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눈발이 날려서 나가기 싫었지만, 길을 나섰다. 10시부터 시작될 예정인 조웅래 회장의 강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강연장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맞은편에서 시내버스 한 대가 쌩 지나갔다. 반드시 타야만 하는 버스였지만, 놓치고 말았다. 다음 버스는 무려 30분이나 후에 올 예정이었다.
'주말이라서, 배차 간격이 더 길군.'
바람이 매서웠다. 버스 정류장에서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다시 집으로 향했다. 경비실에서 택배를 하나 찾고, 집 현관에 놓았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되돌아갔다.
강연장에 도착하니, 만석이었다. 지난달, 변호사의 강연을 들을 때와는 사뭇 참석률이 달랐다. 청중들은 대부분 머리가 하얬다. 노인들이 많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언뜻 봐도, 내가 가장 젊어 보였다. 짐작하건대, 그녀는 젊은 사람이 안 어울리게 왜 이런 곳을 왔을까 하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뭘 봐, 젊은이 처음 보나?'
맥키스컴퍼니는 소주를 만드는 회사이다. 옛날 이름은 선양이다. 또, 대표자 조웅래 회장의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이 정도면, 술을 안 마시는 사람치곤 꽤 많이 알고 있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아는 덴 다 이유가 있다.
대전의 계족산 황톳길과 뻔뻔(Fun Fun)한 클래식의 창시자가 바로 조웅래 회장이다. 그의 업적 덕분에 맥키스컴퍼니와 회장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계족산 황톳길은 예전에 맨발로 걸어본 적이 있다. 계족산 황톳길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곳이 아니라, 황토를 구해 인위적으로 만든 관광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충격이 컸다.
'엥? 그런 짓을 대체 왜 해? 그럼, 비용은......? 유지비가 많이 들 텐데! 비 오면, 황토가 씻겨 흐르잖아!'
조웅래 회장의 언급에 따르면, 계족산 황톳길 유지비는 연간 10억 이상 든다고 했다. 전북 김제와 익산에서 연간 2,000톤의 황토를 운반해 임도에 까는 작업을 2006년부터 시작하고, 현재에도 관리 중이라고 했다.
이 길은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됐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계족산 황톳길을 걷기 위해 다른 지역에서 관광객들이 단체로 온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내심 놀랐다. 한 관광객에게 물으니, 부산에서 왔다고 했다.
'고작 이걸 보러 여기까지 와? 부산이 관광 도시니까, 더 볼거리가 많은 거 아니야?'
당시엔 그렇게 생각했다. 조웅래 회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계족산 황톳길은 대한민국 맨발 걷기의 성지라고 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국내에도 순례길을 만드는 겁니다."
'오, 스페인 굳이 안 가도 되겠네! 해외에서까지 사람들이 계족산 황톳길을 걸으러 오는구나!'
조웅래 회장이 준비한 파워 포인트에는 잼버리 단원들이 약 14.5km의 길이의 계족산 황톳길을 걷고, 음악회를 감상하는 사진들이 있었다.
'와, 즐겁고 행복해 보여!'
뻔뻔한 클래식의 존재도 놀라웠다.
'이게 무료라고? 세상에, 횡재했네! 음악인들 출연료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텐데!'
비록 숲 속에서 음악회를 감상하진 못했지만, 새해 기념으로 뻔뻔한 클래식 신년 음악회를 즐긴 적이 있다. 유쾌하고도 유익한 자리였다. 뻔뻔한 클래식 공연비는 연간 50억 이상이 든다고 했다.
'천문학적인 숫자네...... 돈이 안 아까운가?'
조웅래 회장은 속마음을 꿰뚫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이 좋아하니까요."
한편, 그는 달리기를 하며 국토를 완주했고, KRI 한국기록원의 공식 인증을 받았다. 이것도 역시 그냥 뛴 것이 아니라, 기부까지 했다. 60대 중반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알면 알수록 존경스러운 인물이다.
"우리는 대부분 남과의 약속은 잘 지켜도, 자신과의 약속은 안 지키는 경향이 있어요. 자신과의 약속을 더 잘 지켜야 해요. 핑계가 쌓이면, 포기가 됩니다. 제 무릎 관절 나이가 40대 후반이라더군요. 병원에 가지 않기 위해서, 맨발로 걷습니다. 물론, 아프면 병원에 가야죠."
그에게 질문했다.
"계족산 황톳길을 만들기 위해 허가는 어떻게 받으셨어요? 혹시, 계족산을 통째로 사신 건 아니죠?"
"질문 잘하셨네요! 계족산은 제 소유가 아닙니다. 남들은 다 제 건 줄 알아요. 당시, 박성효 시장님에게 제안했어요. 임도에 흙을 깔아도 되겠느냐고요. 180억을 투자했습니다."
곧, 새해가 다가온다. 대전에는 맨몸 마라톤이라는 대회가 매년 1월 1일, 11시 11분 11초에 열린다. 신문에서나 기사를 접했지, 마라톤에 참가한 적은 없다.
'얼어 죽을 일 있나, 알몸으로 달리기를 왜 한담......?'
당시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땐,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도 역시 조웅래 회장의 기막힌 발상이었다. 그는 맨몸 마라톤에 참가했던 자신의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드러낸 상반신에는 '몸이 답이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괴짜 회장님의 유쾌한 행보가 앞으로도 기대된다.
운동 동호회 단체 대화방에 이 내용을 공유하니, 맨몸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지인들이 두 명이나 됐다. 한 명은 40대, 다른 한 명은 20대인데 모두 남자들이다. 이 시점에서, 30대 여자도 참가해야 하나?
참고
http://www.korearecords.co.kr/cms/bbs/cms.php?dk_id=274&dk_cms=act_01
조웅래 님, 대한민국 국토 한 바퀴 최단기간 완주 (비장애인/개인 부문) 한국기록원 공식 인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