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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사가 나리 Apr 21. 2024

아마존 비밀요원, 강아지 롤리

매일 아마존 허브 락커에 출근하는 강아지

    우리 집 강아지 롤리는 올해 8살인 비숑 프리제 여자 강아지이다. 얼마 안 남은 5월 생일이 오면, 어느새 9살이 된다. 하얗고 꼽슬꼽슬한 털코트를 입고,  까만 단추가 역삼각형으로 세 개 박혀있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롤리는 아가였을 때도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8살 중년 강아지가 된 지금도 너무나 사랑스럽고 여전히 귀엽다.

    

   반려견과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롤리를 데리고 매일 산책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미국 텍사스의 샌 안토니오라는 도시이다. 현재 우리 가족은 막내의 학교 가까운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우리 아파트 입구 쪽에는 아마존에서 만들어 놓은 아마존 허브 락커가 있다. 아마존의 많은 택배물들의 분실 사고가 잦은 탓에 아마존은 여기저기 아마존 허브 락커를 설치하고 락커의 시스템을 이용해서 물품 배달을 하는 추세이다.

    

   롤리의 산책 코스는 이렇다. 먼저 집 현관문을 열고 나가면 꽤 넓게 펼쳐진 잔디밭이 있다. 이곳에서 롤리는 본격적인 산책을 시작하기 전 쉬아를 하고, 잠시 빙글빙글 돌며 자리를 찾은 후 응가를 한다. 시원하게 일을 마친 롤리는 매일 가던 길을 익숙하게 쫑쫑 나보다 조금 앞서서 걸어간다. 몇 걸음 걷다 보면 어느새 나와 발을 맞추고 눈을 맞추며 걷는 롤리를 발견할 수 있다.

    

   롤리의 응가 봉지를 버리는 커다란 휴지통을 지나면, 롤리가 물멍에 잠기는 수영장이 나타난다. 수영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는 아파트 수영장이다. 수영장의 철문을 열어주면 롤리는 익숙하게 쪼르르 달려가서 썬베드 위로 폴짝 뛰어올라 엎드린다. 그 자세 그대로 수영장 너머로 오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물로 가득 찬 수영장 풀을 바라보며, 산들바람과 함께 명상에 잠긴다.

    

   한 15분 정도 썬베드 위에서 쉼을 가진 롤리를 안아 들고 다른 쪽 수영장 문을 지나 바닥에 내려놓는다. 롤리는 '아~ 이제 집에 돌아갈 시간이구나.'라고 생각하는 듯 머뭇거림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집으로 향하는 길 중간, 아파트 오피스 옆에 아마존 허브 락커가 있다. 나는 우리 동네 어떤 강아지도 아마존 락커에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롤리는 절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예닐곱 개의 꽤나 높은 계단이 있지만, 그 계단을 깡충깡충 뛰어올라 거대한 아마존 락커 문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본다. 문을 열라는 뜻이다. 할 수 없이 나는 무거운 락커 문을 힘껏 열어준다. 그럼 롤리는 락커 안을 한 바퀴 쭈욱 돌며 냄새도 맡고 별일 없는지 꼼꼼히 체크한다. 롤리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마존 직원으로 채용된 게 아닐까. 비밀업무를 부여받은 아마존 견공 직원이 아니면, 무엇 때문에 굳이 이 안전해 보이는 락커에 매일 들어와서 점검을 하는 것인지. 하하.

    롤리의 하루 업무 중에 '아마존 락커 돌아보기'가 있는 게 분명하다. 롤리의 연봉은 얼마인지도 궁금하고, 아마존 직원 중 다른 강아지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도 궁금하다. 아무튼, 롤리는 아마존 허브 락커를 돌아본 후, 다시 문 앞에 서서 문이 열리기를, 아니 내가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린다. 내가 무거운 락커 문을 열어주면 롤리는 높은 계단을 총총 내려가서 자연스럽게 집으로 향해 걸어간다. 오늘 할 일을 다했다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우리 집 강아지 롤리는 아마존 비밀요원이 분명하다.

    언제 엄마인 나에게 그 비밀을 알려줄지 궁금하다.

    롤리가 말해주는 날, 여러분들에게도 말해줄 테니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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