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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둘이서 떠난 하노이(16)

마지막 밤

by 슈히

식당에 들어서니, 안경 쓴 여직원이 우리를 친절히 맞이했다. 먼저 온 손님들이 무얼 먹고 있나 식탁을 흘낏 보니, 누런 음식이 있었다.

'뭐지? 혹시 생선 튀김인가?'

질문하진 않고, 막연히 생각했다. 차림표를 보니, 생소한 단어가 있어서 구미가 당겼다. Dracontomelon Juice를 주문했다. 드라콘토멜론은 낯선 재료였다. 다른 음료들은 레몬이나 수박 등 친숙한 것들이어서, 굳이 시도하지 않았다. 다랑은 늘 맥주를 주문했다.


드라콘토멜론(베트남어: chi sấu)은 아나카르디아과에 속하는 꽃 피는 식물의 속으로 주로 남동 아시아와 태평양 섬에서 자란다. 과일은 현지 요리, 특히 신맛을 내는 재료로 사용될 수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Dracontomelon)



샐러드와 생선 분짜, 그리고 그토록 원하던 반쎄오를 골랐다. 여직원은 주문을 확인하며 반쎄오를 팬 케이크라고 불렀다.

"여기선 반쎄오를 단순히 팬 케이크라고 부르는구나."

다랑이 말했다.

반쎄오가 나오자, 여직원이 먹는 방법을 설명했다. 방법은 이미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신경 써주는 그 마음이 좋아서 그녀에게 고맙다고 명랑하게 인사했다. 그러자, 여직원이 생긋 웃었다.

물에 담그지 않아도 부드러운 라이스페이퍼를 보고, 놀랐다.

'무슨 원리지? 편리하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

한편, 중국인 부부 손님들이 유아를 유모차에 데리고 우리 옆 좌석에 앉았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식사를 주문하지 않았다. 살펴보니, 부부는 고작 음료만 홀짝이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들은? 왜 주문 안 하고 저러고 있어?"

내가 묻자, 다랑이 설명했다.

"남자가 깐깐해. 아까 대화 들으니까, 중국어로 된 차림표를 점원한테 요구하던데. 아마 밥 안 먹고, 그냥 갈 것 같아."

"아, 그래? 저런...... 부인이 피곤하겠네.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은데."

아니나 다를까, 다랑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들은 결국 자리를 떴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배를 두드리며 거리를 걸었다. 기념품 및 선물용으로 살 만한 게 어디 없나 눈에 불을 켜고 두리번거렸다.

"북적대는 하노이, 오늘이 드디어 마지막이구나!"

호엔 키엠 호수 근처 상점을 지나는데, 아이스크림 광고를 발견했다.

"어, 저거 녹손 사원 같은데? 와, 우체국 모양도 있어! 의미 있고, 인상적인 아이스크림이네."

신기한 걸 발견해서 신났다. 기쁜 마음으로 다랑에게 제안했다.

노란색 우체국은 연유맛, 흰색 녹손 사원은 코코넛맛이었다.

"다른 모양은 더 없나? 상품적 가치가 충분하다!"

옆 상점을 기웃거렸다. 관광지를 상품화한 아이스크림이 더 있었다. 녹색 거북탑은 녹두맛, 검은색 탕롱 사원은 초코맛이었다. 빨간색도 있었는데, 딸기맛일 것 같아서 일부러 안 먹었다. 게다가, 불어난 체중이 염려스러웠다.

'휴! 이 살들을 언제, 어떻게 뺀담......'

호기심을 부채질한 음식은 또 있었다. 라이스페이퍼로 감은 음식이었는데, 적색이었다.

"매울까? 궁금하다. 아니면, 단순히 색만 붉은 걸까?"

"먹고 싶으면, 주문하면 되잖아."

"지금 배 부른데, 또 먹으면 살찌잖아. 과식하기 싫어서......"

"포장해서, 나중에 먹어도 되는데?"

"......"

"북쪽에서는 넴, 남쪽에서는 짜조라고 부르네. 같은 음식인데 명칭이 달라. 여긴 북쪽이니, 넴이라고 부르겠다."

다랑이 설명했다.



짜조라는 이름은 본래 자본주의가 유행했던 옛 남베트남 지역에서 불리던 이름으로, 사회주의 성향인 옛 북베트남에서는 ‘넴잔(Nem rán)’ 또는 ‘넴(Nem)’이라고 부른다.(https://namu.wiki/w/%EC%A7%9C%EC%A1%B0)



"저건 튀긴 음식 아니잖아. 다른 이름일 것 같은데."

