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세 명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예쁘고, 매력적이었으며, 안목도 역시 높은 편이었다. 그녀들은 멋진 이성과의 행복한 연애를 꿈꿨다. 부지런히 데이트했고, 열심히 연애했다. 간혹 내게 연애 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정도였으니, 나름 가깝다고 느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그들은 연애 기간에 태도가 돌변했다. 셋은 각자 다른 장소에서 다양하게 만난 이들인데, 발생한 문제점은 동일했다. 친구 사라, 아는 언니 미나, 아는 동생 혜주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같았다.
세 여자들은 애인이 없을 땐, 나와 소통이 원활했다. 연락도 잘 되고, 자주 만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서로의 집에도 드나들며, 자고 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중단됐다. 갑자기 연락이 안 됐다. 답답했다. 매일 연락하는 것도 아니고, 가끔 연락하는 건데 묵묵부답이었다. 믿었던 만큼 실망도 컸다.
'아니, 얜 또야? 이제 웃기지도 않네!'
첫 번째 사례, 동갑내기 사라는 결혼 정보 업체에 가입해서 선을 자주 봤다.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기 어려웠다. 서로의 조건을 보고 만나니, 사귀더라도 관계가 지속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사라가 외롭다고 내가 말했다. 문득, 아는 오빠 진원이 떠올랐다.
그냥, 알고 지내라는 차원에서 둘에게 소개를 제안했다. 그들도 처음엔 가볍게 만났다. 그런데, 둘이 꽤 잘 놀러 다녔다. 야심한 시각에 찜질방에서 만나기도 하고, 주말에 당일치기로 시외의 바다를 보러 가기도 했다. 잘 돼 가나 싶어서 조금 기대했다.
얼마 후, 진원이 적절한 시기에 사라에게 고백했다고 했다. 그러나, 맥없이 차였다. 사라의 취향이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주선자로서 유감이었다. 그리고, 사라는 누군가를 소개받아 부리나케 교제를 시작했다. 태세 전환이 빨라서, 내심 놀랐다.
"벌써 사귀어? 몇 번 안 만났다며. 남자 친구는, 어떤 사람이야?"
내가 묻자, 사라가 대답했다.
"사귀자는 말도 없었어."
"그럼, 사귀는 걸 어떻게 알아?"
"잠자리했거든."
"아, 그래."
"외모는 잘 생겼는데, 오빠가 운동을 별로 안 좋아해."
"그래? 너 운동 좋아하고 잘하는 남자 선호하잖아. 그럼, 네 취향이 아니네?"
"응. 그게 너무 아쉬워. 같이 운동하면 좋은데, 오빠는 하기 싫대."
시간이 흘렀고, 사라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 다가오는데, 일정을 취소하겠다는 의사였다.
"남자 친구가 있는데, 몰래 다른 이성을 만난다는 게 좀 불편해. 아무래도 약속 취소해야겠어. 슈히야, 미안해!"
"그럼, 난 어떻게 해? 너 없음 내가 혼자 나가야 하는데, 남자들이랑 어색하잖아! 게다가, 너 올해엔 한복 촬영하고 싶다며? 이번엔 꼭 가겠다며?"
"슈히야, 그냥 우리 둘이 만나면 안 될까? 남자들이랑 꼭 넷이 만나야 해?"
"야, 이제 와서 그러면 내 입장이 곤란하잖아! 남자들이랑 어울린다고 바람피우는 건 아닌데, 대체 왜 그래? 이성과 만나면, 반드시 다 사귀는 거야?"
네 명이서 전주 한옥 마을에 가기로 했었고, 사라가 연애를 시작하기 전부터 한 약속이었다. 그런데, 사라는 애인 때문에 약속을 갑자기 취소했다.
두 번째 사연, 미나는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만난 언니였다. 그 후로도 시내버스 안에서 또 만났는데, 그녀가 먼저 내게 연락처를 물었다.
"친하게 지내자!"
미나는 밝고, 애교가 많으며, 귀여웠다. 게다가, 적극적이었다. 미나를 알고 지낸 시점은 우리가 20대 중반일 무렵이었다. 그때 일제히 미나의 친구들이 결혼했기 때문에, 그녀는 놀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간과 관심은 내게 쏠렸다. 우리는 1살 터울이었고, 옆 동네 이웃지간이었다.
미나의 고독은 나날이 증폭했다. 미나의 친언니 유나가 시집가고 난 뒤부터 확연했다.
"슈히야, 오늘 하루만 집에서 자고 가면 안 돼? 응? 제발!"
"어, 지금 별로 늦은 시간도 아닌데. 나 여기서 집도 가까운데, 왜?"
"유나 언니, 이제 여기 없잖아. 방에서 혼자 자기 싫어. 부탁해!"
"남동생 있잖아."
"걘 노느라 늦게 들어와. 자고 가기 싫어? 잉잉......"
"아, 알았어! 그렇게 할게."
