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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떠난 하노이(14)

홍강의 기차와 하노이 문묘

by 슈히 Feb 19. 2025

  기차역 실내 화장실에 가는 길에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 보였다. 한국어가 들렸다. 단체 관광 온 어르신들이었다. 인솔자로 보이는 이가 깃발을 들자, 손님들은 그를 좇아 우르르 몰려다녔다.

  '하노이는 자유 여행으로 와도 충분한데, 단체로 왔구나. 볼 게 없는데, 왜 왔담......'

  저 멀리서 기차가 서서히 다가왔다. 다랑은 이때를 놓칠세라 영상 촬영에 몰입했다.

  '기차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저렇게 열심히인 거람......'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어제 본 기차랑 같은 기차네! 엄청 천천히 온다. 다리가 무너질까 봐, 일부러 느리게 오는 건가? 와, 실내에 오토바이를 잔뜩 실었어! 들고 기차 탈 수 있나 봐! 어, 고양이도 태웠어!"

다랑이 소리쳤다.

  '유심히도 봤네......'

별 관심이 없어서, 사실 아무것도 못 봤다.

  "이번 역은 홍리버, 홍리버입니다."

  지하철 안내 음성 흉내를 내자, 다랑이 지적했다.

  "왜 한국어랑 영어랑 짬뽕이야?"

  "이야, 똑똑하다! 이번 역은 홍강, 홍강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This station is Hong River. The door is on your right."

  기차가 떠난 후에도, 관광객들이 한참 빈 철길을 에워쌌다.

  "저기 가서 서 봐."

다랑이 시키는 대로 철길 위에 섰다. 그가 셔터를 연신 눌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 같아서 다소 민망했지만, 마스크를 쓴 상태라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기차역 바로 옆에 위치한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사장인 듯 보이는 안경 쓴 남자가 잠시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성실해 보였다. 손님 응대하는 태도와 표정도 친절했다. 음료를 주문했다. 다랑은 코코넛 밀크 커피를 골랐고, 나는 꿀, 계피, 유자가 든 온음료를 마셨다. 아까 지나친 카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저렴한 값이었다.

  홍강도 안 보이고, 롱비엔 대교도 일부만 보일 뿐이었지만 한가롭게 차를 마시며 카페에 앉아 있는 상황이 운치 있었다. 나름 주어진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데, 모녀가 귀찮게 굴었다.

  "그 자리에서 사진 찍어도 되나요?"

딸과 노모가 아까부터 사진 촬영하느라 부산했다. 본인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만 찍는 게 아니라, 우리가 앉은 곳까지 와서 창가를 내달라는 뜻이었다. 기분 상해서, 얼른 일어나 버렸다.

  하노이 문묘에 가기 위해 그랩 택시를 불렀고, 호출한 택시가 올 때까지 카페 밖에 서서 기다렸다. 아오자이를 입은 여자와 남자가 계단을 올라왔는데, 남자가 여자의 모습을 열심히 촬영했다. 연인인 듯 보였다. 여자의 외모는 특별히 매력이 있거나 미인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다정해 보였다. 

  문묘로 이동하던 중, 그랩 오토바이를 여러 대 발견했다. 운전자들은 초록색 헬멧을 균일하게 착용했다.

  "그랩은 택시보다 오토바이가 훨씬 저렴해. 우리도 오토바이 타볼까?"

다랑이 넌지시 제안했다. 그는 오토바이를 좋아하고, 늘 타고 싶어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우린 안전하게 택시 타자."

  가뜩이나 작은 오토바이인데, 운전자는 짐을 잔뜩 안고 주행 중이었다. 심지어, 4명이 탑승한 오토바이도 종종 지나쳤다.

  '으으, 보기만 해도 위험하다! 왜 탑승 제한을 두지 않을까? 3명도 과한데, 4명은 너무한 거 아닌가?'

불안한 마음으로 오토바이를 지켜봤다. 우리가 탄 택시는 속력을 내지 못했다. 문묘에 닿기도 전부터 인파에 휩쓸려 전진하지 못했다. 택시 기사가 여기서 내려야겠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하차 후 문묘까지 걸었다.



  공자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070년에 세워졌으며, 1076년에는 베트남 최초의 대학으로 유학자를 양성하였다. 경내는 벽을 경계로 모두 다섯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가운데 문은 왕만이 출입했고, 좌우측 출입로는 일반인들이 출입했다. 경내 좌우에는 거북 머리 대좌를 한 82개의 진사제명비가 있고, 여기에는 1442년~1787년간 과거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특히 정문에서 들어가면 1805년에 건축된 규문각(Khuê Văn Các, 奎文閣)이 있는데 옛날에 유학자들이 규문각에 올라가 시문 창작, 담론 또는 향유 활동을 하였는데 현재 규문각은 1000여 년의 문화 역사를 담겨있는 하노이시의 상징이며 베트남 사람의 호학정신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B%AC%B8%EB%AC%98_(%ED%95%98%EB%85%B8%EC%9D%B4))



  문묘 주변은 그야말로 장사꾼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호황이었다. 노란색 음식의 맛이 궁금했지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매연이 잔뜩 묻은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아서였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줄을 섰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노이에 문화 시설이 너무 없어서, 인구가 수준 이상으로 과하게 집중되는 것 같았다. 문묘의 모습은 마치 어린이날에 방문한 놀이공원과 근사했다. 쉬지 않고 파도가 밀려오듯이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밀려왔다.

  '아, 정신없어! 어서 여길 빠져나가고 싶다!'

  뱀 풍선 하나가 나무에 걸려 고정돼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동병상련의 감정이 들었다.

  '너도 지금 나랑 같은 심정이지?'

  문묘 내부에서는 의식이 진행 중이었다.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단 보우를 연주하는 악공도 앉아 있었다. 낯익은 악기를 발견해서, 반가웠다. 제사상에는 오리온 초코파이가 놓여 있었다. 이것 또한 반가웠다.

  갑갑해서, 문묘를 서둘러 떠났다. 다소 이른 감이 있었지만, 점심 식사를 빨리 하기로 결정했다. 다랑이 검색한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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