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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02.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8)

금강대협곡의 윙크

  서파 정상에서 하산 후, 화장실에 들렀다. 소변이 별로 급하진 않았다. 어깨에 멘 가방 위에 우비를 입은 터라, 가방 부피 때문에 몸이 둔했다. 용무를 마치고 나오자,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실내에 모여있었다. 쏟아지는 비를 피해 화장실로 대피한 상황이었다. 모인 사람들의 체온 덕분에, 화장실은 비교적 따뜻했다. 하늘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한국의 여름 장마 같았다. 오래 머물지 않고, 화장실을 빠져나와 서둘러 일행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여행사의 가이드들이 깃발 혹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단체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에워싸고 졸졸 따라다니는데, 유치원생들을 연상케 했다. 우리 단체는 어딨는지 통 안 보였다. 기웃거리며 한참 인파 속을 헤매다가, 지쳐갈 때쯤 다랑이 기적처럼 다가왔다.

  "이거 나눠 먹자. 귀남 형은 휴게소 안에서 라면 먹고 있어."

그의 손에는 컵라면 한 사발이 들려 있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비웠다. 따끈한 국물을 마시니, 얼어붙은 몸이 좀 풀리는 듯했다. 물론, 여전히 추웠다.  

  가족끼리 온 9명을 한참 기다렸다. 갈비뼈 골절 환자가 한 명 있어서, 하산이 더딘 모양이었다. 인내심 있게 기다렸고, 마침내 일행 전원이 집합했다. 작은 버스를 타고, 한참 달렸다. 인근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은 달걀이 아주 조금 들은 국과 비빔밥이었다.

  "내가 음식 받아갈게, 누나는 자리 좀 맡아줘."

다랑의 부탁에, 창가로 가서 빈 좌석을 미리 차지했다.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어서, 회전율이 빨랐다. 춥고 배고파서 멍하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가이드라는 직업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었다.

  "예전에 만난 가이드는 어찌나 섬세하던지! 해 질 녘에 식당에 데려가더라고요. 자기만 아는 노을 명소라면서요. 손님들이 전부 그 경치에 홀딱 반해서, 지갑 열어서 가이드 팍팍 밀어줬잖아. 영업은 그렇게 해야지!"

  화자는 초면의 한국인 여성이었는데, 가이드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는 어투였다. 그녀의 담당 가이드가 영업을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 가이드들은 대체적으로 영업 방식이 비슷한 모양이었다.

  '알 만 하네...... 보나 마나, 이 가이드도 손님들에게 선택 관광을 강요함으로써 추가 금액 지불을 강요했겠지. 아, 선택 권한이 없는 선택 관광! 명칭을 바꿔야 돼, 독재 관광 혹은 타율 관광으로.'

  이윽고, 다랑과 귀남 오빠가 음식을 들고 자리로 왔다. 어르신들과 어울려 식사하는데, 밑반찬을 나눠주셨다. 한 어르신이 한국에서부터 개인적으로 준비해 공수한 것들이었다. 반찬은 멸치볶음, 김치볶음 등이었는데, 맛있었다. 더 나아가, 그는 작고 투명한 밀폐 용기에 소주까지 담아 왔다. 준비성이 꽤 철저한 분이었다. 남은 5명의 일행 중 유일한 음주자인 귀남 오빠가 어르신으로부터 반갑게 술을 받아 마셨다.

  "금강대협곡 볼 거야? 난 별로 안 보고 싶은데...... 피곤해서, 쉬고 싶어."

  귀남 오빠가 속마음을 털어놨다. 아까 1,442개 계단을 오르고 내리느라 지친 기색이었다.

  "아, 그럼 오빠는 여기서 그냥 쉬고 있어요. 전 다녀올게요. 천지도 못 봤으니, 대협곡이라도 봐야죠! 다음에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다른 일행들의 의견은 어떤지 궁금했는데, 안 간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버스 안에서 가이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르신들 보면, 의외로 80대들이 가장 정정하세요.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껏 즐기자는 마음가짐이시더라고요. 의외로, 70대들이 좀 신경질 적인 편이에요."

  현재 30대라서, 노년의 삶은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노인들을 대할 때면 간혹 노후에 대해 막연히 떠올리곤 한다.

  '젊을 때 부지런히 여행 다니고, 늙어서는 피곤하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야지!' 

  식당에서 도로를 지나, 우거진 숲 속으로 들어갔다. 관광객들과 나무 데크 위를 한가로이 걸었다. 초입은 한국과 별반 차이 없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곧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맞닥뜨렸다. 금강대협곡은 백두산의 화산 폭발 이후 용암이 흘러내리고, 오랜 세월 풍화 작용을 거친 원시림이라고 한다. 과연, 장관이었다.

  관광객들이 모여 사진 촬영 중이었는데,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었다. 한걸음 물러나 벤치에 올라서 경치를 내려다보는데, 순간 번뜩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와, 아름다워! 협곡이 윙크하고 있네! 다랑, 여기 서서 똑같이 윙크해 봐!"

다랑이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하자, 귀남 오빠가 지나가며 말했다.

  "시키는 대로 다 하네."

잠시 머쓱했으나, 결론적으론 말 잘 듣는 남자 친구가 최고다. 금강대협곡 얼굴 옆에 서서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와서, 참 유쾌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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