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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순복 Dec 01. 2023

안성가는 길

멀고도 험한 그러나 즐거웠던 어느 날의 기억

미장 시험을 보러 가는 길에는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가는 길이 길이다보니, 혼자 힘으로 도저히 갈 수도 없었을  뿐더러, 믹싱기를 공구점에서 빌려서 가야 했고, 내 도구를 모두 챙겨가야 했어서 자동차로 가는 게 가장 베스트였다. 함께 시험을 보러 가는 동기분들도 안 계셔서 그런지 오로지 나 혼자만 시험 보러 가는 길이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도움을 받은 이는 바로 내 남동생. 

다행히 1년 전에 차를 사둔 덕에 남동생의 도움으로 믹싱기와 도구를 싣고, 가장 편한 냉장고 바지를 입고 시험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부랴부랴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고, 부지런히 준비를 해서 안성에 도착했지만, 그 때부터 나의 심장은 떨리기 시작했다.


매일을 같은 작업을 반복하고 또 했었다.

필기가 없이 실기만 있는 시험들 중에서 미장 시험은 가장 어렵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하도 많이 들었지만 나는 도전해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합격할 거라는 생각을 나는 단 한순간도 해보지 않았다.

직업 학교에서 배운대로만 나와준다면 좋았겠지만, 직업 학교에서 배운대로 나온 것까지는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사방이 막힌 공간이 아니라, 사방이 뚫린 야외에서 나는 시멘트를 처음으로 발라보았다.


달랐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바르는 족족 시멘트가 흘러내리는 가 하면, 직업학교에서 썼던 질감의 시멘트가 아니었다.


직업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수강생들이 바르기 쉽도록 시멘트에 흙의 비율을 잘 섞어서 믹싱을 할 수 있게 하지만, 시험장에서의 시멘트가 그럴리가 절대로 없었던 거다. 편의를 봐주고 하는 것과 실전같은 건 전혀 다른 일 이었던 것. 


나는 솔직히 말해서 그 순간에는 그만 돌아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고, 여기서 돌아간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함께 온 동생도 괜찮다고 못하겠으면 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돌아가자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괜한 오기가 생겼다.


잘라온 나무 도막들은 쓸수도 없었고, 시멘트는 썼던 것과는 다르게 믹싱이 어려웠고, 흘러내리는 질감이었지만, 나는 톱을 꺼내들었고, 시멘트에 흙을 섞기 시작했다. 이론은 배우지 않았지만, 미장 선생님은 그럴 경우에 대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던 게 기억이 났다.


어렵긴 하겠지만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완성은 못해도 끝까지는 가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안성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 나는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기 위해서 직업 학교에서 집까지 걸었다. 그 전에도 종종 1시간이 넘는 편도 거리를 걸었지만, 그 날은 좀 더 돌아서 걸어보자며 직진 코스가 아닌 구석구석 코너 코스를 택했었다.


동구에서 북구, 이 구에서 저구로 넘어가는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안성에 가면 포기할 수도 있겠지만, 쪽팔리게 처음부터 못하겠다는 소리는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가는 길마다 날씨도 좋았고, 이제 곧 추석이 올 늦여름이었지만 걷는 순간에 더위는 내일 있을 시험으로 인해서 이미 잊은지 오래였다.


1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를 2시간에 걸쳐서 걷고 집에 돌아와서 준비물들을 챙기고 저녁 식사에는 아마도 내 기억에 치킨을 먹었던 것 같다. 시험장에 따라가주는 동생에게 쏘는 의미로.


그렇게 온 안성에서 난관에 봉착했지만, 나는 난관을 차근 차근 헤쳐나가며 벽에 시멘트를 발랐다. 조건은 달랐지만, 연습했던 모양은 같았다.  그런데 이번엔, 좀더 단단하게 믹싱한 시멘트가 빠르게 굳어서 쩍쩍 갈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한번은 너무 물같아서 흘러내리고, 이번엔 말라서 굳는 속도가 빨랐다... 여기에 나무를 덧대서 액자 모양을 완성해야 하는 데, 남은 시간은 1시간... 점심도 대충 김밥으로 떼운 나는 그리고 차에서 나를 기다리는 동생을 보고 결정해야 했다. 남은 1시간, 최선을 다하느냐, 아니면 여기서 멈추느냐...


과연, 나의 결정은...?


to be contiu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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