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너무 재미가 없거나 일이 너무 힘들거나. 또는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이 힘들다고 퇴사를 결정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다. 돈 벌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하는 일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물론 회사에 싫은 사람은 늘 있다. 아니, 회사가 아니어도 안 맞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싫음의 정도가 경멸의 정도에 달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본인을 악의적으로 괴롭힌다든지, 그 사람이 회사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어서 본인의 일, 사람 그리고 돈에 영향을 미친다든지, 본인에게 객관적인 피해를 끼쳤다던지. 그 사람을 피해서 내가 다른 팀으로 갈 수 없거나, 그 사람을 그만두게 하거나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없다면 회사를 바꿀 수밖에 없다.
회사가 연봉협상을 하는 회사라면 딜을 하다. 또는 연봉을 높여서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해보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 연봉을 떠나서 여러 가지 보상체계(이를테면 승진 등)가 내 능력과 노력을 알아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회사를 떠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 다만 연봉은 낮지만 워라벨이 좋아서 부업을 하기에 용이하다거나 하는 다른 부가적인 부분이 있다면 다시 고려해보자.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일, 사람, 돈 이 3가지 요소 중 한 가지라도 회사에서 주는 의미가 있다면 다닐만한 거다. 하지만 3가지 요소 중 무엇 하나 나가 만족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선은 산업군이 맘에 들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큰 수익을 내기 힘든 산업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산업군으로 이직을 고려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산업군 이외에도 문제는 있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에도 확신이 없고,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확신이 없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게 많고 또 하는 것마다 무난하게 잘 해내는 학생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다 무난하게 잘하니 특출나게 잘하는 것이 없고, 하고 싶은 게 많아서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엄두도 안 나는. 그런 상태로 20여 년을 달려 남들 다 원하는 대기업에 취직했건만, 회사에서의 삶은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었다.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쉬어 간다기보다는 끈질기게 노력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일이 힘든 건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이 힘들다면 그만큼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일이 쉽다면 그만큼 워라벨이 잘 지켜지는 곳이면 되었다. 종종 회사 일은 회사 일로만 취급하고 회사 밖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게 불가능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회사에서 9-6 하루 절반 이상을 보내는데,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어도 시간 낭비 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겸직을 하고 있었다. (퇴사할 때 2명에게 인수인계해 주고 나옴) 내가 하던 일 중 하나는 다른 매니저들을 관리하고 통솔하고 때로는 힘으로 눌러야 하는 직책이었는데, 나에게 칼자루는 쥐여주지도 않고 업무를 시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팀 리더는 업무를 덜어준다는 명목하에 가시적으로 성과가 눈에 보이는 중요한 업무는 본인이 가져가려고 했다.
점점 더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기 힘들었다, 팀 리더에게 새로운 기회를 달라고 요청도 해보고, 다른 부서로 가고 싶다고 발령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 팀 팀장은 인력을 다른 팀에 내어줄 수 없다며 1년 이상을 반대했다. 물론 길게 보면 지금의 상황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약 8시간 동안의 시간에 시계만 들여다보며 언제 퇴근할지, 퇴근하고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시간이 아까워지기 시작했고, 퇴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이건 간단하게 몇 줄로 끝나지 않을 스토리라 짧게나마 끄적여 본다면, 여직원들 성희롱을 서슴지 않고 하는 분이 있었다. 옆 팀 리더이자 ex- 우리 팀 리더 였는데, 사람을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나는 그분을 크리티컬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긴 하지만, 일을 배우기에는 참 좋았던 상사라고 좋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분이 나와 내 동기를 대상으로 끔찍한 성희롱을 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뒤로는 내 뒤 테이블에 앉은 그 분이 말을 걸 때마다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나오고 나를 끈적한 눈으로 쳐다볼 그 사람이 꿈에 나와 도저히 회사에서 버티고 앉아있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는 들으면 다 알만한 꼰대 문화에 고인 물이 향연인 회사라 본인의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윗사람들 커피 타 주고 주말에는 윗분들 운전기사 노릇도 자청하여 승진하면서 젊은 사람들은 MZ 답 없는 인간들이라고 분류하는 분들을 지속해서 보다 보니,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구나, 싶었다. 제일 결정적이었던 건 사람들을 비판하고 경멸하고 이 사회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내 모습을 그만 보고 싶었다. 회사를 나가면 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건 아니다, 적어도 더 나은 옵션이 있다는 것은 확신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과 사람이 주는 만족도가 컸더라면 이 정도 연봉에도 만족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세후 300 넘게 받았으니까. 하지만 나의 경우 일과 사람 모두 나에게 주는 만족감이 낮았고, 그렇다면 돈에서라도 의미를 찾아야 했는데, 우리 회사는 그렇지 못했다. 연봉 인상률도 상당히 낮아 승진이 주는 의미도 거의 없었기에 신입사원 초봉치고는 월급이 나쁘지 않았지만, 길게 10년, 20년을 봤을 때는 지금 나의 상황을 점검하고 갈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 돈을 단순히 물질적인 자본이 아닌 동기로 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내적 동기부여도 중요하지만, 외적 동기부여도 중요하다. 이를테면 승진. 우리 회사는 실력보다는 정치질이 더 중요한 회사였고, 아니 실력보다는 정치질이 중요한 회사였다. 매년 발표되는 승진자 리스트를 보고 있노라니 앞이 깜깜했다. 나는 그렇게 될 자신도 없고,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볼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쳤다.
회사에 다니면서 계속되는 공허함을 채우려고 미라클 모닝도 해보고, 여러 가지 공부도 해보고, 운동도 해봤다. 이직해볼까 고민도 해봤고, 짬 나는 대로 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이 공허함과 허무함은 해결되지 않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 감정적으로 행동하면 안 된다.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거나,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거나 등등… 이 상황을 회피하기 위해서 퇴사를 내뱉으면 안 된다. 그렇게 그만두면 후회가 남는다. 본인은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해결책은 있는지, 외부와 내부에서 찾아보자. 예를 들어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다면 팀장 또는 부서장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일을 분배해 달라고 요청해보고, 팀 사람들과 맞지 않아서 힘들다면 HR팀과 면담하여 팀 이동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충분히 어필해야 한다. 윗사람들은 모른다.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봐도 더 이상의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면 퇴사를 고려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