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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다지 Dec 30. 2021

내가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꿈으로 보는 나의 마음 

2013년 3월 츠토무와 함께 방문한 코트폰에서 

 며칠전 친구와 우간다 이야기를 해서인지 이틀 연속 우간다 꿈을 꾸었다. 하나는 하루만 살아보는 꿈이었고 하나는 일정 기간 살아야 되는 꿈이었다.


#1. 내가 캄팔라에서 지냈던 아캄웨시 호스텔에 갔다. 4층까지 걸어 올라가는데 뚫려 있는 벽면 사이로 오고 가는 바람까지 예전과 똑같았다. 침대, 냉장고 모두 예전과 같은 위치에 있었고 바닥도 내가 매일 비눗물 풀어서 닦았던 것 그대로 깨끗했다. 방문 여닫는 소리며 바닥 타일 촉감, 복도의 냄새를 뇌가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건지 꿈에서 본 그곳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하룻밤만 지내보기로 하고 호스텔 직원과 협상한 후 하루치 요금을 냈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캄웨시에서 하루만 지내보기로 한 건 꽤 현실과 타협한 조치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조차 그 공간에서 다시 1년, 2년을 보낼 자신이 없었던 걸까. 단 하루, 라는 조건이어야 그곳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던 걸까.


#2. 캄팔라에서 일하게 된 나는 그곳의 한국인들을 만났는데, 예전 나의 위치에서 그대로 그들을 만나게 됐다. 무척 반가웠지만 너무 익숙한 모습, 태도에 반가움이 곧 사라졌다. 혼자서 캄팔라 로드를 걷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없었다. 꼭 대통령 선거날처럼 거리에 인적이 드물었다. 상점의 사람들이 나를 아는 척했지만 나는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집으로 가려 했지만 집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꿈에서 깨어나니 고양이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너와 함께라면 난 어디든 행복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 고양이는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하루가 아닌 6개월, 1년, 2년을 예전 그곳에서, 다시 같은 조건에서 지내야 한다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겪어보고야 말았던 것들을 다 아는 지금, 그것들을 다시 겪었을 때 또 어떤 의미들을 얻을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치왕갈라로 가서 그때의 생활을 다시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던 건, 과거의 나는 꼭 치왕갈라로 돌아가 몇년 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에게 누군가는 “야 그럼 히로키랑 나중에 같이 살면 되겠네”라고 하여 욕설이 오가기도 했었다. 나도 꿈이 있다고.


20대 초반 호기심 많던 그 시절 뭐든지 경험해보고 흡수하던 때처럼, 내가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내 자신으로서 사고하고 살아낼 수 있을까. 그 시절 봉사자에게 주어진 방 한칸과 열명 남짓 포개 앉아 언제 출발할 지 모르는 택시 같은 건 이제 내 나이에는 그저 빈곤의 증거로만 보이지는 않을까.


혹시 그 고생을 가능하게 했던 건 역시 나와 같은 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혼자가 좋다고 말하면서도 결국은 사람을 그리워했고 또 항상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나였다. 어쨌든 그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나 혼자 오롯이 겪어 낸 고생이 아니었기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없는 그 시절 그때로 돌아가기를 꿈속에서조차 머뭇거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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