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7시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한 시간 전에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했는데.. 전날 밤 아이와 침대에서 뒹굴뒹굴 게으름을 피우며 '아침에 해야지.' 하고 미뤄 놓은 집안일들까지 떠오르자 짜증이 솟구쳤다. 어질러진 집안 상태에 눈을 질끈 감기로 하고 나는 거지꼴로 출근을 하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이의 등원 준비를 시작했다. 눈 주위에 엉겨 붙은 눈곱을 샅샅이 떼주고 빛의 속도로 이를 닦아 준 후 화장실에서 나오려는데 아이가 뒷발질로 슬리퍼를 벗어던졌다. 보통 때도 하는 행동이라 그러려니 하는 찰나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슬리퍼 한 짝이 변기에 골인했다. '하..... 의도한 게 아니니 나무라지 말자. 깊게 호흡하자..' 참을성을 끌어내며 억지 미소를 띤 채 최대한 차분히 설명했다. "아들, 슬리퍼는 얌전히 벗어야지. 엄마 너무 늦었어. 좀 도와줘.." 언젠가 육아 프로그램에서 한 전문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이한테 빌거나 부탁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아요. 특히 본인이 행동의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해야지 엄마를 위해 무언가를 해달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당시 참 맞는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으나 지각을 앞둔 엄마에게는 실천하기 쉽지 않은 우아한 행위임을 깨달았다. 나무젓가락으로 들어 올린 슬리퍼를 재빨리 닦아주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다. 아침에 오믈렛을 해주려고 야침 차게 준비한 재료들을 눈물로 외면하고 식빵과 우유를 꺼냈다. 버터에 살짝 구워주면 좋아할 텐데 팬을 달구는 것조차 가당치 않은 시간에 괜한 미련은 버리기로 했다. 살짝 데워 잼을 바르고 그릇에 우유와 시리얼을 부었다. 얌전히 밥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 앞에 대령하니 미식가 아들은 어김없이 불만을 터뜨렸다. "빵이 너무 축축한 거 아니야. 바삭바삭해야지." 살짝 눈을 흘겼다가 누가 이렇게 키웠겠나 싶어 또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했다. "빵은 이렇게도 먹고 저렇게도 먹는 거야." 성의 없는 답을 전하고 나도 좀 씻어볼까 하며 돌아서는데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덩그렁 소리와 함께 아이가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엄마.." 하고 불렀다. 1초라도 빨리 돌아보아야 처리할 시간도 단축될 수 있으련만 고객을 돌려야 하는 마음이 엄청난 무게로 짓누르는 듯 무거웠다. 대참사의 현장에는 쏟아진 우유 위로 알알이 흩어진 시리얼, 엎어진 채 균형을 잡지 못하고 데굴거리고 있는 그릇이 놓여있었다. 심지어 초코맛 시리얼의 엄청난 효과로 새까맣게 변해 버린 우유가 테이블 모서리를 죽 타고 내려와 아이보리 빛 카펫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이는 본능적으로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전날 밤 읽다가 테이블 위에 놓아둔 나의 업무 자료를 한 팔로 높이 들고 있었다. "엄마 책 내가 구했지~~" 소방관이 되어 무언가를 구하는 꿈에 빠져있는 아들은 이 순간 한 가지를 구해야 한다면 엄마의 자료다 라고 판단한 듯했다. 상황을 목격한 나는 제일 먼저 정시 출근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것만 포기한다면 굳이 급한 마음에 언성을 높여 아침부터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할 일도 없을 테니. 맥없이 힘이 풀려버린 팔다리에 에너지를 실어 보는 와중 아이는 쪼르르 달려가 물티슈를 가져다주었다. 5살에 사춘기를 맞은 건지 이제부터 뽀뽀는 안 하고 사랑만 해줄 거라더니 나의 양쪽 볼에 사정없이 뽀뽀도 퍼부었다. "으이그~ 요 강아지!" 감격스러운 아들의 뽀뽀를 얻고 평소보다 30분 가까이 늦게 회사 앞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옆자리에 놓아둔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나왔다. 웬일인지 한 번에 지하까지 내려와 준 엘리베이터 덕에 빠르게 1층 게이트 앞에 도착해 아이디카드를 찍었다. 순간 차가운 액체가 손등을 타고 흐르더니 순식간에 재킷, 바지, 가죽 가방을 거쳐 로비 바닥 위를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내 입에서 악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지나가던 직원 한 분이 "어맛. 괜찮으세요?" 하며 다가왔다. 괜찮다는 공허한 말과 함께 감사를 표하고 비로소 찬찬히 들여다보니, 차 안에서 마시다 급하게 들고 나온 커피의 플라스틱 병뚜껑이 어설프게 잠겨 있었고 병 입구와 뚜껑 사이로 커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차라리 블랙을 가지고 올걸..' 아침을 거르고 나오며 허기를 달래 보겠다고 집어 든 라테는 분출되는 순간부터 진한 우유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젠장, 오늘 운이 왜 이래..' 잘할 수 있는 심한 욕이 있었다면 튀어나오고 말았을 것이다.
