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도슨트 미국 할머니들에게 한국의 '효제도' 병풍 소개하기
내가 도슨트로 일하고 있는 샌 안토니오 미술관에는 조선시대 '효제도' 병풍이 소장되어 있다. 미술관의 아시안 컬렉션에 대해 공부했던 학기의 마지막 과제는 아시아 미술 작품 중 하나를 골라 동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이었다. 외국에 나가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하더니만, 나 역시 그러한 클리셰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했나 보다. 많은 중국, 인도, 일본 등등의 작품들을 버려두고, 난 얼마 없었던 한국 소장품들 중에서 비교적 화려하게 미술관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효제도' 병풍에 대해 발표하기로 정했다.
우리 클래스는 한국인인 나와 다른 한 명의 중국인을 제외하고 모두 미국 아줌마, 할머니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에게 아시아 미술은 꽤나 낯설고,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미술을 배울 때와 유럽 미술에 대해 공부할 때, 미국 할머니들의 표정은 좀 더 밝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발표 작품은 19세기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효제도' 병풍이었고, 이것은 8폭짜리 병풍에 민화와 글자를 함께 담아둔 것이었다. 8폭에는 각각 '예, 의, 염, 치, 효, 제, 충, 신'이라는 글자와 함께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 나무, 동물들을 그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8가지 덕목은 유교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기본적 덕목으로서, 조선시대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던 사상이다. 사실 이러한 유교 사상은 원래 중국의 고전에서 유래하였지만, 효제도 병풍의 미학과 디자인은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었다.
한자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 사람들에게 8가지나 되는 덕목과 가치를 30분 안에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는 그래도 좀 이해시키기 쉬울 것 같은 두 개의 글자를 선택하기로 하고 '효'와 '충'을 골라냈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한 미국 땅, 아메리카에서 나고 자란 미국 할머니들에게 어떻게 '효'와 '충'을 설명할 것인가.
일단 한자와 한글에 익숙하지 않은 미국 할머니들에게 글자를 써보는 액티비티를 시켜보고, 글자와 그림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적 보조자료를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림 그릴 때 자주 쓰는 비싼 백지 위에 붓펜을 써서 한자와 한글로 '효'와 '충'을 쓰고, 쓰는 순서대로 나눠서 쓰고, 따라 쓸 수 있도록 친절하게 번호를 매겼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효'라는 한자는 '늙을 노'와 '아들 자'가 합쳐진, 아들이 노인을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러 번 귀로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나을 때가 많다. 나는 한 아들이 노인을 등에 업고 있는 그림을 그려 넣었다. 효자 아들의 얼굴과 등에 업힌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함박 미소까지 그려놓았다. 모름지기 '효'란 마음에서 우러나와 기쁨으로 행해야 진정한 효도가 아니겠는가. 하하.
그리고, 원본 작품 효제도 병풍을 본떠서 두꺼운 종이로 꼬마병풍을 제작했다. 8개의 한자를 병풍과 똑같이 적어주고, 친절하게 영어로 발음 나는 대로 써 놓았다.
드디어, 국뽕이 차오른 위대한 대한의 딸의 효제도 발표날!
나는 조선시대 병풍의 독창성과 아름다움, 그리고 조선시대 저변에 흐르고 있는 유교사상에 대해 설명하고, 미국 아줌마, 할머니들께 종이를 나눠주고 '효'와 '충' 글자를 써보게 하고, 그 의미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발표를 마쳤다. 그분들의 피드백은 호평 일색이었다. 발표도 너무 새로웠고, 글자를 그려보는 (쓰는 게 불가능) 경험도 재미있었고, 잘 알지 못하는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의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도 흥미로웠다고 했다.
그날의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연구하고 공부해서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전하는 전도사가 되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이만하면 특명은 성공적으로 수행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