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음악 시간에 악기를 가지고 수행 평가를 본단 말이야. 그 때 혹시 뭘 해야하나 머리가 아픈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 쌤두 그랬었거든."
중고등학교 내내 음악 점수로 고민해 본적이 없다. 리코더 덕분에 언제나 음악은 1등이었다. 이번 학기를 마치며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꼭 전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피아노를 배우다 삼년을 못 채우고 그만둔 나. 난 겨우 체르니 30번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 베토벤과 쇼팽을 치는 아이들 앞에서 기가 폭 죽었다. 번쩍이는 플룻, 비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친구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소는 소리가 났다가 안 났다가 케바케라 도전하기도 어려웠다.
"넌 수행평가때 무슨 악기 할꺼야?"
한 아이는 첼로를 한다고 했고, 난생 처음 보는 클라리넷을 한다는 애도 있었다. 친한 친구는 기타학원을 단기속성으로 다녔다고 한다. 난 뭐하지? 불면 소리나는 악기 리코더가 내 곁에 있지 않은가. 딴 애들처럼 폼나지는 않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악기, 난 이 아이를 가지고 무라도 썰어야 했다.
일단 큰 서점으로 가서 리코더 악보를 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유튜브도 없던 시절이라 악보를 구하려면 발품을 팔아야했다. 악보의 뒷부분을 폈다. 어렵고 매력적인 곡을 할 작정이었다.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곡이 뭘까 고민하다가 베토벤 미뉴에트와 금혼식 두 곡을 메들리로 엮었다. 짧은 소품이라 두 개를 붙여도 3분이 채 안 된다. 다행히 피아노를 배웠던지라 악보를 읽을 수는 있었다.
비제의 아를르의 여인 이 곡도 내 18번이다. 원래 플룻으로 연주하는 이 곡은 리코더와도 잘 어울린다. 숨 쉬는 곳을 체크하고 악보를 다 외웠다. 셈여림과 빠르기의 변화도 체크했다. 수행평가 당일, 난 무대에서 연주하는 사람인양 마인드 콘트롤을 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연주했다. 오직 이 음을 어느 정도 세기로 불 것인가에 마음을 모았다.
"흔히들 만만하게 생각하는 악기 리코더로도 이렇게 멋진 음악을 연주할 수 있지요! 너희들이 생활 속에서 음악을 찾아 연주하고 즐겁게 향유하는 것이 이 음악쌤의 바램이랍니다. 비싸고 어려운 악기 가운데 리코더를 선택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우리 친구에게 큰 박수를 보내줍시다."
연주가 끝나면 아이들 뿐 아니라 음악선생님들도 참 좋아하신다. 학원에서 단기 속성으로 배운 악기가 아니라서 그런것 같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리코더를 불 때 내 모습은 내가 가장 집중하는 상태가 된다. 리코더를 흥겹게 연주하면 에너지가 나온다. 그게 핵심이다.
멜로디언을 불어도, 하모니카를 연주해도 괜찮다. 그 음악에 내 마음이 담겨 있다면 훌륭한 음악이 된다. 우크렐레로 멋쟁이 토마토를 연주하거나 바이올린으로 작은별을 연주하는 것보다 내가 친숙한 악기로 내 마음에 드는 곡을 고르는 것이 낫다.음악에 빠져 즐거워하는 모습을 음악 선생님들은 사랑하는 것이다.
악기 수행평가가 고민인 친구들에게 권한다. 너희들 서랍속에 잠들어 있는 리코더를 한 번 불어보렴. 생각보다 멋진 음색에 반할지도 몰라. 대신 연주할 때 눈빛이 중요하단다. 싸움만 기세가 아니야. 음악도 기세거든! 쫄지말고 당당하게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