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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n 22.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2)

인천 국제공항에서

  인천 국제공항에서 우리가 탈 중국행 비행기는 금요일 오후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경기권의 교통체증이 걱정됐다. 또, 탑승 수속을 하기 위해선 반드시 항공 출발 시간보다 일찍 공항에 가서 대기해야만 한다. 게다가, 탑승 수속 전에 여행사 직원을 만나 중국 비자도 받아야 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 셋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6시에 부리나케 출발했다.  

  고맙게도 다랑이 선물을 준비했다. 백두대간 완등을 축하하는 플래카드였다. 그런데, 다랑이 자율적으로 사용한 여자 사진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쁘지?'라고 말하는 남자 친구를 보고, 차마 부정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윽, 왜 하필 이 사진을 썼어?"

사진 속 인물은 바로 작년 가을, 산행 중 다랑이 찍은 나였다.

  참고로, 백두산뿐만 아니라 연길 전 지역에서 플래카드나 태극기를 펼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한다. 그 까닭은 이곳이 북한과의 인접 지역이기에, 국가 간의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매우 이른 시간이었다. 귀남 오빠는 <솔로 지옥>이라는 연애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 중이었다.

  귀남: 어떻게 이런 완벽한 외모에 학벌까지 좋을 수가 있지?

  슈히: 보이진 않아도 어딘가 분명, 흠이 있겠죠.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으니까요. 성격이 별로라든가, 

          성적 취향이 변태라든가.

  귀남: 그럼, 구멍이 없나......?

  슈히: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귀남: 아니, 땀구멍 말이야.

  슈히: 아, 네...... 콧구멍도 구멍은 구멍이죠.

  귀남: 게임 승자는 호텔에서 하루 묵거든. 카메라 꺼지면, 얘네도 OO하겠지......?

  슈히: ......


  다랑과 앞뒤로 앉아 내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는데, 지나가는 여자들이 힐끔거렸다. 그 시선이 꽤 싫지는 않았다.

  '호호, 여자 친구 머리카락 묶는 남자를 처음 보시나?'

  한 여자가 캐리어를 끌고 지나가는데, 생경한 소리가 났다. 바닥이 긁히며 바퀴에서 나는 소리였는데, 마치 새소리 같았다.

  "아무래도, 저 캐리어 안에 새 한 마리가 갇혀 있나 봐."

내 말을 들은 다랑이 곧 동의를 표했다.  

  "어, 연예인 왔나 봐!"

  귀남 오빠가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과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잠시 후, 돌아온 귀남 오빠가 연예인이 온 게 맞다고 말했다. 생소한 연예인이었다.

  "오빠, 연예인이 온 걸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 카메라 든 사람들이 달려가는 걸 봤거든."

  

  한참 기다리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여행사 직원이었다. 

  "혹시, 공항 도착하셨어요?"

  "네, 아까부터 와서 대기 중이에요."

  "그럼, 지금 약속 장소로 오시겠어요? 다른 분들은 다 오셨거든요."

  이동할 때 카트에 캐리어들을 얹고, 다랑이 밀었다. 나란히 걷는데, 그가 말했다.

  "위에 앉아 봐."

  "응? 그래도 돼?"

달리는 카트를 타고 씽씽 달리니, 마치 어린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재밌었다.

  여행사 직원이 설명했다.

  "중국 연길 공항에 도착하시면, 1번 손님부터 차례 대로 서세요. 1번이 비자 원본을 직원에게 보여주시면 돼요. 비자 사본도 2개 추가로 넣었어요. 그리고, 이건 비자 발급 취소 사유서예요. 손님 한 분이 여행 취소하셨거든요. 마지막으로, 6번 손님이 비자 원본을 다시 받아서 1번 손님한테 돌려주시면 돼요. 귀국할 땐, 공항에 비자를 제출한 채로 그냥 오시면 돼요. 아셨죠?"

  갑자기 막중한 임무를 띄게 됐다. 1번이 바로 나였고, 다랑이 2번, 귀남 오빠가 3번이었다. 아마 인터넷으로 여행 상품을 예약한 순서인 듯 보였다. 

  "갑자기 대장이 됐네?"

  우리들 외에 다른 3명은 70대 남자 어르신들이었다. 원래 동창끼리 4명이 오려고 계획했으나, 1명이 상을 당하는 바람에 갑자기 못 오게 됐단다.

  "오자고 했던 놈이 못 왔어."

  "저런, 안타깝네요."


  탑승 수속을 마쳤다. 우리가 타는 중국 국제 항공은 기내용 인당 8kg, 위탁 수하물 인당 23kg 이하가 제한 무게였다. 백두산 날씨가 워낙 춥다고 해서, 두꺼운 겨울옷을 넉넉히 챙기느라 짐이 상당히 무거웠다. 다랑과 나는 대형 캐리어 하나에 둘의 짐을 합쳐서 쌌다. 21kg이었다. 그런데, 귀남 오빠는 혼자만 짐 무게가 15kg이나 달했다.

  "오빤, 대체 뭘 싼 거예요? 이번에도 지난번 베트남 여행 때처럼 드라이어는 분명 챙겼을 테죠."

  "어, 드라이어 하나 챙겼어. 남이 쓴 물건 쓰기 싫어서."

  "혹시, 벽돌 들었어요......?"


 보안 검색대를 지나, 탑승구로 가는 길목에 면세점이 보였다. 담배는 인당 최대 두 보루씩 살 수 있는데, 귀남 오빠는 담배를 무려 여섯 보루나 챙겼다. 다랑과 내 신분증을 제시해서 산 물품이었다.

  '아이고, 몸에 해로운 걸 저리도 많이 사다니......'

한 술 더 떠서, 귀남 오빠는 소주도 챙겨 왔다고 했다.

  "중국에서 소주 사면 비쌀 테니까, 준비했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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