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슈히 Jul 05. 2024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11)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장백 폭포

  여행사 전세 버스를 타고, 백두산 국립공원에 도착했다. 과연, 북파는 가까웠다. 접근성이 좋았다. 입구 앞 줄을 섰다. 대기 손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비교적 한산했다. 7시 30분부터 입장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입장 시간이 지났는데도 들어갈 수 없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담......?'

  그런데, 남자 직원이 가까이 오더니 관광객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가이드가 듣더니, 통역했다.

  "어제 온 비가 눈으로 바뀌어서, 천지 통제됐다네요. 그래서, 오늘은 장백 폭포까지만 갈 수 있대요."

아뿔싸! 너무 실망스러웠다. 호텔 조식도 못 먹고 부지런히 왔는데, 천지에 가는 것조차도 불가능하다니! 입산 금지된 상황이 억울하고, 분하며, 안타까웠지만, 국립공원의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국립공원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한적한 숲 속 도로를 달렸다. 몇 분 안 가서,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비를 입고, 버스에서 내렸다. 화장실부터 들렀는데, 먼발치에서도 장백 폭포가 뚜렷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장백 폭포를 붙잡는 듯한 모습으로 기념촬영했다. 

  하늘은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내 마음도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어휴, 지지리 운도 없군. 이틀 연속으로 허탕이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심지어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천지 도전 여섯 번만에 성공했다고 한다. 물론, 전혀 위안은 되지 않았다. 첫 도전에 성공한 사람들도 분명 많으니까 말이다. 

  '백두대간 완등 후에 꼭 다시 와야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천지잖아. 물론, 갈 곳이 너무 많으니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중국 10대 명산 중 하나 갔으니, 이제 아홉 개 남았군.'

  가이드가 찐 달걀과 찐 옥수수를 내밀었다. 

  "백두산 온천으로 익힌 달걀과 옥수수예요. 제가 사는 겁니다."

일행들과 모여 음식을 먹었다. 샛노란 옥수수는 빛깔이 고와 먹음직스러웠지만, 정작 별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였다. 그저 허기를 달래기 위해 먹었다.

  귀남 오빠는 달걀 껍데기를 까는 도중에 노른자가 그만 쏙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게다가, 달걀이 채 익지 않은 상태였다.

  "세상에, 노른자가 탈출했네! 너무 아깝다......"  

  혹시라도 같은 상황이 될까 봐, 일부러 달걀은 안 먹고 남겨뒀다.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비 때문에 추워서, 손난로 대용으로 달걀을 사용했다. 한 손에 달걀을 꼭 쥐고, 장백 폭포로 향했다. 팔팔 끓는 김이 나는 온천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다가가, 손을 담갔다. 따뜻했다.

  데크 다리를 지나는데, 우박이 쏟아졌다. 눈인가 싶었지만, 결코 눈이 아니었다. 분명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데, 바닥을 보면 뚜렷한 형체를 띤 흰 알갱이였다. 어제에 이어 우박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신기했다. 

  "으악, 하늘에서 비듬 떨어진다!"

  정비가 잘 된 데크 등산로와 계단을 천천히 올랐다. 어제 간 서파 1,442개 계단에 비하면, 굉장히 쉬운 난이도였다. 북파는 조금만 오르면, 금방 장백 폭포에 이를 수 있다. 별로 고생하지 않고, 장백 폭포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장백 폭포는 용이 날아가는 모습 같다고 해서 비룡 폭포라고도 불린다. 또, 송화강의 발원이기도 하다. 백두산은 한겨울에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데, 장백 폭포는 결코 얼지 않는단다. 영하 40도가 상상이 가지도 않지만, 쉬지 않고 흐르는 장백 폭포가 놀라웠다.

  일행들과 모여 장백 폭포 앞에서 셋이서 기념촬영했다.

  "둘이 서 봐, 찍어 줄게!" 

귀남 오빠가 말했다. 다랑과 얼굴을 맞대고 다정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다시 귀남 오빠의 얼굴을 봤을 땐, 그는 영혼 없이 무성의하게 손가락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미안함과 멋쩍음이 뒤섞였다. 한편으론, 웃겼다. 나중에 사진을 확인하자, 다랑과 마주 본모습 뒤로 웬 남자 노인이 우리를 응시 중이었다.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 선남선녀라서, 넋을 잃고 보는 게로군!'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에 가다(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