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순복 Dec 08. 2023

자존감 높이기

다시 시작 

안성에서 뜻하지 못한 위기를 맞이한 나는, 3시에 손을 들었다. 결과는 참패. 포기를 하고 나서 주변을 보았을 때, 뜻밖의 위로를 건넨 건 함께 시험을 본 선생님들 이었다.


처음 본 얼굴들이었지만, 모두 같은 마음 이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붙고 싶다는 그 간절함.


미장은 실기 시험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장르 였고, 미장 경력 20년이신 분들도 합격하기 어렵다는 마의 시험이기도 했다. 그 해 가장많은 합격자를 배출하는 건 교도소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도소에서 수감자들도 미장, 타일 등의 시험을 본다. 그들도 사회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이 필요하니까. 그들이 교도소에서 밥만먹고 이 시험만을 연습할 때, 다른 분들은 생활에서, 나같은 사람은 학원에서 연습을 한다.


그러니 당연히 수감자들이 가장 많은 합격을 할 수 밖에. 그러나첫 도전이었고, 안성까지 새벽부터 일어나 갔던 나는 좌절하지는 않았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까지 나는 최선을 다해서 붙이고, 또 했다.


계속해서 하다보니 완성에 가깝게 되었으나, 완성은 아니었기에, 나는 재료들과 자리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같이 간 동생에게는 그 날 밤, 집 앞에서 삼겹살을 쏘고, 나는 다음 날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에서 포기하지 않고 모두 하고 온 나를 선생님들을 대단하고 치켜세워주었다. 나는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타일 시험도 합격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들었다. 무엇보다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내가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내가, 그 험한 곳에서 태어나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로, 저 먼 안성까지 다녀왔다는 게 성취감을 주었던 것 같다.


그 성취감은 현재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원을 떠난지 벌써 4-5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좀처럼 좌절하지 않는다.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나는 서울에 있는 교육원을 다닐까 말까를 몇 년을 고민했었다. 좋지 못한 나의 지갑 사정이 내가 배우고 싶고, 하고 싶어하는 일에 걸림돌이 되었는데.


나는 2021년 겨울에 용기를 내서 도전했다. 아니 그냥 했다.

떨어져도 괜찮았다, 어차피 다시 하면 되니까. 미장을 하면서 나는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을 배웠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나에게 다시 하면 된다는 마음은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아무도 나에게는 이렇게 이렇게 해라라고 하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 지, 어떤 선택이 그나마 덜 나쁜 선택인지, 혹은 사소한 것 하나부터 열까지 부모의 도움이 필요할 적에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태어나고 자라오면서 나는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가 선택하고 앞으로 가는 거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다.


부모는 나를 세상에 나오게 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알려주지도, 어떤 마음의 무기와 갑옷을 입어야 하는 지도, 알려주지 않으면서 자신들의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화를 냈고, 학교는 경쟁과 경쟁속에서 도태되면 망한다는 이야기만 주구 장창 했었다.


그런 배움만 가지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다시 해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지고, 교육원에 도전했고, 그 결과는 합격이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교육원에 가지는 않고 온라인 수업으로 들어야 했지만, 나는 교육원안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물론 선생님의 노력과 함께 공부하는 동기들의 덕택이었으나, 어쩌면 그 날의 내가 오늘의 나로 성장 할 수 있는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 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나는 학원으로 돌아와 다시 실뜨기와 타일을 붙이기 시작했다. 생애 처음 그라인더를 만졌고, 그라인더를 요리 조리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무섭게 돌아가는 저 작은 칼날이 나의 살을 파고들것 같은 두려움, 어쩌면 칼날이 튕겨져 나와서 영화처럼 죽을 수 도 있다는 공포감이 들었지만, 하다보니 또 하는 게 그 일이었다.


그래, 하다보니 하게 되고, 그냥 하는 게 최고다. 라는 건 이때 배운 것 같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 직업학교에서 타일이나 미장일, 도배 등을 배운다고 하면 적극 추천한다. 그러나 사람마다 케바케라 잘 생각해보고 하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나에게 맞았던 그 일이, 나는 신나게 했던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절대로 맞지 않는 상극의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나는 안다.


어린 시절 나는 무언가를 하려고 했던 아이가 아니라, 하라면 하는 아이였다. 막상 앞에서는 그렇다고 말해도, 뒤에가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음과 할수 있을지도 모름과 할수도 있겠다라는 것과 하지 못하는 것, 할 수 없는 것, 하지 않는 것의 분간을 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10개월 간의 여정동안, 계절이 두번반이 바뀌는 동안, 나는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을 자연스레 터득했다.


물론, 타일 자격증 시험은 합격했다.


오늘로 나의 미장과 타일 학원의 이야기가 끝났다.

그리고 수요일 부터는 번외의 이야기를 다시 써보고자 한다. 하루 하루가 현재도 고단하지만, 나 스스로를 위해서 해나가는 내가되는 것, 그러기 위해서 나는 브런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


그러니 많관부!! 

작가의 이전글 번외이야기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