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스러운 식사와 간식
맞은편의 검색대로 이동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노란색 상자에 XX유통이라는 한국어가 쓰여있었다.
"여기서 한국어를 볼 줄이야. 엄청 반갑네!"
가슴을 졸이며, 검사를 받았다. 이번엔 무사히 둘 다 통과했다. 다행이었다.
"바지를 조금 내렸을 뿐인데, 합격이라니 황당하군. 아까, 너 거부당한 거 너무 억울하다! 여자들은 치마 길이가 훨씬 짧았거든."
난 이미 훑어본 곳들이라서, 우리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오래 걸어서 피곤하고, 허기졌다. 관광지를 벗어나 식사하러 이동했다. 다랑이 알아둔 식당은 분짜 108이라는 곳이었는데, 가보니 휴무였다.
"연휴라서 죄다 폐점이네. 그냥, 아무 데나 가자! 배고파."
인근 식당으로 들어갔다. 차림표를 보자, 선택지는 쌀국수뿐이었다. 내내 쌀국수만 먹는 게 지겨웠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후식을 먹기 위해 콩 카페에 들렀다. 녹두 스무디를 마셨다. 처음 마시는 음료였다. 다랑은 코코넛 커피를 주문했다. 한국인 부부를 한쌍 만났는데, 아내는 화장실에 간다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남편은 베트남에서 한 달 가까이 여행 중이라고 했다.
"여행을 오래 하시네요! 짐이 많으시겠어요."
"호텔에서 세탁하면서 갈아입고 있어요. 아내가 교사라서, 방학 때 장기간 해외여행 다녀요. 딸아이와 호찌민, 무이네 여행했고, 딸은 먼저 귀국했어요."
남자는 해외 출장이 잦은 업종인 듯했다. 그는 딸 자랑을 좀 하더니, 곧 사라졌다. 다랑은 장기 해외여행을 부러워했다.
"여행이 길어지면 피곤하고, 짐이 많아져서 싫어. 짧은 여행 선호해. 무엇보다, 작문할 내용도 비례하거든."
음료를 마시며, 목을 축였다.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후, 다음 목적지인 탕롱 황성으로 향했다.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니, 얼마나 멋질까 기대됐다. 중국, 프랑스, 베트남의 건축 양식을 모두 볼 수 있는 건축물이라고 했다.
그러나, 너무 볼거리가 없어서 실망스럽고 지루했다. 고리타분한 전시들은 기대에 못 미쳤다. 집중해서 관람하려고 했으나, 흥미를 돋울 만한 건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볼 만하고 신기했던 것은 황성이 아니라, 나무를 오르내리며 먹이를 먹는 청설모였다. 반면, 다랑은 이곳을 인상적인 관광지로 손꼽았다.
구글 위키백과를 참고하면, 19세기에 프랑스가 하노이를 지배하며 황성의 건물들이 대거 철거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건물들은 20세기에 거의 모두 철거되었다고 한다. 21세기에 비로소 본격적으로 발굴과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고, 1945년에 일본군이 프랑스군 포로들을 가두어놓는 감옥으로 이곳을 사용했다고 전한다.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관광지마다 길거리 음식이 다양했지만, 매연을 뒤집어쓴 오염된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다. 그중 께오는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호엔키엠 호수에서 께오를 처음 접했을 땐, 먹을까 말까 망설였다. 어린이들이 먹는 간식 같았다.
물엿처럼 생긴 덩어리를 쇠젓가락 한 쌍을 꽂아 여러 번 감으면, 차차 하얗게 색이 변하며 꿀타래로 변한다. 견과류를 조금 뿌린 꿀타래를 원형의 과자 한 쌍으로 납작하게 누르면, 께오가 완성된다. 처음엔 판매자가 뚱뚱한 여자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초등학생쯤 돼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는 짧은 머리칼을 자줏빛으로 염색했는데, 개성 있었다. 다랑이 그에게 칭찬했다.
"Your hair style is nice!"
곁에서 나 또한 거들며, 함께 웃었다. 께오를 한입 깨물었다. 전병 같은 과자의 바삭함과 꿀 같은 내용물은 달콤했다. 고소한 경험이었다.
어제 실패한 짱티엔 아이스크림에 재도전했다. 늦은 오후였는데, 대기줄은 길지 않았다. 다들 관광하느라 식사하기엔 이른 시간이었다. 녹두맛을 골랐다. 엄청 맛있거나 놀랄 만한 맛은 아니었다. 그저, 유명한 아이스크림 먹기에 성공했다는 만족감을 느꼈다.
"5호점이 제일 가까워. 현재 영업 중이래. 거기서 저녁 먹을까?"
다랑이 제안했다. 여태 맛집을 내리 실패했기 때문에, 지쳤다. 아까 탕롱 황성에서 많이 걸어서, 굉장히 피곤했다.
"어, 가까운 데로 가자. 배고프다!"
부지런히 걸어 식당에 도착했다. 가족 단위로 관광온 듯 보이는 중국인들이 옆 좌석에 앉았다. 가장 젊은 여자가 영어로 직원에게 음식을 주문했다. 그녀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차림표를 살펴보니, 공심채가 있었다. 하지만, 풀때기에 돈을 쓰는 건 아까워서 주문하지 않았다.
'과연, 이걸 주문하는 사람이 있을까?'
"반세오 먹을까?"
다랑이 물었다.
"음, 별로. 반세오는 이미 호찌민에서도 먹어 봐서."
다랑은 새우와 파인애플 볶음밥을 골랐다.
"밥은 하나 있어야 할 것 같아서."
하노이 전통 구운 생선 요리와 바나나 꽃 샐러드를 선택했다. 직원에게 생선 이름을 물으니, chaca라고 설명했다. 아마 가물치인 것 같았다.
"생선은 좀 별로야. 민물고기인지, 바다 생선인지 원산지가 의심스러워서."
다랑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눈치였다.
별 고민 없이 생선을 집어 입에 넣었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생선을 면과 야채를 곁들여 싸 먹었다.
평소 바나나 꽃을 눈여겨본 적이 없기에 생소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바나나 꽃은 붉은색이었는데, 샐러드로 나온 것은 갈색에 가까웠다.
음식들 중 생선 요리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특별히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하노이 전통 음식에 대해 새롭게 알게 돼서 기뻤다. 근무하는 직원들은 단신의 젊은 남자들이었는데, 신속하고 친절했다. 식사 도중 다가와 식사가 만족스러운지 안부를 물었다. 관심을 가져주고 물어봐줘서, 고마웠다. 식대가 비교적 저렴한 편은 아니었으나, 전반적으로 신선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