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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01.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7)

정상에서 본 것들

  가까스로 정상에 올랐으나, 보이는 건 안개 천지였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오직 잿빛이었다. 천지는 구정물이었다. 그저 넋을 잃고 바라만 봤다. 사진 따위는 전혀 찍고 싶지 않았다. 한없이 착잡했고, 망연자실했다. 마음이 타들어갔다.

  '휴...... 저게 천지라고? 칙칙하다, 칙칙해! 고작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고생하며 온 거야?'

  다랑이 말했다.

  "좀 기다려 볼까? 혹시, 안개가 걷힐 수도 있잖아."

  "......"

  그의 제안은 희망적이었으나, 현실은 희망 따위 티끌조차 보이지 않았다. 몇 분 채 지나지 않아, 천지는 안개에 휩싸여 자취를 아예 감추고 말았다.

  "안 돼, 이 망할 안개! 으앙, 억울해!"

  "저기 보이는 숫자는 누나 현재 나이랑 같네."

  고개를 돌려 보니, 37호 경계비가 눈에 들어왔다. 천지를 보지 못했으니 아쉽지만 비석이라도 찍자 싶어 가까이 다가갔다. 장백산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을 들고 기념촬영했다. 37호 경계비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계를 나타내는 푯말이다. 중국 쪽 면에는 '중국 37' , 반대쪽은 '조선 37'이라고 쓰여있다는데, 당시엔 그걸 몰라서 실제로는 '조선 37'이라는 글씨를 보지 못했다. 후기를 작성 중인 현재에서야 인터넷을 검색해 안 사실이다.

  "귀남 형은 언제 오려나?"

  귀남 오빠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게. 정상에서 같이 사진 찍어야 하는데."

잠시 후, 드디어 그가 도착했다. 반가웠다.

  "오빠, 괜찮아요?"

  "..... 어."

  셋이 모여 37호 경계비, 1,442 계단, 해발 고도와 안내문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백두산은 해발 2,470m인데,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최고봉이라니, 단지 이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산이다.

  가방 속에 레오타드와 타이즈, 슈즈가 들어있었으나, 차마 꺼낼 수 없었다. 갈아입을 마땅한 장소도 없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백두산을 오르기 전, 버스 안에서 가이드에게 질문했다.

  "정상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건 가능한가요? 발레 의상을 준비하긴 했거든요."

  "그건 무관할 것 같네요. 가능해요. 서양 문물이니까요. 백두산뿐만 아니라, 연길에서는 태극기나 플래 카드를 펼치면 안 됩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이기 때문에, 관련 있는 모든 것은 삼가는 게 좋아요."

플래카드를 준비한 다랑에게 가이드가 미리 신신당부했다. 

  서둘러 하산했다. 암울한 심정이었으나, 등산하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위안을 삼았다.

  '하산할 때 비 와서 그나마 다행이네...... 휴, 백두대간 완등 후인 내년을 기약해야겠어. '미리 완등식'은 망했군!'

  가이드는 다음 일정을 안내했다.

  "식사 후에 금강 대협곡에 갈 거예요. 혹시, 피곤하시면 안 가셔도 돼요. 가신다는 분 한 분이라도 계시면, 일정은 예정 대로 진행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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