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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 Feb 18. 2022

왜 하필 지금 시위를 해가지고

지하철 장애인 시위, 아직도.


짜증나. 이 생각뿐이었다. 제시간에 지하철을 못 탈까 봐 허둥지둥 나와 겨우 플랫폼에 들어왔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들은 더 많고 북적거렸다. '아직 지하철이 안 왔나 보다. 탈 수 있겠다.' 하며 안심하던 차였다.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와 통화소리가 들렸다. '아니 지하철이 안 와.. 몇 분째 기다렸는데..' '아 네, 조금 늦을 거 같아서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일이지?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스크 위를 뚫고 올라오는 짜증남이었달까 . 그때 역내에서 장애인 시위로 인해 지하철 운행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순식간에 짜증과 불안이 몰아닥쳤다. 알바(아르바이트)에 늦으면 어떡하지? 지금 지하철을 기다리는 게 좋을까 올라가서 택시를 타는 게 좋을까. 사람들 다 택시 타느라 오히려 더 늦어지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언제 올지도 모를 지하철을 내내 기다릴 순 없었다. 왜 지금 이 시간에 시위를 한다고.. 너무 이기적인 거 아닐까 싶었다. 


수많은 고민을 하던 중 지하철이 정상 운영되고 있다는 방송이 들려왔고 그냥 기다리자 싶었다. 그렇게 탄 지하철은 정말 내가 타본 것 중 가장 붐볐다. '아 사람들이 말하는 압사당하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평소 출퇴근길 사당역과 강남역을 자주 가던 나로서 이런 느낌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숨도 못 쉴 듯한 기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무슨. 이미 충분히 많이 탄 듯한데 다음 역에 도착하면 사람들은 사람들을 밀어내고 꾸역꾸역 타고 있었다. 그 사람들을 이해 못 하는 게 아니다. 이 지하철을 놓치면 또다시 지하철이 언제 올지 모르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게 나의 지하철 시위의 기억이었다. 불편하고 짜증 났다. 어쩜 그리 이기적인가 싶기도 했다. 근데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으로 보던 인터넷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 말과 기사 제목들이 올라왔다. 나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이러는 것일까. 직접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여의도에 안 가고 여길 오냐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시민들을 인질로 삼아서 요구하느냐. 이기적인 거 아니냐. 국회로 가야지 왜 여기 와서 이러냐. 이러면 얻는 게 뭐가 있냐... 순화해서 말한 것이지 이것보다 더 심한 말들이 오고 가는 상황이었다. 이들이 누구이길래 이토록 심한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걸까. 


전국 장애인 차별 철폐연대(전장연)였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1명이 리프트 추락사고로 숨진 뒤부터 2022년 지금까지 투쟁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국회에도 가보고, 장관 집 앞에도 가봤다고 한다. 지하철이라도 타야 기사가 나고 사람들이 알아본다. 나조차 그렇다. 나는 이번 계기로 인해 전장연이라는 곳을 처음 알았다. 


이쯤 되니 그동안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불편해지고 부끄러워졌다. 대한민국에서 2%가 낸다는 종합부동산세에 언론과 국민들이 그렇게 난리에다 티비를 틀기만 하면 나오는데,  대한민국에서 약 19%를 차지하는(보건복지부 기준 2020년도 등록 장애인 2,622,950명. *출처:보건복지부) 장애인 복지는 모두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있었다. 출근 시간에 늦는다고, 사람들에 치여 지하철을 탄다고 불만 소리를 낼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불편해하고 있을 시간에 사람들은 추락하고 끼여서 다치고 죽고 있었다. 


지하철을 비롯한 교통수단에서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2005년 한파로 보일러가 터져 집안에 물이 가득 차는데도 아무것도 못한 채 죽어가던 장애인이 있었다. 2002년 오이도역에서는 똑같은 문제로 또 다른 한 명의 숨길이 꺼졌다.  서울시는 2002년에,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 역사에 승강기 설치, 저상버스 도입 추진 협의회 구성, 리프트 장착 콜택시 100대를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 지켜지지 않았다. 


2022년이다. 자그마치 20년이 흘렀다. 아직도 이들에게 '국회에 가지 뭐 하는 거냐'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우리에겐 불편이 이들에겐 생존이다. 잊지 말자. 우리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투쟁에서 나온 것임을. 


*참고

에이블 뉴스 <장애인 운동, 장애 입법 20년의 시사점> 백민 기자

한겨레 삶의 창 <우아하게 살고 싶다> 김소민 자유기고가 

보건복지부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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