"그럼, 고이 꾸온(월남쌈)인가?"

다랑이 이것저것 검색했다.

음식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먹지 않았다. 달걀로 만든 거라 예상되는 노란 음식도 볼 때마다 먹고 싶었지만, 늘 배가 부른 상태여서 먹을 기회가 없었다. 거리에 앉아 식사하는 사람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주저주저 발걸음을 돌렸다.

"호랑이 연고 사야 돼. 동생이 부탁했거든."

다랑이 말했다.

"그래, 어서 사. 공항에서 사는 것보단, 여기가 아마 저렴하겠지."

다랑은 이곳저곳에서 가격을 비교를 하더니, 곧 연고를 구매했다.

아오자이를 사고 싶어서, 상점 몇 곳을 둘러봤다. 마음에 드는 색의 옷을 찾았으나, 너무 컸다. 가격은 60만 동(약 3만 원)이었다.

'55나 66이면 적당한데, 77이네......'

입어 보라는 점원의 권유에 이끌려, 탈의실에서 아오자이를 입었다.

"잘 어울리네! 베트남 사람인 줄 알겠다."

다랑이 칭찬했다. 오래 망설이지 않고, 옷을 구매했다. 아오자이를 입고 다녀도, 사람들은 영어로 내게 말을 건넸다. 외국인 티가 역력했나 보다.

숙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시티 투어 버스를 타러 일찌감치 나갔다. 저녁 8시에 탑승 예정이었고, 마지막 날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정차 중인 버스가 없어서, 언제 오나 조바심이 났다. 여직원이 8시에 출발할 거라고 한국어로 설명했는데, 그녀가 구사한 한국어가 흠잡을 데 없어서 내심 놀랐다.

"오, 한국어 단어만 나열한 게 아니라 완벽한 한국어 문장이었어!"

드디어 버스에 탑승했다. 관계자가 우리에게 이어폰을 나눠줬다. 이어폰을 좌석의 구멍에 연결하자, 다양한 언어를 선택할 수 있었다. 한국어 음성으로 하노이 명소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편리하고 유익했다. 버스가 어느 지점을 통과하느냐에 따라 자동으로 음성이 흘러나왔는데, 버스가 빠르게 주행하면 음성은 자동으로 끊겼다. 한참 집중해서 흥미롭게 설명을 듣고 있는데, 설명이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베트남인들은 불교를 많이 믿는군. 그래서 하노이 곳곳에 연꽃 문양이 많았구나!'

우리가 이미 갔던 명소들을 버스를 타고 지나갔다. 낮에 봤던 레닌 공원은 어둠이 깔리자, 장난감 자동차의 불빛이 현란했다. 오직 하노이에서만 볼 수 있었던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광란의 밤이 따로 없군."

아까 다랑이 가자고 말했으나, 들리지 못했던 깃발탑 공원도 버스를 타고 지나쳤다. 베트남 주석궁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촬영했다. 바딘 광장과 국회의사당의 야경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버스의 종착지는 오페라 하우스였다. 관광객들이 우르르 하차했다.

"탑승지까지 우리를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어?"

영문을 몰라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황당했다. 그러자, 관계자가 다가와 내리라는 시늉을 했다.

"아, 20시 버스가 막차라서 그런가 봐. 다음 버스가 없으니까, 우린 걸어서 숙소로 돌아가야지."

다랑이 설명했다. 피곤해서 걷기 싫었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으니 하차했다.

"여기가 프랑스 식민 시대 문화 발전의 증거라는 오페라 하우스로군. 무슨 공연하나?"

전광판이 번쩍번쩍거렸다. 서서 관람하는 관객들이 많았고, 몇 안 되는 좌석들은 만석이었다. 군인들과 무용수들의 합동 공연인 모양이었다. 군인들은 특별한 동작 없이 무리를 지어 서있었고, 무용수들은 무대 위에서 능숙하고 자유롭게 춤을 췄다. 식민지 시대의 베트남인들의 애국심과 투쟁 의지를 나타내려는 것 같았다. 베트남의 역사를 알면, 동질감이 느껴져서 마음이 쓰였다.

공연을 끝까지 관람하진 않았으나, 차차 멀어지며 먼발치에서 뒤돌아 바라봤다. 하노이 여행을 마치며 본 웅장한 무대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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