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다지 Dec 17. 2021

내 머리카락을 물고 간 까마귀

말라위 릴롱궤 생활

출처: https://birdingforpleasure.blogspot.com/2014/08/wild-bird-wednesday-pies-crow-from.html?m=1

 얼마 전부터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는데, 매번 배수구에 모인 머리카락들을 건져내 휴지통에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샤워실 벽면이나 욕조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은 손가락으로 집어내기가 어려워서 샤워기 물을 뿌려 배수구로 보낸 후 물이 빠지면 건져냈다. 머리를 말릴 때도 머리카락은 쉴새 없이 떨어져서 바닥을 한번 더 쓸어내야 했다.


휴지통에 버린 머리카락은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봉투에 넣어져 쓰레기 수거차가 올 때까지 마당 한켠에 보관된다. 쓰레기 수거차는 한달에 몇 천 콰차 정도 받고 주2회 쓰레기를 가져가 릴롱궤 외곽의 쓰레기장에 매립한다. 과거 방송촬영 때문에 그 쓰레기장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도 약간 왕초(?) 같은 대장이 있어서 쓸 만한 쓰레기를 독차지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주 나는 내 머리카락 한 움큼이 어쩐 일인지 마당에 굴러다니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통에 쓰레기 봉투가 열려 머리카락이 빠져 나온 것 같았다. 둥근 모양으로 말린 머리카락을 얼른 줍고자 신발을 갈아신고 마당에 나갔더니, 난데없이 까마귀가 나타나 내 머리카락을 입에 물고 날아가 버렸다.


어이가 없었던 나는 하늘 높이 날아가는 까마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잠시 하늘을 올려다 봤다. 둥지를 지으려고 이것저것 따뜻해 보이는(?) 것들을 물어 나르는 모양인데, 내 털이 까마귀 주택 건설에 쓰인다 생각하니 과연 만물은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싶었다. 까치는 은혜를 갚는다지만 까마귀는 딱히 보은한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내 머리카락으로 그들의 둥지가 더욱 더 튼튼하고 안정된 보금자리가 되길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우간다에서 보다를 타며 겪은 사건 썰_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