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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Jul 14. 2024

사람 귀한 줄 몰라서(1)

바지동장

  만물의 생명력이 넘치는 오월이었다. K동에서 수업을 들을까 싶어 주민 자치회에 문의했더니, Y구민이 아니라서 수강 불가하다는 극단적인 답변을 들었다.


슈히: 접수하면, 신분증과 주소지를 대조하나요?

여직원: 네.

슈히: 작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수업 들을 땐, 그런 거 안 했는데요?

직원: 제가 1월 1일부터 근무했어요. 12월에 접수를 받아서, 2월까지 진행한 거잖아요. 전에 근무하시던 분이 그렇게 하신 거 같아요.

슈히: 그럼, 전에 계시던 분은 융통성이 있고, 지금 근무하시는 분은 융통성이 없는 거예요?

직원: 융통성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해야 하는데. Y구민만 받는 거라고 해서, 그렇게 일 처리를 했거든요. 
모르겠어요. 

슈히: 이전 근무자가 편의를 배려해 준 거지, 잘 모르고, 한 게 아니에요. Y구에서 재직하는 자격으로 수강한 거예요. 잔여석이 없으면, 아예 문의하지도 않아요. 지금도 잔여석이 있잖아요. 그런데, Y구민이 아니라서 수강 불가하다니, 현재 근무자는 비교적 융통성이 부족한 거죠. 

직원: 원칙을 지켰을 뿐이거든요.

슈히: K동에 사는 아는 언니가 지금, 거기서 수업을 들어요. 앞으로 수업 못 듣는다고 연락했더니, 언니가 이유를 묻더군요. 그 언니 말로는, 주소 확인 안 했대요.(한숨)

직원: 그분이 누구신데요?

슈히: 이름을 밝히겠어요? 그 언니한테 피해가 갈 게 뻔한데.

직원: 그럼, 제가 회원들 주소 다 확인할게요.

슈히: 황당하죠. 실제로 근무를 어떻게 하시는지, 그건 제가 참견할 바가 아니에요. 일을 제대로 안 하셨는데, 일을 옳게 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니, 웃겨서요. 제가 누구 말을 믿겠어요? 아는 언니 말을 믿겠어요, 아님 지금 통화하는 얼굴도 한 번 본 적 없는 분 말을 믿겠어요. 너무 황당해서요.

직원: OO님과 일을 같이 하다 보니, 확인 못 한 부분이 있기도 해요.


  그녀가 OO님에 대해 언급하자, 심경이 거슬렸다. 주소지 확인 하에 수강생을 받으라는 규정은 작년까지만 해도 없었다. 그런데, 올해부터 개정된 까닭은 분명 누군가 건의해서 강화된 것이리라는 짐작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K동에 가서 동장과 그 외 관계자들을 만났다. 동장도, 다른 직원들도 모두 여자들이었다. 총 다섯 명이 대면했다. 직원들 중 하나가 과일 주스를 권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음료를 받았다. 그걸 마실 기분이 아니라서 입에 대지는 않았으나, 주섬주섬 챙겨서 귀가했다.

  그들은 내 요구 사항을 주민 자치회에 건의해 보겠다고 했으나, 연락 주겠다는 말은 네 명 중 그 누구도 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일이 수월히 풀리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 

  아는 언니에게 소식을 전하니, 그녀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S 언니: 슈히 씨, 지금 어디예요?

슈히: 집에 왔어요.

S 언니: 벌써, 집에 왔어요?

슈히: 네. 아까 OO님 만났어요. '수강 가능 잔여석 한 자리 있대요.' 하고 말했더니, '아냐, 다 찼어.' 하시더라고요. 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게, 확실히 느껴져요. '잠깐 들어왔다, 가.' 이런 말도 안 하던데요. 대놓고, 문전박대했어요. 

S 언니: 아, 왜 그러셨을까...... 마음 아프게, 우리 슈히 씨.

슈히: 새 강사님은 제가 모르는 분이었어요. OO님이 매정하게 말하는 바람에 미처 교실 안으로는 못 들어갔어요. 그냥, 고개 까딱하면서 먼발치에서 강사님과 인사했어요. 동장과 면담했어요. 

S 언니: 어어.

슈히: 공손하게 부탁했지만, 연락 주겠다는 말은 아예 없었어요. 분위기로 봐선, 잘 안 될 것 같아요.

S 언니: 그래도, 슈히 씨 똑똑하다. 난 너무 놀라서, 울고 나왔을 것 같은데.

슈히: 저도 놀랐어요. 왜 울어요!

S 언니: 하하하, 맞아. 어른인데, 왜 울어요? 슈히 씨, 당찬 사람인데.

