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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빈한 Jul 22. 2023

성범죄에서 무죄가 나오면, 상대방에게 무고죄가 인정될까

형사사건에서 성범죄와 무고죄의 관계를 중심으로

  2013년 6월 성범죄에서 친고죄 규정이 폐지되었다. 그로부터 10년 동안 성범죄로 처벌받는 사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법원이나 수사기관도 사회적 인식변화에 맞춰 성범죄를 엄벌하고 그 요건들도 비교적 폭넓게 해석·적용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는 신상정보등록 및 공개·고지, 취업제한, 전자장치부착명령 등과 같은 강력한 제재수단을 부과받기도 한다. 성범죄 사건으로 비교적 경미한 벌금형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관련법령에 따라 공무원이나 교육자로서의 지위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성범죄 사건이 늘어나다 보니, 다른 측면에서는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거나 처벌을 받는 경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범죄에서는 주로 '피해자(고소인)의 진술'을 중심으로 수사와 재판이 이루어지게 되는데, 피해자(고소인)의 진술도 사람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이어서, 과거에 발생한 일이 세세하게 기억나지 않거나, 일정 부분 왜곡·과장되는 측면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방 측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을 뒤집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없다면,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비록 소수일지라도 피해자(고소인)의 진술이 CCTV 영상이나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등 객관적인 증거자료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피해자(고소인)의 진술만으로 범죄증명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피고소인은 불송치·무혐의 처분이나 무죄판결을 받게 된다. 더군다나, 피해자(고소인)가 허위사실임을 알고서도 악감정으로 상대방에 대한 허위고소를 하였다면, 피해자(고소인) 무고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의뢰인들 중에서 성범죄 사건으로 불송치·무혐의 또는 무죄판결을 받게 되면, 피해자(고소인)를 무고죄로 고소할 수 있는지 상담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성범죄 사건에서 무죄(무혐의)를 받으면, 상대방에게 무고죄의 죄책을 물을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성범죄와 무고죄는 동전의 양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성범죄와 무고죄는 그 보호법익이나 구성요건이 전혀 다르다. 성범죄는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반면, 무고죄는 국가의 심판기능의 적정한 행사를 주된 보호법익으로 한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무고죄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고소내용의 진실성이 다소 의심스럽다는 수준을 넘어 허위고소로 인해 국가의 심판기능의 행사가 곤란할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성범죄 사건에서 파생되는 무고사건은 다른 일반적인 무고사건과는 그 양상이 다른 측면이 있다. 우리 법원은 성범죄 수사나 재판에서 피해자의 대처 양상이 개별적·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법원은 성범죄 무고사건에서도 피해사실의 진실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소극적 증명만으로 그 피해사실이 객관적 진실에 반하는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개별적·구체적인 사건에서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자가 처하였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여야 한다는 취지로 판시하고 있다(대법원 2019. 7. 11. 선고 2018도2614 판결 등 참조).


  얼마 전 담당했던 사건에서, 의뢰인은 상대방에 대하여 강제추행을 포함한 여러 죄명으로 형사고소를 하였는데, 그중에서 강제추행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오자, 상대방으로부터 무고죄로 고소당하여 제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의뢰인은 상대방과의 사이에 직장동료로서의 친분은 있었지만, 이성으로서의 관계까지는 아니었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내용이 문자메시지나 다른 증거에 일부 배치되는 측면이 있어 제1심에서는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필자는 항소심담당하며, 피해사실의 진실성이 다소 의심스럽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하여 무고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구체적인 근거자료들과 함께 변론하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변론내용을 토대로 숙고한 끝에 제1심 유죄판결을 파기하고 의뢰인에게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다행스럽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수사기관에 피해사실을 호소하였다가 무고혐의를 벗기 위해 고통과 인내의 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의뢰인으로서는 사건의 결과를 떠나서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확대된 사건을 일일이 대처하면서 수년에 걸쳐 힘든 법적 공방을 이어나가야만 하였다. 성범죄 사건들은 당사자들의 사생활문제가 서로 얽혀 있어 사건을 해결함에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고, 필요이상으로 사건이 확대되어 당사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고려하여야 한다. 이를 혼자서 해결하려고 애쓰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법률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최적의 방법으로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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