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바지 혐오와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
우리가 매일 입는 평범한 옷, ‘바지’가 한때 로마 제국에서 금지되었던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믿기 어렵겠지만,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로마 제국에서 바지 착용이 왜 금지되었는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대중화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고대 로마 시대에서 의복은 단순한 옷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의 상징적 의상인 토가 Toga 는 로마 시민권의 표식이자 자부심의 상징이었습니다. 반면 로마인들은 다른 형태의 옷, 그중 '바지'를 매우 혐오했습니다. 그들이 바지를 혐오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로마인에게 바지는 '야만인'과 ‘본능적인 공격성'의 상징이었습니다. 이는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지방), 게르마니아(오늘날 독일 지방) 등 로마가 정복하려 했던 지역의 소위 '미개한' 부족들이 주로 입던 옷이 바로 바지였기 때문입니다. 이들 부족에게 바지는 추운 기후와 험한 지형에 적응하기 위한 실용적인 의복이었지만, 로마인들에게는 낯설고 미개하며 두려운 외래문화의 상징으로 비쳤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로마 제국이 점점 더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함에 따라 군인들은 새로운 기후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에 맞춰 디자인된 로마 군인의 튜닉 Tunics 은 북부 지역에서는 더 이상 실용적이지 않았고, 특히 전장에서는 바지가 훨씬 유용했습니다. 결국 로마 병사들조차 점차 바지를 착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전통을 지키려는 엘리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제국의 확장은 필연적으로 로마 의복 문화의 변화를 불러왔습니다.
로마 군인들이 바지를 입기 시작한 초기 증거는 로마의 베네치아 광장 Piazza Venezia 인근에 자리한 트라야누스 원주 Colonna Traiana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기념물은 서기 113년 트라야누스 황제 Traianus 가 다키아인 Dacians 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기념해 세운 것으로, 높이 30m, 지름 4m에 이르는 대리석 구조물입니다. 이 기둥의 나선현 부조에는 로마군 장군과 장교들이 토가나 튜닉을 입고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반면, 일반 군인들은 바지를 착용하고 있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원로원은 바지의 확산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바지가 명예로운 로마 시민을 '야만화'시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 상류층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바지는 로마 제국 내부에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결국 서기 397년경, 서로마 제국의 호노리우스 황제 Honorivs 와 동로마 제국의 아르카디우스 황제 Arcadivs 는 공식적으로 바지 착용 금지령을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시간은 흘러 영원할 것 같던 로마 제국 몰락하였고, 로마의 복장 규정 역시 함께 사라졌습니다. 중세에 들어서면서 바지는 과거 로마 지역뿐 아니라 유럽 전역의 남성들의 일반적인 의복으로 자리 잡았으며, 과거의 야만적 이미지도 점차 잊혀졌습니다.
오늘날 바지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즐겨 입는 가장 편한 옷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흔하고 자연스러운 옷이 한때 로마 제국을 뒤흔들었던 문화적 갈등의 중심에 서있었다는 점은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