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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떠난 하노이(15)

남은 소소한 일정들

by 슈히 Feb 20. 2025

  문묘 출구에는 직원이 한 명 앉아 있었다. 출구로 몰래 입장하는 관광객을 저지하기 위해 그는 그곳에서 감시 중이었다. 출구 인근에는 공터가 있었는데, 주차된 차들이 빼곡했다. 방문객이 워낙 많아서, 출차하는 것도 매우 번잡했다. 혹여 접촉 사고라도 날까 싶어 잔뜩 경계하며, 문묘를 빠져나왔다.

  어느 가정집에 걸린 빨간색 양탄자가 있길래, 예뻐서 사진으로 남겼다. 칙칙한 하늘 아래 건물들은 부식 중이었는데, 화려한 모직물이 그중 단연 돋보였다. 

  "배고파! 식당은 얼마나 가야 해? 여기서 가까워?"

  다랑에게 칭얼댔다.

  "원래 가려고 했던 맛집은 좀 멀어. 가장 가까운 곳 갈까? 양식이야."

  "그래, 가까운 게 최고지! 대기줄 생기기 전에 어서 가자."

  오전 11시 30분 남짓 되었을까, 식당에 도착했다. 다행히 대기 손님은 없었고, 가족 단위로 온 듯 짐작되는 손님들이 넓은 식탁에 모여 앉아 있었다. 이어서, 20대로 보이는 여자 손님 2명이 들어와 앉았다.

  신속히 음식 주문을 마치고, 화장실에 들렀다. 변기 옆에 위치한 큰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당황했다. 환기 중인 듯 보였다. 누가 혹시라도 볼세라, 창문을 닫았다.

    식전빵과 수프, 과자들이 나왔다. 새우와 시리얼이 샐러드도 먹었다. 새우를 좋아해서 선택한 음식인데, 소량이어서 아쉬웠다. Fruit Ninja라는 개성적인 이름에 끌려서, 샐러드를 하나 더 주문했다. 열대 과일과 베이컨이 풍성해서 마음에 들었다. 

  다랑은 웨지 감자와 버섯, 그리고 소스가 곁들여진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남자 직원이 치즈 덩어리를 들고 오더니, 칼로 치즈를 긁어서 떨어뜨렸다. 먹음직스러운 누런 치즈가 웨지 감자 위로 쏟아졌다.

  "이거 먹으려고 스테이크 시켰어. 라클렛 치즈야. 먹어 봐." 

  치즈 범벅 웨지 감자를 포크로 찍었다. 보기만 해도 살찌는 기분이었다. 기름진 음식을 먹으면 불어날 체중이 걱정됐다. 다랑과 마주 앉아 식사하는 그 순간만은 한편으로 행복했다.

  여자 2명은 한참 차림표를 보더니, 주문하지 않고 나가버렸다.

  '여기 음식 가격이 비싸서, 그냥 다른 식당에 갔나?'

몇 분 후, 그들은 친구 1명을 더 데려왔다. 여자 셋은 와인을 주문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나갔다. 우리가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그들은 식사를 시작했다.

  '아까 왜 그냥 나갔지? 이상하네.'

  식당 출입구 벽에는 수컷 멧돼지 한 마리가 뛰어가는 모습의 네온사인이 있었다.

  "이거 딱 너다. 수컷 멧돼지. 이 앞에 서봐, 사진 찍게."

내가 말하자, 다랑이 귀엽게 자세를 취했다.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가파른 경사의 계단을 내려왔다. 레닌 공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푸른 단체복을 입은 사람들이 승합차에 타는 모습을 발견했다.

  "어, 아까 문묘에서 봤던 사람들이다! 이제 행사 끝났나 봐."

  길을 걸으며, 으리으리한 저택이 있길래 멋있어서 대문 앞에서 기념촬영했다.

  "여기는 일반 가정집인가? 건물이 고급스럽다!"

내가 묻자, 다랑이 대답했다.

  "회사 같은데? 어떤 사람이 안에서 누나를 쳐다보고 있어."

  "아, 그래? 그럼, 어서 사라지도록 하자."

혹여나 사진값 내라고 할까 봐, 황급히 자리를 떴다.

  레닌 공원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다. 촬영하려고 보니, 어린이가 동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위험해 보였다.

  "부모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우리나라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아이가 내려올 때까지 한참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었다.

  레닌 공원은 장난감 자동차를 탄 아이들로 북적였다.

  "우와, 쟤는 드리프트를 하네!"

다랑이 탄성을 질렀다. 이동수단에 별 관심이 없어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레진 공원 맞은편에 공원 하나가 더 있었으나, 피곤하고 지쳐서 가고 싶지 않았다. 다랑은 택시를 호출했다. 택시가 오길 기다리며, 아무 데나 걸터앉았다. 우리들 옆에는 서양인 관광객들 남녀가 앉아 있었는데, 그중 남자는 관광책을 들고 있었다.

  '볼거리 없는 하노이를 책으로 연구하는 중이로군.'

  "Hello!"

  초등학생 고학년쯤 돼 보이는 남자애가 장난감 자동차를 탄 채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와 인사했다. 그 의도가 의심스러워서, 잠시 긴장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인사를 한 것뿐이었다. 

  택시를 타고 달렸다. 이틀간 발 관리를 받은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전신 관리를 받았다. 다랑의 말에 의하면, 추천인들의 평점이 높은 곳이라고 했다.

  "누나, 허리 아픈데 안마받아도 괜찮을까?"

  "몰라, 일단 해보고...... 오늘이 하노이에서의 마지막 날이잖아. 전신 안마받고 피로를 날려 버려야지."  

  여자 안마사가 천천히 안마를 시작했다. 맨살에 닿는 부드러운 손길이 능숙했다. 요통은 여전했지만, 안마를 받는 동안 큰 통증은 없었다. 다행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단잠에 빠졌다. 깨어 보니, 어느덧 안마는 끝난 상태였다.

  "아, 잘 잤다! 안마 어땠어?"

  "나도 잠들었어. 기억 안 나." 

  "하하, 그래. 자고 일어났더니, 배고프다. 이제 저녁 먹으러 가자!"

  "어디 갈 거야?"

  어제 들렀지만, 아무것도 먹지 못한 맥주 거리로 향했다. 17시경이었고, 저녁 식사하기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점심에 양식 먹었으니, 이제 현지식을 먹어야겠지? 현지식 먹을 만한 괜찮은 곳이 어디 없나?"

  "누나, 갔던 데 또 가는 건 싫지?"

  "어, 새로운 곳 가고 싶은데. 안 가본 곳! 마지막 현지식이니, 반쎄오도 꼭 먹어야 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무작정 걸었다. 영업 중인 곳이 별로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 우연히, VIET TRADITIONAL COUISINE이라는 간판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출입구 앞에 놓인 차림표를 봤다.

  "어, 반쎄오 있어! 여기다! 드디어 찾았어(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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