슈히: Y구청에서 주민자치 프로그램 진행하라고, 민간 위탁을 줬대요. 근데, 제가 D구서도 수업 듣잖아요. 거긴 그냥 공무원이 담당해요. 게다가, 거긴 인원 미달이에요.

S 언니: 아, 인원이 부족하니까 거긴 주소지를 별로 신경 안 쓰나 봐요.

슈히: 맞아요. 거긴 사는 동을 아예 묻지도 않아요.

S 언니: 그래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사실. 선착순으로 마감할 일이 없으니까. 생각해 보니, 중간이 그냥 가신 분들이 있었어요. '왜 그냥 가지?'하고 생각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던 거예요. 아, 근데...... 슈히 씨, 억울해서 어쩌지?

슈히: 어쩔 수 없죠. 

S 언니: 내가 다 미안하네......

슈히: 다 같은 D광역시민이잖아요. 부당하지 않나, 분명히 내가 내는 세금 Y구에서도 쓰일 텐데.

S 언니: 그럼요! 슈히 씨는 여기저기서 근무하니까.

슈히: 동장한테 말했어요. 여기 아줌마들이 워낙 치맛바람이 세서, J 강사님이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쫓겨났잖아요. 너무 놀란 게, OO님이 저한테 J 강사에 대해 민원을 좀 넣으라는 거예요. '아니, 민원사항이 없는데 왜 민원을 넣으라는 거지?' 생각했죠.

S 언니: 어머, 웬일이야! 그래 놓고선, 누가 대체 민원을 넣었냐고 그러는 거야.

슈히: OO님이요.

S 언니: OO님?

슈히: 네. '슈히 씨도 민원 좀 넣어.'라고 하셨어요. 녹음해 놓은 건 없어서, 증거가 없네요. 제가 주 1회만 수업 들으러 가잖아요?

S 언니: 네.

슈히: 사실 분위기 파악하기 어려운데, 가자마자 이상한 걸 눈치챘어요. 어느 어머님이, '음악 소리 좀 키워 봐요!' 그러길래, '충분히 소리가 큰데, 왜 시비를 걸지?' 싶은 거예요.

S 언니: 맞아, 나도 들었어.

슈히: 제가 감히, '지금도 소리 괜찮은데요?' 할 수 없잖아요.

S 언니: 그렇지! 제일 어리고, 막내인데. 다른 아줌마들 다 50, 60대인데. 나도 말 못 했어요. 말했다가, 괜히...... 기 센 사람들이 몇 명 있어요. 그 사람들이 주도하잖아. 

슈히: 맞아요.

S 언니: 나머지 불만 없는 사람들도 마치 동조하는 것처럼 돼버려.

슈히: 저는 최선을 다했고, 연락은 안 올 것 같아요.

S 언니: 우리 슈히 씨 못 보면, 나 너무 섭섭한데? 슈히 씨 멀리서 오는 건데......

슈히: Y구는 인구가 많아서, 사람 귀한 줄 몰라요.

언니: (웃음)

슈히: D구에서는 회원 한 명 한 명이 소중해요. 제가 4월부터 6월까지 근무하느라, 수업 못 간다고 하니까 D구 회장님이 너무 안타까워하는 거예요.

언니: 아유, 그렇구나. 잘못하면, 폐강될 수 있으니까.

슈히: 그럴 수 있어요.

언니: 사람이 많은 데선 제한하고, 말도 많고. 어휴. 할 일 없는 아줌마들 때문에.

슈히: Y구 평생 학습 센터에서는 Y구 재직자면 당첨자 1순위예요. 수업 정원 미달이면, 타 구민들에게도 수강 기회를 줘요. 좋은 방침이죠. 이걸 동장한테 얘기했더니, 이미 알고 있대요. 근데, 이걸 왜 수용 안 하지?

언니: 동장은 눈치를 봐야 해요. 투표로 선출되잖아요. (웃음)

슈히: 할 말이 없네요.

언니: 그것 참,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슈히: 동장을 투표한 적은 없어서, 몰랐네요. 동장은 마치 권한이 없다는 식의 말투로 얘기하던데요? 동장은 핫바지야?

언니: 주민 자치니까. 거기 개입해서, 욕먹고 싶지 않겠지.

슈히: 아...... 맞아요. 다른 분이 그렇게 얘기하시더라고요. 동장이 말한 게 아니고, 옆에 계신 다른 분이요. 저를 설득하려고 애쓰시던데요.

언니: 슈히 씨가 억울해서, 혹시 다른 곳에 민원 넣으면 자기들이 머리 아프니까. 그렇겠죠?

슈히: 제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언니: 속상해...... 


  미해결로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상급 기관인 시청 자치 행정과에 문의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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