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이라구
집에 와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했다. 그날은 동학년 문화연수의 날이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나는 수도 없는 말을 쏟아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분위기가 어색해도 가만히 있는 것이 나았을 뻔했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다음 번 회식 날짜와 장소를 오늘 이 자리에서 미리 정하자는 눈치 없는 학년 부장님의 말씀에 침묵이 흘렀다.
그때 나는 입을 닫았어야 했다. 나의 반대 의견에 부장님은 곧바로 저격 멘트를 날리셨다. 날선 복수의 말이 비수처럼 되돌아왔을 때, 나는 캄다운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그분은 자신의 발언이 나에게 상처가 되는지 알고 있었을까? 사실 여부도 알 수가 없었다.
두고 두고 이불킥을 해야 했던 건 내가 왜 그 3초를 견디지 못했을까 하는 자책이었다. 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훨씬 나았을 걸, 그 순간 나는 그걸 못했다.
매일 글쓰기를 함께 하는 글벗 정희 선생님께 이 분통함을 알렸다. 내 머리에 김이 한 김 빠졌다. 그래도 분이 안 풀렸다. 중학교 진로 상담 교사이신 나의 멘토 선생님께도 조언을 구했다. 이 분은 나를 속상하게 한 그 부장님과 비슷한 연배의 남자분이셔서 좀 더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내게 조언을 해 주실 수 있을 듯했다.
"쌤, 저 오늘 진짜 열받는 일이 있었어요. 동학년 회식을 했어요. 그런데 우리 학교에 진짜 고집불통 나이 많으신 남자 부장님이 계세요. 제가 그 학년 소속이라 같이 나가게 되었어요. 아, 진짜 헐이라는 소문만 들어서 이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어쩌면 그렇게 자기주장만 하는 건지 계속 다음 번 저녁 먹을 날짜와 장소 미리 정하자고 그러시길래 제가 못 참고 한 마디 했다가 바로 테러 당했잖아요. 그냥 가만히 있을걸!"
우리 선생님은 껄껄 웃으셨다.
"당황해서 이 말 저 말하면 안 된다니까? 우리 선생님이 잠잠하면 나머지 사람들도 생각이란 걸 하게 되고 그제야 분위가 선생님 편으로 돌아선다고! 그래야 그쪽도 뜨끔하게 되고!"
아, 집에 와서 더 화가 난건 내가 나의 화난 포인트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만 폭발한 것이다. 한마디로 타격감이 제로였다.
상대방을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나를 중심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
이후 어떻게 할 것인가
역시 상담을 전공한 우리 선생님의 반응은 달랐다. 그제야 마음이 진정되었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오후에 나는 그 선생님 교실을 찾아갔다. 이 분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막상 그분의 얼굴을 보니 나를 보고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 모습을 보니 왈가왈부 따질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그래서 화내지도 않고, 내가 속상했다고 밝히지도 않았다.
다만 전날 아침 교과실 선생님들에게 빵 사다 주신 그 제과점에서 산 크로와상 세트를 똑같이 드리고 나왔다. 내가 안 먹었으면 그럴 일도 없었는데 맛있게 먹고 난 후라 새벽부터 똑같은 빵집에 들러 같은 빵 세트 구성을 사가지고 온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얻어먹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마음의 빚을 스스로 청산하고 싶었다.
다음부터 빡치는 일이 있으면 입부터 닫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말이 독이 될지 약이 될지 판단하고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지. 침묵은 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