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소송에 관해 쓰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것도 명예훼손이 되는가 보다.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다가, 명예훼손으로 경찰서까지 다녀왔다는 글을 보았다.
참,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륜 따위를 저지르며 스스로 명예를 바닥에 내팽개친 인간들에게도 ‘명예’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명예라는 걸 핑계 삼아 꼴에 변호사를 선임한다는 게 참 가소롭다.
상간녀는 변호사를 선임했다.
분명 스스로 퇴사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난 소송을 하지 않고 조용히 합의해 주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퇴사하지 않겠다 내게 의사를 전했고, 난 상간소송을 진행시켰다.
결국에는 사내에 퍼진 소문과 유배에 해당하는 부서이동이 있자 그때서야 퇴사를 했다.
본인에게 불이익이 있자 그제야 움직이는 양심의 정도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
가압류할 것조차 없는 형편에 변호사를 선임하고, 본인도 피해자인 척 어떻게든 위자료를 줄이려 발악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구차하다. 하지만 너는 알까? 위자료 감액과 변호사 선임비를 비롯 성공보수를 비교하면 어차피 본인 주머니에서 나갈 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간녀는 스스로 첩이 되길 자처한 여자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시작하기 전 이미 같은 팀원이었고, 육휴를 끝내고 돌아와서 사수, 부사수 관계가 되었기 때문에 아내가 있고 아이도 있다는 걸 너무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내 남편에게 접근했다.
물론 거기에 넘어간 남편도 병신이고.
상간녀는 본인 셀카를 비롯, 몸 사진, 온갖 저질스러운 동영상을 내 남편에게 보냈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저녁시간에도 서슴없이 영상통화를 걸었다. 남편은 들킬까 봐 전전긍긍 새가슴이라 받지도 못할 영상통화를 말이다.
본인 남자 친구가 있는데도, 심지어 남자 친구와 동거 중인데도 본인이 선택하고 본인을 믿어주는 연인을 배신하면서 까지 도리를 어기고 사회적 약속을 무시하는 여자다.
둘의 불륜은 이미 깨진 신뢰로 시작해 내게 들키지 않았더라도 언제든 무너져버릴 모래성이었다.
하지만 상간녀와 헤어지고 온 날, 남편은 마치 나를 원망하는 듯 보였다. 내게 용서를 구할 생각보다는 연인을 잃은 슬픔과 수치심만이 가득해 보였다.
"내가 둘 사이를 갈라놓은 나쁜 여자니?"
"내 아픔은 보이지 않아?"
남편은 끝내 대답이 없었다.
상간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굉장히 많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상간녀는 스스로의 가치를 얼마나 바닥으로 생각하는지, 자신이 가진 온갖 결핍을 여자의 '몸'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채우려 한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었다.
어린 나이에 갖은 시술로 가면을 쓰고 화려한 척 거짓뿐인 관종의 증거, 외로움을 주체 못 해 끊임없이 누군가의 시선을 갈구하는 그 모습은 결국 채워지지 않는 결핍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유부남은 가족보다 나를 더 사랑한다'라는 착각에 빠져 무료로 다리를 벌리는 더러운 짓을 할 만큼 자존감이 바닥인 여자.
술집 여자들도 2차를 나가면 적어도 20만 원은 받는다는데 상간녀는 고작 16만 원짜리, 아니지 쿠폰도 적용해서 14만 얼마짜리 운동화 한 켤레와 아이 아빠가 내 아이에게서 강탈해 간 캐릭터 카드 따위를 받고 무료봉사를 하다시피 했다.
띠동갑보다도 나이가 더 많은 아저씨에게.
글을 쓰면서도 더럽고 역겹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상간녀는 알까? 나는 그녀의 과거,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또한 충분히 알 수 있다.
너는 사람을 잘못 건드려도 한참 잘못 건드렸다.
나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언제까지고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며 울고만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불륜을 알게 된 직후 글을 토해내듯이 써 내려가며 내 감정 역시 글에 묶어 버렸다. 그렇게 현재의 나는 버려진 감정 외에 온전히 "나"라는 소중한 존재만이 남았다.
난 남편에게 자백을 받은 직후 상간녀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피가 거꾸로 솟고 심장이 터질 듯 분노에 차 있었지만 나긋한 목소리로 천천히 욕한 마디 없이 존칭으로 너의 죄의 무게와 앞으로 내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알려줬던 사람이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인생선배로써, 본처로써 상간소송을 통해 깨닫게 해주려 한다.
그 값싼 선택이 네 존재의 가격이었단 걸, 나 말고 누가 알려주겠니.
남편은 본인의 말도 안 되는 억지주장에 내가 팩트와 논리로 응대하니 회피의 용도로 상간녀를 선택했다. 본인보다 더 남자다운 배짱과 자기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내 모습을 한때는 사랑해서 나와 결혼했었지만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의 인정욕구를 다 채워주지 못했으리라.
이 부분에 있어서 난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고마웠고, 정말 내 눈에는 여전히 멋있어 보였었고, 부족한 모습까지도 사랑했던 건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남편은 그 부족한 인정욕구를 부부상담이나 대화가 아닌 제일 비겁한 방식으로 채웠다.
그 선택이 비겁했음을, 그 역시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
그 어떤 이유로도 불륜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줄 수는 없다.
상간녀는 아이 아빠가 모든 재산과 자기 아이를 버리고 본인에게 갈 줄 알았을까?
아니, 이 사람은 애초에 그럴 생각 없었다. 그저 앞뒤 생각 안 하고 자신의 온갖 욕구를 채우기 급급했을 뿐이다. 남편과 내가 그동안 쌓아온 17년의 세월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우리의 연애는 불같이 타올랐었고, 한때는 간절히 보고 싶어 먼 길 마다하지 않았으며, 내 아픔에 진실로 아파하고 기쁨을 두배로 나누던 시간들이 자그마치 17년이다. 그 시간 속에는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희열의 공감대가 있다.
그렇게 둘이 죽고 못 사는 사이면 어째서 서로의 연인에게 이별을 고하지 않고 몰래 숨어서 내 남편을 본인의 차로 불러들였을까? 모두에게 당당하지 못하다는 건 부정한 관계라는 것.
그걸 알면서도 몸소 실행한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몰래 만나야 하고, 숨겨야 하고, 전전긍긍해야 하는 관계는 결국 떳떳하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어느 정도 생각이 정리가 되고 나니 이 불륜남녀들에게 잠시나마 연민이 생기기까지 한다.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들. 아마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평생 본인을 갉아먹으며 살아가겠지.
지금 내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훗날 아이와 추억하기 위해 한 자 한 자 적어 내려가던 지난여름의 여행 에세이를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