운을 궁금해하고 따지는 것은 최근 나타난 버릇이다. 이직 후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이 겹쳐지며 올 한 해 나의 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 무언가 나를 지배하는 기운이라는 것이 있다면 제대로 알고 그냥 따르고픈 약한 마음이 들었다. 지인들에게 '극복의 아이콘'이라 불렸던 나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반전을 일으키는 것에 성공 확률이 높은 편이었다. 과정은 늘 고달프지만 결말은 비교적 성공적인 삶. 그 순진한 확신으로 마지막에 주어지는 달달한 결실을 믿고 과정상의 고통을 감내했다. 포기도 있을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아름다운 마지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미련한 끈기가 결국 나쁘지 않은 결과들을 만들어 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올해는 달랐다. 이쯤 되면 돌파구를 찾아야 하고 극복의 길이 열려야 하는데,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의 모든 구조와 환경, 상황, 미션들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르는 길을 막고 있는 듯했다. 막막했고, 가끔은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을 느꼈다. 일할 기회를 번번이 차단당하는 일중독자가 처참히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던 동료가 『운의 알고리즘』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평소 '운'이라는 것에 맡기기엔 나의 노력이 지닌 가치가 너무 폄하당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나날이 무력해지는 상황 속에서 차라리 누군가 "지금의 문제는 너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풀 수가 없어."라고 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떤 이론에라도 의지하고 싶었던 건지 책을 읽고 나서 현재 나에게 작용하고 있는 부정적 기운에 대해 강한 믿음이 생겨버렸다. 무엇보다 의지로써 어떤 변화를 꾀하기 전 Go냐 Stop이냐 외에 Wait이라는 옵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내용에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래. 기다려 보자. 좋은 운이 올 때까지..' 이후 입버릇처럼 '운'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우선 올해를 '나의 운 없는 해'로 단정하고 이루어지지 않을 목표들을 설정하지 않기로 했다. '운 없는 해' 안에는 '운 없는 달', '운 없는 날'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길을 걷다 보도블록 틈 사이로 구두 굽이 박혀도 "나 요새 운이 없어서 그래." 하면 그만이었다. 운이 없어 생긴 일들은 빠르게 쌓여갔고 허공에 대고 탓을 하다 보니 그보다 마음 편한 것도 없었다. 그렇게 아침부터 일어난 슬리퍼, 우유, 커피 사건 등등을 또 하루의 '운 없는 날' 안에 휘리릭 집어넣어 정리하며 일과를 마쳐가고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아빠와 함께 말끔히 씻고 더욱 뽀얘진 아이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아침의 사건을 기억하는 듯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연신 애교를 부렸다. 간식을 준비해 식탁에 앉혀 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가 처음 꺼낸 말이 조금 의외였다. "엄마. 빨리 내일이 돼서 유치원 가면 좋겠어." "어..? 너 유치원 가는 거 그렇게 좋아? 어린이집 다닐 때는 맨날 엄마랑 안 떨어지려고 울었잖아." "아니야~ 나 이00 선생님도 좋고 친구도 엄청 많고 오늘은 요리도 했단 말이야." "아.. 그래? 엄마 그 말 들으니 너무 기쁘다..." 나는 정말 안심했고 고마웠고 기뻤다. 