고 다다다- 버무리셨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깔끔함, 그 잡채.


그리고는 턱- 하고 빠데에 올리고 슥슥 고데로 벽을 문지르셨다. 오늘은 눈앞에 보이는 이 1평짜리 벽만 다 문질러도 잘하는 거라는 말씀과 함께 휘리릭- 사라지시는 쿨한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고서 나는 일단 3초 정도는 꾸물꾸물 거렸던 것 같다. 


왜 3초 정도를 꾸물 거렸냐면, 선생님이 예시를 보여주고 난 후 다른 분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벽을 문지르기 시작했기 때문. 게다가 믹싱기가 하나 밖에 없어서 선착순인지 먼저 한 사람이 개꿀인 상황이었다.  빠른 건 역시 젊은 사람이었다. 이제 미장 경력 2년차라고 하는 나보다 3살이 어린 이 친구는 29살 이었는 데 목포에서 이 수업을 들으러 아침에 일찍 운전해서 온다고 했다. 일이 없는 날에는 미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공사판에 나가야 하는 날에는 못 온다고. 그 옆에 계신 40대 중반의 두꺼운 체격을 가진 선생님은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15년 차 감독이라고 하셨다. 그가 여기에서 수업을 듣는 건 선생님의 요청, 그러니까 선생님 혼자만으로 힘드니까, 가끔가다 와서 옆에 수강생들도 도와주기도 하고 잘하는 사람을 현장에 데려가서 일도 시켜주고, 본인은 또한 미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겸사 겸사라는 말을 했다.


모두가 현장에서 한번씩은 해보신 분들 이었다. 다만 오로지, 나를 제외하고서. 생초짜는 한명도 없었다. 나만 빼고. 나만.. 나만.. 나만...


멀뚱멀뚱 서있기도 잠시, 선생님께서 미리 말아 두신 시멘트 반죽은 내 차지 였다. 여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처음 온 사람에 대한 배려였다. 그 다음날 부터 나도 믹싱기를 먼저 돌리기 위해서 빠르게 학원에 왔으니까. 나는 선생님이 말아 두신 시멘트 반죽을 빠데에 퍼 올리는 연습부터 했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뛰기 전, 걷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미장도 그랬다. 바르기 전, 가장 적정량의 시멘트 반죽을 빠데에 올리는 것, 자신이 바를 수 있는 만큼의 양을 아는 것, 그 양을 제대로 알아야 어깨와 허리가 아프지 않다고. 그래야 바를 때 어느 면까지, 어떤 선까지 제대로 바르고, 어떤 굵기로 발라야 하는 지 안다고. 


아침 9시에 시작된 나의 빠데에 시멘트 적정량 퍼올리기 연습은 그 날 오후를 이어서 그 주 수요일까지 내내 이어지면서 믹싱기로 시멘트 반죽을 어떤식으로 돌려야 하는지도 함께 했다. 너무 묽어도 안되고, 너무 되도 안되는 시멘트 반죽을 제대로 말면, 퍼올리는 양도 조절이 쉽다. 


뭐든 처음은 힘들고, 어렵고, 하기 싫다. 


하지만 그냥 하자고 생각했다. 다른 이의 시선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았다. 이곳에선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중간인 사람도 없었다. 이곳에선 먼저 온 사람, 중간에 들어온 사람, 나중에 온 사람으로 나뉘어졌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나중에 온 사람이었다.

2년차, 15년 차들 사이에서 나는 그냥 나중에 온 사람.


너무 편했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도, 숱하게 벽에서 울려대며 나를 괴롭히던 벨소리도 그곳엔 없었다. 살면서 이렇게 편한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에 나는 다음날엔 20분 더 일찍 갔다. 


내가 20분 일찍 나오자 선생님께서는 그냥 웃기만 하셨는데, 아마도 나오지 안을 줄 알았던 모양이셨나 보다.

여자라고는 딱 1명, 그것도 나 혼자인 그곳에서, 나는 3일을 시멘트를 말고, 빠데에 올리고, 고데로 시멘트를 들어올리는 연습을 했다. 혼자서.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봐주지 않았다. 모두가 각자의 1평짜리 벽을 보고, 모두가 각자의 벽을 바르고,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갔다가, 믹스 커피를 들고 다시 돌아와 각자의 1평짜리 벽 앞에 섰다.


차가운 시멘트 냄새가 난생 처음으로 좋아졌다. 인상 찌푸리던 현장의 먼지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올 거였다.


익숙해지면 뭐든 소중하지 않게 되지만, 나는 처음이었고, 첫 도전이었으면, 첫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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