이토록 친밀했던 미나는 몇 년 후, 연하남과 사귀더니 1년이 지나자 결혼했다. 그녀는 연애 중 내게 굉장히 소홀했다.
'아니, 며칠이 지나도 통 답장이 없어?'
미나와 만나기로 한 날짜가 다가오는데, 그녀는 반응이 없었다. 전시회를 보러 가기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상의하던 중이었다. 기다리다 지쳐 답답한 마음에 미나에게 전화했더니, 그녀는 별로 미안해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친정 다녀오고, 산부인과 다녀오느라 연락 못했네. 너무 바빠!"
당시, 미나는 임신 중이었다. 출산 후엔 그녀를 만나기 더 어렵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언니, 너무하는 거 아니야? 왜 사람을 한없이 기다리게 만들어? 하루 24시간 중에 밥 먹고, 씻고, 잘 시간 분명히 언니도 있잖아! 그런데, 나한테 연락 한번 할 여유가 없어? 사람이 대체 왜 그래? 무례하다는 생각 안 들어?"
"오, 슈히야! 네가 결혼을 안 해서 몰라. 언니가 진짜 눈코뜰 새 없이 바쁘단다. 너도 결혼하면, 알 거야."
"아니, 언니는 연애 중일 때부터 그랬어. 내가 언니한테 매달리고 싶지 않아서 연락 안 한 거, 언니 모르지? 결혼이 아니라, 언니는 연애 시절부터 나한테 무관심했어! 그래 놓고 뻔뻔하게 결혼식에 초대하더라? "
그녀의 결혼식에 마지못해 갔지만, 축의금을 냈다. 또, 나중에 집들이할 땐 작은 선물도 전달했다.
서운한 감정을 털어놨을 때, 미나는 입장의 정당성만을 고집했다. 언니는 끝끝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결국, 감정을 위로받지 못해서 우리의 관계는 깨졌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고, 우연히 그녀의 남동생 호종을 만났다. 전해 들은 바로는, 미나가 아들을 낳았단다.
마지막으로, 혜주의 경우이다. 그녀와 처음 만난 건, 교통사고로 입원 중일 때였다. 시외에 사는 그녀가 차를 타고, 문병을 왔다. 참 고마웠다. 그래서, 퇴원 후에 그녀를 만나러 시외로 갔다. 카페에서 크로플과 음료를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지난번에 문병 와줘서, 고마웠어요. 내가 계산할게요."
"오, 아니에요! 언니가 여기까지 오셨으니, 제가 사야죠."
"혜주 씨가 다음에 사줘요. 오늘은 내가 낼게요."
그녀는 나보다 무려 5살이나 어렸는데, 어서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싶어 했다. 착실히 모아 놓은 자금도 꽤 있었다. 하지만, 혜주의 또래 남자들은 아직 결혼할 생각도, 준비도 안 된 상태였다. 서로 원하는 것이 달라서인지, 혜주의 연애도 순탄치 않았다. 식사 후, 카페에서 대화하던 중이었다.
"내가 남사친 만난다는데, 왜 내 애인은 질투를 1도 안 하죠? 아니, 글쎄! 애인이면 본인 외의 다른 이성은 모두 경계해야 되는 거 아닌가?"
"음, 연애하기 전부터 남사친이랑 혜주 씨랑 아는 사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나 봐요. 근데, 그게 그렇게 큰 문제예요?"
"언니도 그렇게 생각해요? 남자 친구가 그러는데, 자기는 그냥 믿는대요! 난 애인이 나 말고 이성 친구 만난다고 하면, 허락 못할 것 같은데! 이거, 애정의 크기 문제 아니에요?"
혜주는 오래 지나지 않아 동갑 애인과 헤어졌다. 그 후로도 또 동갑인 다른 상대와 교제했다. 그녀는 연애할 땐 내게 연락이 뜸했다. 너무 답답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SNS는 새 알람이 울렸다. 그걸 보자니, 더 화가 났다. 참다못해 불만을 털어놓자, 혜주는 미온한 반응을 보였다.
"언니는 별 거 아닌 거 갖고, 왜 그래요?"
내가 어린 상대에게 괜히 집착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냉정해지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그러나, 혜주는 몇 개월이 지나도 만나자는 말이 없었다. 음악회에 가자고 제안했으나, 남자 친구랑 가겠다고 하길래 그러라고 했다. 만남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우선순위가 애인이라는 점에 대해 감히 반박할 수 없었다.
'연애할 땐 다 그래!'라든지, '넌 연애 중일 때 안 그러냐?'라고 남들은 쉽게 말한다. 하지만, 연애는 천년만년 가지 않는다. 영원한 사랑 및 우정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세 번의 경험이면 결론을 내리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연애할 때도 친구들과 우정을 유지하는 것은 사랑만큼 중요하며, 연애할 때도 연애 안 할 때처럼 일관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한다. 연애 중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의 태도가 확연히 다른 사람은 더 이상 신뢰할 수도, 신뢰하고 싶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