이전 기관에 다닐 때는 더 어려서였는지 적응이 어려운 듯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어울려 놀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날에도 담임 선생님에게 특별히 부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단체 생활에 문제가 있으면 꼭 말씀해 주세요." 입학 후에도 한동안 아이를 살폈다. 등원 길 발걸음까지 촉을 세워 관찰했다. 그런데 아이는 마치 대규모 기관이 체질이었다는 듯 빠른 속도로 적응을 하고 생전 공유해 주지 않았던 친구들과의 일과를 조잘조잘 이야기해 주기 시작했다. 같이 장을 보러 가는 길엔 늘 동네가 떠나가라 원가를 부르며 본인의 소속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가장 큰 숙제를 해결한 듯 안도감이 들었고 비슷한 시기에 이직해 힘들어했던 나의 상황에 빗대어 '나이 이만큼 먹은 나보다 네가 훨씬 낫네.'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더 이상 나의 걱정거리가 아닌 일이 되자 아이가 잘 안착해 준 그 고마운 순간도 빠르게 잊혀 갔다.
얼마 지나지도 않은 올해 초로 시간을 돌려 새로운 한 해를 계획했던 나를 떠올려 보니, 당시 가장 큰 바람은 단연 아이의 원활한 유치원 생활이었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준다면 일과 육아에 시간을 나누어 쓸 수밖에 없는 나에게 더없이 다행인 일이었다. 생각해 보면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효자 소리를 들어왔다. "잘 먹는 아이 키우는 거 진짜 엄마 복이야.", " 너네 아들 잔병도 없잖아. 그게 얼마나 큰 복인 줄 알아?", "그 나이에는 변비 한 번씩 앓는데, 00이는 어쩜 그리 속 썩이는 게 없니?" 30대 후반 유산을 겪은 후 나에게 와주었을 때부터 뭐든 잘 먹고, 어디서도 잘 자고, 흔한 감기조차 잘 걸리지 않는 어린이로 성장한 지금까지, 아이는 늘 나를 '복 많은 엄마'로 만들어 주었다. 나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될 수는 없는 것들까지 스스로 잘 갖춰가며 무럭무럭 성장해 주었다. 그런 복덩이를 곁에 둘만큼 잘 살았는가를 묻는다면 당당히 그렇다고 답할 수도 없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우리 아이의 엄마가 된 것은 분명 엄청난 행운이었다.
유치원 이야기에 눈이 반짝거리는 아이를 보며 운 없는 올해를 운운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아이는 어느새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 하나를 해결해 주었지만, 그 감사함을 온전히 느끼지도 못한 채 스스로 만들어 놓은 '운 없는 나날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 아이에게 "너 그러다 아빠처럼 배 나온다.."라며 쓸데없는 걱정을 앞세웠고, "우리 아기 쑥쑥 커버리니 아쉽네."라는 철없는 소리를 해댔다. 회사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집에서도 얼굴을 찌푸렸고 아이의 재롱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나의 인생에 어느 한 편을 늘 기쁨으로 채워주고 있는 아이가 있음을 더없는 행운으로 여길 줄 모르고 함부로 나에게 주어진 운에 불만을 터뜨렸다.
요거트를 야무지게 떠먹고 있는 아이의 머리에 살포시 손을 얹으니 아이는 영락없이 '무서운 형아'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나 뽀뽀 안 해. 사랑만 할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래. 이렇게 다섯 살 형아가 될 때까지 넌 참 뭐든 알아서 잘해주었네. 매일 나를 울게도, 웃게도 해주며 고요했던 내 삶에 엄청난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어떤 부정적 자극에도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힘을 주었네. 앞으로 그 무엇이 내 삶을 고달프게 하든 네가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내 곁에 있는 한 함부로 불운을 이야기하지 않을게. 복 받은 엄마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