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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코더곰쌤 Nov 17. 2024

당신에게는 어떤 오티움이 있나요?

나에게 오티움은 리코더

'영혼을 기쁘게 하는 능동적인 여가활동, 당신에게는 오티움이 있나요?'

작년 봄, 정신과 의사 문요한 선생님의 저서 '오티움'을 읽었다. 그리고 이 책은 나의 인생 책이 되었다. 앞으로 이 분이 지은 책들은 모조리 다 읽겠다고 다짐했다.

오티움이란 말은 라틴어로 한가한 시간, 은퇴한 시간 또는 학예활동을 뜻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에는 '오티움'이 '취미' 와 동의어인가 생각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오티움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나를 새롭게 충전시켜 주는 긍정적인 레져활동을 말하는 것이었다. 넷플릭스, 유튜브, 마라탕처럼 자극적이고 강렬한 매운 맛 '도파민'에 비하여 오티움은 '순한 맛'이다. 대신 은근히 오래 끓인 곰탕이나 사골국같이 깊고 진하다.

Hendrick ter Brugghen - Flute player (1621)

오티움은 다음의 5가지 속성을 지닌다.

1. 자기 목적성: 오티움은 좋아서 하는 활동이다. 즉, 오티움은 활동 자체에서 기쁨을 느끼는 것이지 결과나 보상 때문에 기쁜 게 아니다.

2. 일상성: 아무리 좋아하는 여가 활동이어도 일 년에 한두 번 하는 활동은 오티움이 아니다. 오티움은 매일, 매주 혹은 최소 매달이라도 꾸준히 여가 활동을 말한다.

3. 주도성: 독서, 감상, 묵상처럼 정적 활동도 오티움이 될 수 있다. 주도성이란 스스로 주체가 되어 선택하고 즐기고 배우고 심화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4. 지속성과 깊이있음: 몇 개월 하다가 그만두는 여가 활동은 오티움이 아니다. 오티움은 지속성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오티움이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이유는 ‘배움의 기쁨’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오티움은 기술, 전문 지식, 능동적 감상, 창조적 경험 등을 통해 깊이를 더해간다. 따라서 싫증이 나지 않고 즐거움을 배가시키며 계속 지속할 수 있다.

5. 긍정적 연쇄효과 : 오티움은 중독과 구분되어야 한다. 오티움은 그 활동만 기쁜 게 아니라 그 활동으로 인한 기쁨이 확산되어 삶과 관계에 활기가 생겨나게 한다.

Hendrick ter Brugghen - Flautist (1624)

내게 있어 가장 큰 오티움은 '리코더'다. 리코더 연주를 들을 때도 기쁘고 내가 불때도 즐겁다. 먼저 '듣기' 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 싶다. 리코더를 레슨해 주시는 선생님께서 내게 '이 부분은 이렇게 하라'고 시범을 보여 주실 때가 있다.  짧은 두 세마디의 연주 그 자체도 그냥 예술이다. 듣기만 해도 너무 좋으니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난 아름다운 연주를 더 이상 못 듣는게 마냥 속상해진다. 배움이고 뭐고 그냥 계속 그 멜로디를 듣고 싶어서 "쌤, 저 그냥 레슨 안 받고 선생님 음악만 들으면 안 될까요?" 말씀드리기도 한다.

Frans Hals - Singing Boy With A Flute (1623)

이제는 '연주'를 할 차례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라고 했던가, 내가 들었던 바로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며 나 역시 똑같이 해보려고 애써보지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어려우니 더 도전정신이 생긴다. 온 몸의 신경을 다 손가락에 모아본다.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주의사항을 기억하며 배에 힘을 꽉 준다. 이렇게 하면 더 '통통한 소리, 꽉 찬 공명'이 나려나? 물론 만족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내 소리를 내가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인다. 악기의 특성상 불면 바로 소리가 나니 피드백도 내 스스로 할 수 있다. 연주가 잘 되면 기분이 엄청 좋다. 이 과정이 내게는 명상을 하는 듯한 효과를 가져다 준다. 리코더를 연주하는 짧은 3분의 시간동안 나는 평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이 내가 봐도 기특하다.

Il Pifferaio - Boy Playing a Flute  (1650)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음악이라 질리지가 않는다. 선생님께 레슨 받을 악보를 받으면 머리가 하얘진다. '아, 이렇게 어려운 곡을 어떻게 하지?' 싶다. 그러나 막상 배우고 익히다보면 '우리 쌤이 날 발전시키시려고 이 곡을 주셨나보다' 싶은 순간이 온다. 어려워보이는 곡도 연습을 하다보면 손가락 근육도 운동이 되어서 그런지 몸에 익는다. 점점 멜로디도 익숙해지고 빨간구두를 신은 소녀가 춤을 추듯 손가락도 저절로 돌아가게 된다. '나 나아지고 있네? 헐! 대박!'  내 스스로도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리코더가 아니면 그 어떤 악기에서 이런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겠는가. 앞서 문요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자기 목적성, 일상성, 주도성, 지속성과 깊이 있음, 긍정적 연쇄효과 모두 내가 리코더를 배우며 경험하고 있는 효과다. 리코더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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